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에 방송된 드라마 <해피투게더>는 이병헌과 송승헌, 김하늘, 조민수, 한고은, 강성연, 전지현, 차태현, 손현주 등 지금이라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던 드라마였다. 그중에서도 당시 신인이었던 인디 뮤지션 역의 전지현과 나이트클럽 영업부장 역의 차태현이 보여준 풋풋한 멜로 연기가 시청자들을 설레게 했고 두 사람은 2년 후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재회해 또 한 번 큰 사랑을 받았다. 

지난 6일 첫 방송된 드라마 <그 해 우리는>에는 <이태원클라쓰>의 김다미와 <기생충>의 최우식이 10년 전 고교 시절의 여름을 기록 당한 앙숙으로 출연한다.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케미가 시청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이유는 이미 그들이 한 차례 영화를 통해 합(?)을 맞췄던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김다미와 최우식은 지난 2018년 영화 <마녀>에서 2세대 개조인간으로 출연해 살벌한(?) 액션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사에서는 전작에서 한 번 이상 호흡을 맞춰 좋은 결과를 냈던 배우들을 다시 캐스팅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모델로 먼저 활동했다가 지난 1998년 같은 작품을 통해 영화로 데뷔한 이 배우들도 2000년 2년 만에 다시 같은 영화에서 재회해 관객들을 설레게 했다. 장진 감독이 각본을 쓰고 김정권 감독이 연출한 판타지 멜로 <동감>에 출연했던 유지태와 김하늘이 그 주인공이다.
 
 <동감>은 잔잔한 멜로장르 영화임에도 서울에서만 34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동감>은 잔잔한 멜로장르 영화임에도 서울에서만 34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선역과 악역 넘나드는 독특한 매력의 배우

학창시절 현대 무용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촉망 받는 무용수였던 유지태는 허리부상으로 무용을 그만두고 모델로 변신했다. 유지태는 1998년 최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바이 준>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했지만 정작 유지태라는 배우를 알린 작품은 이듬해 개봉한 김상진 감독의 <주유소 습격사건>이었다. 유지태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어려운 말을 유난히 싫어하는 4차원 청년 페인트 역으로 독특한 매력을 뽐냈다.

그리고 2000년, 유지태는 데뷔작 <바이 준>을 함께 했던 김하늘과 <동감>을 통해 2년 만에 재회했다. <동감>에서 2000년을 살아가는 지인을 연기한 유지태는 한층 나아진 연기와 함께 뛰어난 패션감각을 선보이며 라이징스타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듬해 이영애와 함께 출연한 <봄날은 간다>를 통해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하지만 하필이면 상대가 <파이란>의 최민식이었다).

공포영화 <거울 속으로>, SF 판타지 <내츄럴시티> 등에 출연하며 경험을 쌓은 유지태는 2003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최민식 분)를 15년 동안 사설 감옥에 가두는 이우진을 연기했다. 물론 <올드보이>의 스포트라이트는 박찬욱 감독과 오대수를 연기한 최민식이 독차지했지만 냉정한 복수자를 연기했던 유지태의 열연이 없었다면 <올드보이>는 지금처럼 명작으로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유지태는 <올드보이> 이후 <남극일기> <야수> <황진이> <순정만화> <비밀애> 등에 출연했지만 흥행과 비평 모두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분량은 짧았지만 메인빌런으로 출연해 카리스마를 발산했던 <뚝방전설>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2007년 단편영화 <나도 모르게>를 연출하며 감독 일을 병행하기 시작한 유지태는 2012년 배수빈과 박지수, 소유진 등이 출연한 장편 영화 <마이 라띠마>를 연출했다.

2010년대 들어 <힐러> <굿와이프> <매드독> 등에 출연하며 TV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유지태는 2017년 영화 <꾼>이 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오랜만에 흥행작을 남겼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19년 류준열과 함께 출연한 영화 <돈>으로 330만 관객을 불러들인 유지태는 내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인 스페인 원작 리메이크 드라마 <종이의 집>에서 교수를 연기할 예정이다.

21년의 세월 뛰어넘은 두 사람의 '동감'
 
 유지태(오른쪽)와 김하늘은 <동감>을 계기로 충무로가 주목하는 신예스타로 떠올랐다.

