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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종식될 것처럼 보였던 전염병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높아지는 백신 접종률 덕분에 위드코로나 시대는 열렸지만, 되살아나는 바이러스의 불씨로 그동안 억눌렸던 압박감에서 탈출하고 싶은 심정은 이내 잦아든다.

벌써 코로나가 발발한 지 2년이 가까워간다.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계속된 변이 바이러스가 출몰하면서 이제는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 마냥 침묵으로만 대응할 수 없는 몇몇 공연 단체는 무대에서 작품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아르코 온라인 극장 무용 <3rd Altimeets(알티밋)>도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지난 8일, 이 정기공연이 열리는 대학로예술극장을 방문했다. 평일 오후 8시에 시작하는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막이 오르기 1시간 전부터 로비는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500석이 넘는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5명이 연이어 자리를 앉을 수 없다"는 하우스매니저의 양해로 몇몇은 자리를 옮겨야 할 정도였다.

이같은 호응은 지난 5월, 제35회 한국무용제전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던 이 공연단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일 수도, 어쩌면 코로나로 인해 공연을 볼 수 없었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람일 수도, 서로 다른 세 명의 안무가들이 이 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한 마음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이들이 내놓은 답 

단체명이자 공연명인 알티밋(Altimeets)을 굳이 풀어서 설명하자면, '예술가의 궁극적인 만남'이라고 한다. 'Artist+Ultimate+Meets'로 연결된 합성어인데, 한 무용평론가는 "우리가 만난 최고의 예술가들"이라고 극찬했다. 아마도 제한된 환경에서 나름의 성과를 보였던 전작들에 대한 기대감을 듬뿍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 단체는 한국무용이 전공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선후배들로 구성됐다. 결성된 시기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9년 8월에 첫 번째 창단공연을 가졌다. 이후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직전까지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2020년 1월 이후엔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8월, 두 번째 정기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12월 8~9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세 번째 정기공연을 가졌다. '단체의 몇 번째 공연'임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 있는데, 이 작품의 주제는 리플릿의 첫머리에 그대로 드러냈다.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묵묵히 겪어가고 있는 단원들의 의지와 희망이 담겼다. 이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도전하는 무용단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며,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다할 것을 전하고자 한다."

약 75분간 이어지는 <3rd Altimeets>는 비슷한 시간대로 배정받은 세 개의 공연이 연이어 무대에 오른다. 20대 추세령 안무가의 '맴', 30대 백진주 안무가의 '무무(無:舞)', 40대 안상화 안무가의 'RULE-말하고 있다'로 구성된 공연은 사전에 워크숍을 통해서 어떤 주제를 몸으로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을 했었던 것처럼 이들의 다양한 해석을 엿볼 수 있다.
 
백진주 안무가의 무무
 백진주 안무가의 무무
ⓒ 무용단 Altimeet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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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서막을 알리는 '무무(無:舞)'(안무 백진주)는 경해루에 있는 11마리 잡상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인간의 다양한 움직임을 표현했다. 잡상(雜像)은 기와지붕의 추녀마루에 있는 토우(土偶)인데, 살(煞, 죽일 살)을 막기 위해 배치된 장식 기와의 하나다. 기와지붕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 잡은 잡상은 때로는 정적이지만 동적이며, 무심하지만 다정하고, 외롭지만 조화를 이루는 대비를 보여준다.

이런 잡상에 대한 친절한 설명 덕분인지 무용수들이 몸으로 해석한 다양한 모습을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하얀 옷을 차려입은 9명의 무용수가 무대에 등장한다. 이들은 서로를 불러 모으는 충돌(?)을 서슴지 않았으며, 현란한 배경음악과 리듬에 맞춘 몸부림을 이어간다.

한국무용이 던져주는 선입견 때문인지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꺾기의 신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눈에는 비트박스에 어울리는 팝핀의 동작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인간 사회에서 난무하고 있는 다양한 갈등과 몸싸움을 형상화한 것이라 말하고 싶다.

