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슨 포스터

▲ 리슨 포스터 ⓒ 워터홀컴퍼니(주)

 

하루아침에 아이를 빼앗긴 부모가 있다. 집에 들이닥친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어린 아들과 딸을 모두 데리고 가버렸다. 딸의 등에선 멍 자국이 발견됐다. 딸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농아다. 공무원들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 보청기도 망가진 상태다. 부모는 공무원 앞을 가로막고 때린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들어줄리 만무하다. 집은 난방이 되지 않아 춥고 먹을 것도 없다. 부부는 세 아이를 모두 복지당국에 빼앗긴다.

자식을 빼앗긴 부모는 포르투갈 출신 부부다. 가난한 조국을 떠나 영국으로 이민을 왔지만 삶은 생각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이 나가서 일을 했다지만 월급은 몇 달이나 밀려 있다. 공장 사장은 남편에게 월급을 줄 생각이 없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어디다 항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한순간에 자식을 빼앗긴 부부가 복지 당국을 찾아 자식을 돌려 달라고 하소연한다. 아이들과 짧은 면회시간이 주어졌지만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모든 대화는 영어로만 해야 한다. 수화조차도 금지된다. 답답한 마음에 항변을 하려하니 공무원은 면회를 중단시키겠다고 윽박지른다. 하루아침에 자식들을 빼앗긴 부부가 울음을 삼켜가며 소리를 낮춰 싸운다. 끝내 화를 내 면회 기회를 날려버린 아내에게 남편이 소리친다. 한 시간을 꼭 채워 아이들을 보고 싶었다고. 꼭 그렇게 했어야 했느냐고. 갈 길 잃은 분노들이 서로를 생채기 낸다.

공무원들은 아이들이 강제로 입양이 보내지게 됐다고 말한다. 가난과 실직, 딸의 장애에도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던 정부가 자식을 빼앗아가는 데는 득달같이 움직인다. 이제 남은 선택은 얼마 없다.
 
리슨 스틸컷

▲ 리슨 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영화 <리슨>은 런던 교외에서 살아가는 포르투갈 출신 이민자 벨라(루시아 모니즈 분) 부부에게 일어난 이야기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벨라는 어린 딸(메이지 슬라이 분)과 갓난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그녀가 찾은 곳은 동네 식료품점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식빵 따위를 훔쳐 몰래 가방에 담는다. 그녀가 좀도둑질을 하는 동안 자식들은 상점 바깥,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자리에 앉아 있다. 벨라는 공원 벤치에 앉아 훔쳐 온 식빵과 치즈를 아이들에게 먹인다.

집 안엔 남편과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첫째아들이 있다. 아들은 추위에 몸을 벌벌 떨다 끝내 앓아눕는다. 아버지는 이불을 덮어주고 쉬게 하는 것 말고는 아이에게 해줄 게 없다. 병원에 데려가는 것조차 이들에겐 바랄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이들 부모에게 자식을 기를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폭력이 의심되는 상황과 지극한 가난이 그 이유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입양이다. 정부가 마냥 보호할 예산이 없으므로 아이들을 새 부모에게 보내겠단 것이다. 다행히 아이들을 입양하려는 수요가 늘 있다. 장애가 있는 둘째딸을 빼고는 첫째와 셋째의 입양이 일찌감치 결정됐다.

부모는 말한다. 포르투갈로 돌아가겠으니 제발 아이를 돌려달라고 말이다. 아이들을 때린 적이 없고 자신들은 좋은 부모라고 항변한다. 부모의 동의 없이 아이를 입양시키는 건 안 된다고, 제발 자식들을 돌려달라고 호소한다. 장애가 있는 아이는 빼고서 멀쩡한 아이들만 입양시키는 게 과연 공정한 일이냐고 따져 묻는다.
 
리슨 스틸컷

▲ 리슨 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인간을 돌보지 않는 행정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인간을 돌아보지 않는 행정이 어떻게 인간을 괴롭게 하는가를 짚어낸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역시 영국을 배경으로 한 1994년 작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가 같은 문제를 다룬 바 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2차례나 받은 거장 켄 로치는 이 영화에서 한 순간에 네 아이를 나라에 빼앗긴 여인의 비탄을 가감 없이 그려내 충격을 던졌다. 집을 비운 새 난 사고로 큰 아이가 화상을 입은 뒤 국가는 여인에게 자식들을 빼앗았다. 그녀가 자식을 기를 자격이 없다고 재단한 것이다.

<리슨>과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 같은 영화가 맞서 싸우는 건 바로 이 같은 외부자적 시선이다. 정작 고통 받는 이들에겐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던 외부인들이 이들에게서 자식을 빼앗아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비판점이다. 부모가 울고 싸우지만 정부는 듣지 않는다. 너는 능력이 없노라고 무참히 아이들이 빼앗아간다. 행정과 언론이 귀 기울여 들여다보지 않는 동안 사람들은 통곡하다 까무러쳐 죽는다.
 
리슨 스틸컷

▲ 리슨 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영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가 개막작으로 선정한 <아버지의 길>은 역시 보건당국이 빼앗아간 아들을 되찾으려 무려 300km를 걸어온 세르비아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렸다. 나라가 가난을 방치하고, 그 가난에 갉아 먹힌 인간들을 괴롭히는 이야기가 세상 어디에나 있다. '네 탓이다'라고 손가락질하고 가장 귀한 것을 앗아가는 비극이 세상엔 널려 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20만 명의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냈다. 근래 수년 간 제작된 <피부색깔=꿀색>, <푸른 호수>와 같은 영화가 드디어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다루기 시작했다. 미혼과 가난 등을 이유로 아이를 부모와 분리해 입양시키는 것이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작게나마 나오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사회적 편견이 가난과 같은 외부적 상황이 분리의 이유가 된다. 그러나 진정으로 부모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 분리는 과연 인도적인 것일까.

<리슨>은 제목처럼 귀를 기울여달라고 청한다. 부모와 자식을 갈라놓는 제도가 과연 옳은지를 묻는다. 우리는 어떤가.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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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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