유지태(오른쪽)와 김하늘은 <동감>을 계기로 충무로가 주목하는 신예스타로 떠올랐다.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선배 동희(박용우 분)를 짝사랑하는 소은(김하늘 분)은 실수로 집에 가지고 온 고물 무선기에서 같은 학교 2학년 지인(유지태 분)의 목소리를 듣는다. 두 사람은 반가운 마음에 다음날 학교 시계탑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지만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은 길이 엇갈리고 만다. 그렇게 지인과 소은은 배터리도 없고 전원도 연결되지 않은 무선기로 21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신비한 만남을 이어간다.

개인의 사적 이익과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은 가르쳐주지 않기로 규칙을 정한 두 사람은 서로의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가까워진다. 소은은 현실에선 동희, 무선통신에선 지인이라는 좋은 인연이 한꺼번에 생긴 것이다. 하지만 소은은 지인과의 대화 도중 소은과 같은 학교 동문인 지인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들이 바로 소은이 짝사랑하는 동희와 소은의 절친 선미(김민주 분)임을 알게 된다.

소은은 자신의 사랑과 절친이 사랑에 빠진다는 사실에 화도 나지만 두 사람이 맺어지지 않으면 지인도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결국 소은은 동희와 선미 곁을 떠나 유학을 결심하고 지인 역시 옛날 사진들에서 엄마의 절친이 소은이었음을 발견한다. 지인은 소은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학교로 찾아가고 얼굴을 마주본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알겠다는 표정으로 가벼운 미소를 나누며 스쳐 지나간다.

<동감>은 포스터와 예고편 영상만 보면 마치 1979년의 여자와 2000년의 남자가 사랑을 나누는 멜로 영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유지태와 김하늘은 무선통신으로만 교감을 나눌 뿐, 마주치는 부분은 단 한 번 밖에 없고 그나마 서로 한마디의 대화조차 나누지 않는다. 그럼에도 <동감>은 가을에 개봉한 이정재-전지현 주연의 <시월애>와 함께 2000년 판타지 멜로 영화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며 관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임재범의 대표곡 '너를 위해' 역시 <동감>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너를 위해'는 영화 초반부 유지태와 하지원이 대화를 나누는 카페 배경음악으로 흘러 나올 뿐 정작 영화 개봉과 함께 발매된 <동감> OST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한국형 판타지 멜로의 바이블'로 꼽히는 <동감>은 2020년 5월 개봉 20주년 기념으로 리마스터링 버전이 재개봉 되기도 했다.

데뷔 초기 하지원의 유일한 조연 출연작
 
 하지원은 <동감>을 비롯해 2000년에만 세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원은 <동감>을 비롯해 2000년에만 세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두 주인공이 사랑을 나누는 영화가 아닌 <동감>에서는 유지태와 김하늘의 멜로상대가 각각 따로 있었다. 유지태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배우는 오늘날 유지태보다 지명도가 더 높은 스타배우로 성장한 하지원이다. 하지원은 2000년 한 해 동안에만 <진실게임>을 시작으로 <동감> <가위>까지 세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동감>은 하지원의 커리어에서 카메오 출연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조연으로 출연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원은 <동감>에서 지인의 학과 동기 서현지를 연기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열이면 열, 현지가 지인을 짝사랑한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지인을 따라 다닌다. 지인 역시 현지가 술집에 나간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격하게 화를 냈을 정도로 현지를 아낀다. 현지는 영화 후반부 고장 났다고 생각했던 무선기에서 갑자기 신호가 울릴 때 "이거 알람도 되니?"라는 개그 대사로 관객들을 웃기기도 했다.

1979년을 살아가는 김하늘의 상대역은 박용우였다. 1년 전 <쉬리>의 낙하산 역으로 주목 받은 박용우는 <동감>에서 소은의 짝사랑을 받는 학교 선배 동희 역을 맡았다. 소은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나쁘게 이용하지 않을 정도로 착한 심성을 가졌고 소은과도 곧 남자친구처럼 가까워진다. 하지만 학생운동 도중 팔을 다쳐 병원에 입원하면서 소은의 절친이자 지인의 엄마인 선미와 가까워지며 소은을 아프게 한다. 

청소년드라마 <학교2>에서 영화 동아리의 수장이자 2학년 5반 반장 윤지민을 연기하며 주목 받은 김민주는 <동감>에서 본의 아니게 소은의 남자친구를 빼앗는 선미를 연기했다. 김민주는 2007년 <하얀 거탑>에서 외과 레지던트 염동일 역의 기태영과 러브라인이 있는 내과 임상강사 하은혜를 연기했고 2014년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는 고려의 마지막 왕대비 정비 안씨 역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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