하지만 승리를 쟁취한 자도 패배의 쓴맛을 본 자도 결국엔 모두가 괴로움에 절규하면서 쓰러진다. 서로 간의 스킨십을 통해 전해지는 고통은 지금의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분위기와 사뭇 일치한다. 하나의 조명을 배경으로 서있던 9명의 무용수는 그간의 고통을 정리한 듯 처음과 같은 자세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두 번째 무대를 장식한 '맴'(안무 추세령)에는 나뭇잎을 뒤집어 쓴 오브제가 등장한다. 앞선 공연에선 9명의 무용수가 몸으로만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은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도구의 출연이 무대 전환의 색다름을 보여줬다.
 
추세령 안무가의 맴
 추세령 안무가의 맴
ⓒ 무용단 Altimeet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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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무용수는 나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인간의 모습을 감정을 표현했다. 공연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소리로 알리는 매미와 타인의 무관심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비교한다. 핀 조명을 뚫고 한 사람의 손이 보이면서 공연은 시작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끌려가 사라져버리는 무용수는 서로에게 관심 받고 싶은 인간의 몸부림을 보여준다.

매미의 울음은 머리를 바닥에 찍는 일정한 간격으로 사운드를 자아내며, 나무를 주위로 인간과 매미의 상충하는 울음이 비교하기도 한다. 공연이 마칠 즈음 '맴'이라는 외마디 비명은 강렬한 의성어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젊은 안무가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까.

마지막 무대는 'RULE : 말하고 있다'(안무 안상화)가 장식했다. 이전에 보여줬던 두 작품들도 각각의 특징이 있지만 이번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미디어 아트의 도움이 돋보인다. 직선과 곡선이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공연은 배경음악과 무용수의 움직임을 더해 '삶과 죽음'을 대비하는 느낌을 전해준다.
 
안상화 안무가의 룰-말하고 있다
 안상화 안무가의 룰-말하고 있다
ⓒ 무용단 Altimeet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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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현대인의 우주는 대자연의 우주와 갈수록 꼴을 달리하고 있다"며 작품은 '죽음을 상징하는 직선과 생명을 담아낸 곡선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몸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무대를 가득 채운 레이저 불빛과 공간을 가득 채우는 무대장치 덕분에 한국무용의 틀을 벗어나 현대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통적인 무용에 기술이 결합한 신기술이 더해졌는데, 무용수의 움직임과 함께하는 직선과 곡선의 현란한 동작은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천장에서 내려오는 전통 등의 모양을 갖춘 장식도 배경 음악과 무대장치의 도움을 받아 관객들은 잠시도 한눈을 파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잔잔한 음악에 맞춰 선을 타는 손의 움직임을 보여주다가 레이저와 강렬한 비트로 변조되면 무용수의 손이 괴기하게 꺾이는 이번 공연의 핵심으로 손꼽힌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 인사를 하는 3rd Altimeets 단원들
 공연을 마치고 무대 인사를 하는 3rd Altimeets 단원들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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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티밋(Altimeets)은 "무용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예종 출신의 선ㆍ후배들이 수평적인 대화와 교류를 통해 방향성과 예술성을 보여주는 무대를 추구"하는 공연단이다. 이번 공개한 세 번째 정기공연은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안무가들이 동일한 주제를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을 표현한 작품들이 이어진다.

코로나로 인해서 인간 사회에 놓인 불편한 문제를 놓고 각자가 생각하는 시선을 무용으로 승화시켰다. 인간 사회에서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대해서 이들은 어떻게 무대에서 표현했을까를 비교하며 관람하는 것도 좋은 팁이 될 수 있다.

짧은 이틀간의 오프라인 공연의 기회를 놓쳤다면 내년 1월 20일(목) 오후 8시에 아르코 온라인 극장(Http://tv.naver.com/arko/live)을 통해 공개되는 기회가 남아있으니 놓치지 말길 바란다.

태그:#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온라인극장, #알티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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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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