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신들의 봉우리>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신들의 봉우리> 포스터. ⓒ 넷플릭스

 
에베레스트, 지구 7대륙 최고봉으로 높이는 8848미터에 달한다. 명성에 비해 등정하기 그리 어렵지 않아 많은 산악인들이 오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일례로, 지난 2019년 네팔 산악인 님스 푸르자가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찍은 '정체 현상' 사진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 친 적도 있다. 물론, 일반인이 쉽게 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에베레스트는 익히 알려져 있듯 1953년에야 이르러 뉴질랜드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와 네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최초로 정상에 등정했다. 아무런 논란거리가 없는 공식 기록이다. 그런데, 그보다 30여 년 전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등정했을지도 모를 이들이 있다. 산악계 최대 논란이자 미스터리이기도 한데, 영국의 조지 맬러리와 앤드류 어빙이 베이스캠프를 나서 세컨드 스텝을 오르고자 하는 모습이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그들이 등정에 성공했는지 알 도리가 없어진 것이다. 

이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를 모티브로, <음양사> 등으로 유명한 일본 소설가 유메마쿠라 바쿠가 소설 <신들의 봉우리>를 지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원작으로, <고독한 미식가> 등으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가 동명의 만화를 내놓았다. 세계 최대 만화 축제인 프랑스 앙굴렘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작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 작품은, 2016년에 영화화되었고 2021년에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애니메이션화되었다. 일본이 아닌 프랑스에서 애니메이션화했다는 게 특이점이다. 

에베레스트 초등정의 비밀

1924년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불과 200여 미터를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 조지 맬러리와 앤드류 어빙, 인류 최초의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 여부를 알지 못하는 와중에 그들이 가지고 갔었던 작은 카메라 한 대만이 성공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1993년,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한 일본인 산악 사진 기자 마코토 후카마치는 우연히 맬러리의 카메라를 발견한다. 누군가가 다가와서 특종 거리라면 건네 주는 걸 거절했는데, 얼마 후에 뒷골목에서 하부 조지가 가져가는 걸 본 것이다. 

하부 조지는 한때 일본 산악계의 떠오르는 신성이자 간판 스타였다. 하지만, 자신의 출중한 능력에 대해 과도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따르지 않는 와중에, 어느 날 활동하던 산악 클럽의 미성년자 막내 분타로가 그를 따라 산에 오르겠다고 한다. 그때 분타로가 실수로 죽을 고비에 처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잠적했던 하부 조지는 산에 다시 오르기로 한다. 알프스 산으로 향한 그, 그곳엔 또 다른 신성이자 라이벌 하세 쓰네오도 있었다. 극악의 세 봉우리 중 두 개 봉우리에 먼저 오르는 하부, 하지만 마지막 봉우리에서 발을 헛디뎌 죽을 고비에 처한다. 그를 기어코 구해 낸 게 다름 아닌 하세였다. 독보적인 스타가 된 하세, 산악인을 포기한 하부. 하지만 하세는 산에서 죽고 만다. 하부는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 없다.

마코토는 맬러리의 카메라에 모든 걸 걸어 보기로 한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되는 하부를 찾아 맬러리와 어빙의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 여부를 확실히 밝혀 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과연 하부를 찾을 수 있을까? 하부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가 맬러리의 카메라가 맞을까. 그 카메라로 에베레스트 초등정의 진실을 밝혀 낼 수 있을까.

"왜 산을 타는가?"

만화나 애니메이션 고유의 오락성과 처절하고 비극적인 실화의 드라마틱함 그리고 소설의 문학성이 한데 모여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양새이다. 맬러리와 어빙의 에베레스트 초등정 여부를 둘러싼 미스터리와 논란이 산악계는 물론 창작자, 나아가 전 세계인들에게 무수한 영감을 주는 게 분명하다.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라는 산악계에서 가장 유명한 명언의 주인공이 바로 맬러리이기도 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이가 당연히 일본인인데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나라가 프랑스이다 보니, 일본인들이 모두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도 배경이 1990년대 초반이니 만큼, 뭔가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시종일관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한편으론, 이 작품의 원작이 그만큼 괜찮구나 생각할 뿐이다.  

과연 그랬다. 작품은 맬러리와 어빙이 과연 에베레스트 초등정에 성공했을까 하는 너무나도 오래되고 일차원적이기까지 한 의문과 그 성공 여부가 맬러리의 카메라에 오롯이 담겨 있을 거라는 확신에 찬 답변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로 나아간다. 그 주인공은 한때 산악계 신성이자 스타였던 하부 조지로, 산을 둘러싼 그의 파란만장 삶의 궤적이 작품의 중심에 놓여 있다. 그 시작과 과정과 끝에 항상 "왜 산을 타는가?"라는 질문이 따라다니는데, "왜 삶을 사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산에 오른다는 것

어느 순간부터 이 작품에서 더 이상 맬러리와 어빙의 에베레스트 초등정과 맬러리의 카메라는 의미가 없어진다. 마코토의 진짜 목적이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목적, 아니 호기심과 궁금증은 하부 조지에게 향한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궁금하다. 결정적으로, 왜 산을 타는지 궁금하다. 

이 작품은 상당히 철학적이다. 맬러리의 카메라가 중요한 것처럼 나오지만, 실상 맬러리의 명언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말이 진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작품을 몇 번이고 돌려 보고 곱씹어 보는 건 별다른 소득이 없는 행동일 테다. 대신,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을 두고 평생 곱씹으며 살아가는 걸 추천한다. 반드시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은 비록 실사 아닌 애니메이션이지만, 이 추운 계절에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극도의 추위를 피부로 느끼게 한다. 그만큼 현실적이다. 삶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짐으로써 충분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신들의 봉우리>를 꼭 한 번 들여다보기를 추천한다. 깊이 빠져들어 보면 좋을 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신들의 봉우리 에베레스트 초등정 다니구치 지로 산과 삶 질문과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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