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포스터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포스터 ⓒ 씨네소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의 눈 덮인 벌판을 횡단한 적이 있다. 목적지는 알렉산드르 넵스키 수도원, 죽은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묘지였다. 도스토예프스키 말고도 차이코프스키 같은 유명인도 함께 묻힌 이 수도원 공동묘지는 러시아제국 옛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묘를 본 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내에 막 세워진 박경리 동상을 구경하고 돌아올 참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와 이르쿠츠크, 바이칼 호수와 모스크바를 거친 보름간의 일정이었다.

마침 읽고 있던 <토지> 몇 권을 챙겨들고는 기차에서, 여행지에서 틈틈이 챙겨 읽고는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아무르강을 따라 걸을 때 나 역시 그 강을 따라 걸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선 이곳이 100년 전 소설 속 배경과 닿아 있는 느낌이었다. 여행은 많은 것을 남겼다. 덜컹이는 기차 안에서 하바롭스크 대학교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북한 학생들과 대화하던 순간을, 러시아의 가난한 대학생들과 번역기를 돌려가며 더듬더듬 문학을 이야기하던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내게 과거의 낭만이자 현재의 추억이 되었다.

여행은 추억을 남긴다. 여행지의 온도, 냄새, 바람의 세기, 재잘재잘 떠들던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까지가 그 추억을 이룬다. 그러니 영화나 소설 속에서 익숙한 장소를 만나게 된다면 더는 처음 그곳을 보는 이처럼 객관적이 될 수 없다. 어느 순간 일어난 추억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여행이 좋은 감정을 심었다면 그로부터 얻게 되는 인상 역시 좋을 것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어본 이들에겐 그런 인상을 줄 영화 한 편이 관객들과 만남을 앞두고 있다.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스틸컷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스틸컷 ⓒ 씨네소파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 실은 청년들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 이들의 여행기다. 목포에서 서울역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베를린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를 뒤따랐다. 여느 평범한 여행은 아니다. 퍼커션이라 불리는 온갖 타악기를 메고 차고 들고서 주요 역마다 노래하고 춤을 추는 행위예술가들의 여정이다.

보통 예술가도 아니다. '레츠피스'란 단체에 속해 활동하는 열 명의 청년들이 대안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모집해 시베리아 횡단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들은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만들자'는 구호 아래 러시아와 독일의 역사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직접 작곡한 곡과 쓴 글, 그린 그림 따위도 곳곳에서 보인다. 부조리한 분단을 마치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이 세상이 못마땅해 일어선 청년들의 발걸음이 영화 내내 힘차고 당당하다.

한때는 서울역은 국제역이었다. 유라시아의 동쪽 끝, 한반도의 수도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기차를 타고 갈 수가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베를린에서, 파리에서, 마드리드에서 그러하듯 말이다. 이 모든 게 불가능해진 건 한국전쟁과 그 비극이 낳은 분단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70년 가까이 흐른 오늘까지도 종전을 선포하지 못한 이 나라, 기성세대에 청년들이 날리는 뼈아픈 일침이다. 우리에게 국제역을, 세계를 향한 자유를 돌려달라는 외침 말이다.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스틸컷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스틸컷 ⓒ 씨네소파

 
하노이 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종전의 숙원을 이루리라 기대 받았던 지난 하노이 회담은 이렇다 할 결과 없이 실망스럽게 끝나버렸다. 정권의 끝이 다가오며 다시금 뜨거운 기대를 모으고 있는 종전 이슈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국회 안팎에서 이뤄지고 있는 여러 회의에선 어김없이 시민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종전 협상 당사자가 아닌 남한의 상황에선 시민사회가 나서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평화가 가장 절실한 한반도 시민들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 가운데서 마치 평화가 뿌리를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지 않던가.

영화 속 청년들의 외침은 평화가 그저 전쟁이 없는 상태로 놓아두는 것 이상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적극적으로 나서 평화를 외쳐야만 때로 때때로 한국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분단과 전쟁과 대립의 위협을 걷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들이 한국과 러시아와 독일을 찾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사람들과 만나는 건 그래서다.

영화의 미덕은 그 의도와 의미에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대륙을 가로지르는 학생들의 여정이 그저 여행에만 있지 않다는 건 반도에 남아 영화를 보고 있는 이들에게 적잖은 감상을 남긴다. 다만 아쉬움도 없지 않다. 정돈되지 않은 구성과 편집 탓에 영화가 대학생 동아리 엠티를 뒤따르는 듯한 기분을 남기는 것이 그렇다. 횡단열차를 타고 가며 만난 도시와 사람들, 여정 그 자체의 매력도 깊이 있게 그려지지 못한다. 먼저 다녀온 이로서 이 여정이 줄 수 있는 감상이 고작 이것뿐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너무나도 안타깝다. 상업영화로 개봉하는 작품이라면 그 이상의 고민과 성취, 즐거움을 담아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단점에도 쓸려나가지 않는 매력이 분명하다. 여전히 종전선언 이슈가 잦아들지 않은 이때,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를 보며 갇혀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되새겨보는 건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 되어줄 것이니 말이다.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스틸컷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스틸컷 ⓒ 씨네소파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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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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