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2012 시즌 통산 3번째 챔프전 우승을 달성한 KGC인삼공사는 시즌이 끝난 후 대형 악재들이 한꺼번에 겹쳤다. 여자부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히며 인삼공사를 우승으로 이끈 마델라이네 몬타뇨가 터키리그로 떠났고 '베테랑 트리오' 김세영과 한유미(KBS N 스포츠 해설위원), 장소연(SBS 스포츠 해설위원)이 나란히 은퇴를 선언했다. 설상가상으로 인삼공사의 V2와 V3를 이끈 박삼용 감독(상무 감독)마저 전격 사퇴했다.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이 빠져 나간 후유증은 2012-2013 시즌의 성적으로 나타났다. 몬타뇨를 대신해 들어온 새 외국인 선수 드라간 마린코비치는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퇴출됐고 대체 선수였던 케이티 린 카터의 활약도 지지부진했다. 여기에 갑상선암 수술로 팀을 이탈한 한수지 세터(GS칼텍스 KIXX)의 빈자리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인삼공사는 2012-2013 시즌 여자부 역대 최고기록인 20연패를 당하며 최하위로 밀려났다.

그리고 이번 시즌 10년 가까이 깨지지 않았던 인삼공사의 20연패 기록에 도전(?)하는 팀이 등장했다. 바로 이번 시즌부터 V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여자부의 7번째 구단 페퍼저축은행이다. 지난 11월 9일 시즌 개막 후 6경기 만에 IBK기업은행 알토스를 상대로 창단 첫 승을 따낸 페퍼저축은행은 이후 10경기를 모두 패하며 10연패의 수렁에 빠져 있다. 더욱 큰 문제는 10연패 기간 동안 따낸 승점이 단 1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경험보다 '젊음'으로 팀 꾸린 막내구단
 
 실업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문슬기 리베로도 프로 경험은 이번 시즌이 처음이다.

실업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문슬기 리베로도 프로 경험은 이번 시즌이 처음이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4월 창단을 확정한 페퍼저축은행은 한국배구연맹의 적극적인 지원과 기존 구단의 협조 속에 순조롭게 창단을 준비했다. 한국배구연맹은 페퍼저축은행에게 외국인 선수 전체 1순위 지명권과 신인 드래프트 6장의 우선지명권, 그리고 기존 구단들로부터 보호선수 9명을 제외한 선수 한 명씩 지명할 수 있는 혜택을 줬다. 기존 구단들 역시 여자부 신생 구단 창단의 필요성에 동의하며 페퍼저축은행이 선수단을 구성할 수 있도록 협조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드래프트 이전부터 대부분의 구단들로부터 최대어로 거론됐던 192cm의 오른쪽 공격수 엘리자벳 이네 바르가(등록명 엘리자벳)를 지명했다. 헝가리와 루마니아 국적을 모두 가진 엘리자벳은 뛰어난 운동능력을 가진 1999년생의 젊은 선수로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 될 페퍼저축은행의 팀 색깔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외국인 선수로 꼽혔다.

페퍼저축은행은 실질적인 전력보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보호선수 외 신생구단 특별지명'에서도 철저히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선수를 선발했다.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출신으로 프로에서 6년을 보낸 이한비가 최고참이었고 프로 2년 경력의 이현 세터와 중앙공격수 최가은을 지명하며 유망주 수집에 열을 올렸다. 선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에도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에서는 선수를 지명하지 않는 '소신'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FA 미계약 선수로 남았던 하혜진과 인삼공사에서 방출된 후 양산시청에서 활약하던 181cm의 장신세터 구솔을 영입했다. 페퍼저축은행은 FA 하혜진을 영입하면서 한국배구연맹의 자유계약선수 관리규정에 따라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에 보상금 2억 원과 신인 4순위 지명권을 넘겼다. 외국인 선수 엘리자벳과 포지션이 겹쳐 센터로 변신한 하혜진은 1억3000만원에 연봉계약을 체결하면서 페퍼저축은행의 최고연봉선수가 됐다.

9월에 있었던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부족한 포지션들을 채우는 데 주력했다. 전체 1순위로 대구여고의 세터 박사랑을 지명했고 일신여상의 윙스파이커 박은서와 대구여고의 센터 서채원 같은 유망주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리베로 자리에는 목포여상 졸업 후 여러 실업팀에서 활약하던 문슬기를 1라운드6순위로 지명했다. 그렇게 페퍼저축은행은 9월 30일 창단식을 할 때 16명의 선수단을 갖추며 본격적인 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창단 첫 승 후 10경기서 승점 1점 수확
 
 페퍼저축은행 공격의 39.82%를 책임지고 있는 엘리자벳은 이미 무릎 부상으로 한 경기에 결장했다.

페퍼저축은행 공격의 39.82%를 책임지고 있는 엘리자벳은 이미 무릎 부상으로 한 경기에 결장했다. ⓒ 한국배구연맹

 
개막전부터 인삼공사를 상대로 첫 세트를 따내며 만만치 않은 전력을 과시한 페퍼저축은행은 11월 5일 현대건설과의 경기에서 창단 후 처음으로 승점을 따냈다. 그리고 11월 9일 기업은행에게 세트스코어 3-1로 승리를 따내면서 창단 첫 승의 감격을 누렸다. 물론 당시 기업은행은 팀 분위기가 상당히 어수선했지만 어린 선수들로 구성된 페퍼저축은행이 국가대표 3명이 포함된 기업은행을 꺾은 것은 분명 큰 이변이었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이 보여준 '막내의 반란'은 여기까지였다. 페퍼저축은행은 일주일 후 다시 만난 기업은행을 상대로 승점 1점을 따낸 것을 끝으로 최근 8경기에서 승리는커녕 승점 1점도 따내지 못했다. 최근 34번의 세트를 치르는 동안 30번의 세트를 내준 페퍼저축은행이 따낸 세트는 고작 4번 뿐이고 최근 4경기에서는 모두 0-3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 어느덧 페퍼저축은행의 연패 숫자도 두 자리로 늘어났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12일 인삼공사전에서 외국인 선수 엘리자벳이 무릎부상으로 결장했다. 엘리자벳은 이번 시즌 한 경기를 결장했음에도 739번의 공격을 시도하며 페퍼저축은행에서 39.82%의 높은 공격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다른 팀 못지 않게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이 심하면서도 페퍼저축은행은 그 만큼의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엘리자벳의 무릎에 이상신호가 발견됐지만 아직 시즌은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이번 시즌은 상위권과 하위권의 차이가 일찌감치 크게 벌어진 시즌이다. 10연패 중인 신생구단 페퍼저축은행이 상위권 팀들을 상대로 이변을 일으킬 확률은 높지 않다. 따라서 상위권 팀들을 상대로는 선수들을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경험을 쌓게 해주고 하위권의 흥국생명과 기업은행전에 초점을 맞춰 총력전을 펼치는 것도 연패탈출을 위한 현실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마침 페퍼저축은행은 오는 25일과 29일 흥국생명을 연속으로 만난다).

3라운드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 이미 10연패를 당한 페퍼저축은행은 5라운드 중반이 되는 오는 2월 6일 기업은행전까지 연패를 탈출하지 못하면 V리그 여자부 최다연패 불명예 기록을 쓰게 된다. 물론 아직 21연패까지 가려면 한 달이 넘는 시간과 10번 이상의 기회가 남아있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이 연패탈출을 위해 애쓰는 만큼 상대팀도 페퍼저축은행을 상대로 승점 3점을 적립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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