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현정의 복귀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이 종영했다. 고현정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냉소와 광기의 캐릭터를 스릴감 넘치게 소화한 신현빈의 호연도 주목할 만했다.
 
이 드라마의 주된 서사는, 욕망을 따랐지만 그 대가를 처절히 치를 용기가 없었던 비겁한 사랑이 결국 자기 파괴라는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는 비극 스토리다. 헌데 내 관심은 지지고 볶는 주인공들의 갈등보다는, 선우(신동욱 분)와 옥수(강애심 분) 그리고 성호(김상호 분)와 정연(서정연 분)의 꼬인 인연이 던진 용서라는 화두로 더 쏠렸다. 용서받지 못할 과오를 지고도 사과 한 마디 없이 죽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일까.
 
용서, 그 지난함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 JTBC


선우는 고등학교 시절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친구 정섭을 부추겨 벌인 무면허 운전으로 교통사고가 나고, 이 사고로 그만 정섭이 죽고 만다. 아들을 끔찍이 사랑한 정섭의 엄마 옥수에게 아들의 사라짐은 청천벽력이었다.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시작되었고, 두 사람 모두 가뭇없는 고통에 놓인다.
 
아들을 죽게 한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옥수는 선우에게 "난 이미 너 용서했어"라고 말하지만, 그는 선우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아니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하지 않기 위해 그는 선우의 주위에 머문다. 웃으며 선우를 대하지만, 그의 뒤를 사납게 응시하는 눈빛과 옥죄는 말엔 선우를 향한 증오가 가시처럼 돋아있다.
 
"내 아들은 죽었는데 너는 멀쩡히 살아남아 따뜻한 볕을 쬐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람들과 다정히 이야기 나누며 살아가고 있구나."

옥수는 선우를 보며 그에게 자신의 죄를 상기시키고 상처 입히는 일로 증오의 땔감을 만들어 매일의 고통을 견딘다. 아들 죽음의 대가로 선우 인생의 지분을 획득한 옥수는 그의 주변을 맴돌며, "죄 지어도 살아있으면 착한 사람 될 기회가 다시 온다"라며 끈임없이 훈계한다. 그의 선도에는, '네 인생은 오직 죄 닦음만이 있을 뿐, 결코 행복할 수 없으며 행복해서도 안 된다'라는 저주가 새겨져 있다.
 
매일 저주 세례를 받는 선우는 자신의 고통을 누구에게도 호소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에게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매일 되묻는다. 의무처럼 행하는 고해성사는 "잊지 않으려고 하는 거지 용서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유일한 사랑과 삶의 의미를 빼앗고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염치없는 일인지를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죄로부터, 옥수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옥수의 위장된 웃음에서 배어나는 치 떨리는 증오를 온전히 받아낸다. 옥수에게 "저를 용서하지 마시고 계속 미워해"달라고 말한다.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는 선우와 옥수 같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등장한다. 주인공 '남자'는 고등학교 때 자신을 괴롭히던 학교폭력 가해자를 죽였고, 이 죄로 9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한다. 누군가에게 죽어 마땅한 악당이 누군가에는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는 인생의 아이러니는 정의를 뒷걸음질 치게 만든다. 공정한 판단을 거부한 맹목적 모성 앞에 아들의 죄는 죄로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사라진 내 새끼가 애달플 뿐이다.
 
증오를 친근함으로 가장하고 '남자'의 주변을 어슬렁대던 어느 날, 마침내 아들의 원수를 처단할 기회를 포착한 엄마는 숨겨둔 비수로 '남자'를 긋는다. 정확히 겨눈 복수의 칼날은 '남자'를 깊게 찌르고 소멸시킨다. 놀라운 일은, '남자'가 자신의 주변을 배회하는 아줌마가 자신이 죽인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죽이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는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낸 것이다. 죄는 사회가 내린 판단일 뿐, 그 죄로 인한 어떤 이의 상실은 무엇으로도 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제발 '남자'가 엄마의 칼날을 피하길 바라지만, 그 바람은 새끼 잃은 맹목적 증오 앞에 무력화된다. 결국 '성찰 없는 증오는 또 다른 가해를 낳는구나' 탄식하면서, 마침내 '남자'가 살해당하는 장면에 밭은 숨을 내뱉게 된다. 선우의 주변을 서성이는 옥수를 보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것은, 이 소설의 비극적 결말이 자꾸 개입되기 때문이었다. 혹시 옥수가 누르고 누르던 증오심을 이기지 못하고 선우를 해치면 어쩌나, 조바심이 났다. 소설의 엄마와 옥수의 모성이 동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들 잃은 슬픔이야 차이가 있겠는가.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 JTBC


다행히도 옥수는 선우를 해치지 않는다. 지금까지처럼 초월적 인내로 아들의 부재를 견딜 것이다. 창자가 끊어질 고통을 줄일 그나마의 최선이라면 선우를 보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겠지만, 아들 잃은 엄마는 자신의 상실감을 회피하는 일이 아들을 배신하는 일처럼 여겨져 조금의 안락도 용인하지 못한다. 자신의 잘못으로 아들을 잃은 것이 아님에도, 엄마는 죄책감과 상실감에서 헤어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용서란, 숭고한 무엇이기 전에, 자신이 스스로 떨어진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한 약자의 마지막 수단이지만, 옥수는 이마저도 허락하지 못한다.
 
선우는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매일 나타나 자신의 죄를 확인시키는 옥수를 대하는 일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까. 해외로 연수를 떠나려는 선우의 선택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도움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지만, 얼마 동안이라도 옥수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떠남을 자신의 죄의 마침표로 찍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친구 정섭의 몫까지 해내겠다는 맹세로 쉼표를 새긴다. 자신의 죄를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선우의 양심은, 왜 어째서 권력자였던 자들의 죽음에서는 찾아지지 않는 것일까.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는 정말 염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죄인이 등장한다. 그는 동네의 어린아이를 유괴해 살해한다. 그는 어린아이도 그 아이의 엄마도 잘 알고 지냈다. 돌연 악마가 나타나서 아들을 해친 것이 아니라 친근한 이웃이 아들을 죽였다는 충격 그리고 어린 아들이 고통 속에 죽어갔다는 비통함은 엄마의 애간장을 다 녹여버렸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차라리 아들의 원수를 용서하겠노라 찾아간 감옥에서 죄인은, "하나님께서 이미 저를 용서하셨습니다"라고 평화롭게 간증한다. 자신이 죽인 아이의 엄마 앞에서 이미 하나님의 사면을 받았노라 선언하는 죄인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약자의 유일한 권리인 용서마저 탈취당한 엄마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자신의 죄에 셀프 사면을 용납하지 않는 선우의 양심은 죄인에게도 품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밀양>의 죄인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고담준론이 얼마나 피해의 고통에 냉혹한가를 깨닫게 한다. 자신의 죄를 끝없이 돌아보는 선우와 하나님을 빙자해 자신의 죄를 가볍게 덜어낸 악인과의 격차는, 죄인에게도 용서받을 자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현격한 대비로 일깨워 준다.
 
자신의 과오를 뼈저리게 돌아보고 피해에 진심으로 사과하는 양심만이 그나마 용서받을 기회를 얻는다. 죽음은 결코 모든 과오를 덮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죄인의 죽음으로 피해의 고통과 슬픔과 상실이 함께 묻혀 사라지지도 않는다. 죽음마저 가해가 되는 죄는 대체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단 말인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윤일희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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