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이라는 영광은 단 한 팀만 차지할 수 있었지만, 그 결과가 더 가치있었던 것은 라이벌과 '선의의 경쟁'이라는 과정 덕분이었다. 프로축구 전북과 울산 '현대가 형제'의 팽팽한 라이벌 구도가 올시즌도 K리그를 풍성하게 빛냈다.
 
전북은 K리그 역사상 최초로 5년 연속 우승(2017-2021)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전북은 5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1 K리그1 파이널A 최종 38라운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2-0으로 꺾었다. 이 승리로 승점 76(22승 10무 6패)을 기록한 전북은 울산(승점 74·21승 11무 6패)을 승점 2점차로 제쳤다. 또한 전북은 이미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역대 최다우승 통산 우승 기록도 9회로 늘리며 최초의 두 자릿수 우승에도 한 걸음앞으로 다가섰다.
 
울산은 이날 최종전 홈경기에서 대구FC를 이기고 제주가 전북을 잡아야 역전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울산은 대구를 2-0으로 꺾는 데 성공했지만 이번에도 전북을 넘지 못했다. 전북이 최다우승-최다 연속 우승에 성공했다면, 울산은 2019년부터 3년 연속 준우승 및 K리그 역대 최다이자 최초로 두 자릿수(통산 10번째) 준우승(1988년·1991년·1998년·2002년·2003년·2011년·2013년·2019년·2020년·2021년)이라는 진기록을 수립하며 희비가 엇갈렸다.
 
올 시즌을 앞두고 전북과 울산은 나란히 사령탑을 교체했다. 김상식 전북 감독은 전북에서만 선수(2회)-코치(6회)에 이어 감독으로서도 부임 첫 해부터 우승을 차지, 전북의 역대 모든 우승 순간을 함께한 인물이 됐다. 반면, 5년만에 지도자 복귀이자 최초로 K리그 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홍명보 울산 감독은 '무관'에 그치며 아쉽게 첫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전북은 올 시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최강희 전 감독에 이어 전북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조세 모라이스 감독도 팀을 떠나고, 베테랑 이동국의 은퇴, MVP 손준호의 중국 이적 등으로 왕조의 주역들이 대거 이탈했다. 1군 사령탑 데뷔는 처음이었던 초보 김상식 감독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부담속에 시즌을 시작해야했다.
 
김상식 감독은 최강희 감독 시절의 '닥공(닥치고 공격)'을 잇는 '화공'(화려한 혹은 화끈한 공격축구)을 팀컬러로 내세웠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난 5~6월 3연패를 포함해 7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하며 전북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FA컵(대한축구협회컵)에서는 3부리그팀(K3)인 양주시민축구단에 덜미를 잡히는 굴욕을 당했다.
 
최대의 라이벌 울산에게는 지난 시즌까지 몇 년간 맞대결에서 압도했으나 올시즌에는 상대전적에서 밀렸고 결국 ACL 8강전에서도 연장 끝에 울산에 덜미를 잡히며 탈락하여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자연히 김 감독의 리더십과 고참 선수들의 역할에 의구심을 갖는 비판 여론도 높아졌다.
 
하지만 '우승의 맛'을 아는 전북의 저력은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빛을 발했다. 초반 공존에 어려움을 겪는듯 하던 외국인 공격수 구스타보와 일류첸코가 나란히 15골씩 넣으며 이상적인 '따로 또 같이' 로테이션 체제를 구축했고, 영입 과정에서 비록 잡음은 있었지만 백승호와 송민규가 빠르게 팀에 적응해가면서 팀의 약점이던 경기 템포와 활동량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전북의 주장이자 중앙수비수 홍정호는 위기마다 결정적인 호수비를 펼치며 중심을 잡아줬다. 홍정호는 올 시즌 팀의 우승으로 강력한 MVP 후보로까지 떠올랐다.
 
경기력에서는 예전처럼 압도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평가받았던 전북이었지만, 정작 올 시즌을 마감하며 최다득점(71골), 최소실점(37실점) 기록을 모두 독차지했다. 지난달 '사실상 결승전'이라 불린 경기에서 울산을 3-2로 꺾으며 올시즌 상대전적 첫 승을 거둔 장면이 올시즌의 가장 결정적인 분수령이었다. 36라운드에서 수원FC에 덜미를 잡히며 마지막 고비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특유의 위기 관리 능력으로 더 이상의 이변을 허용하지 않았다. 정상에 안주하지 않는 구단의 끊임없는 투자와 내부 경쟁체제, 우승 경험이 주는 관록이 쌓여서 이뤄낸 성과였다.
 
울산은 불과 40일전만 해도 트레블(3관왕)까지 가능하다는 기대를 모았으나 결국 빈손으로 시즌을 마쳤다. FA컵(전남)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포항)에서 모두 4강의 고비를 넘지못했고, 리그에서는 3년 연속으로 전북에 막혔다.
 
2005년 이후 16년 만에 우승을 꿈꿨던 울산은 이동준, 원두재, 이동경 등 수많은 대표급 선수들을 배출했지만 이로 인하여 선수들의 체력부담과 부상 위험이 가중되며 안정적인 전력을 유지하지 못한 게 시즌 후반부 빅매치에서 치명타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는 김도훈 감독과 함께 아시아 정상(2020년 ACL 우승)에 오르며 유종의 미를 거뒀던 지난 시즌보다도 오히려 기대에 못미친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홍명보 감독은 청소년과 올림픽대표팀을 맡아 아시안게임 동메달-런던올림픽 동메달 등 화려한 성과를 올렸지만 성인 클럽무대에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홍 감독은 K리그 최고 수준의 전력을 구축한 울산을 맡으며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자신의 색깔로 팀을 새롭게 만들어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몇몇 주축 선수들의 이탈로 젊은 선수들이 빈 자리를 메워야 했고, 동계 훈련 부족, 잦은 국가대표 차출, 파괴력 있는 외국인 공격수의 부재가 발목을 잡았다. 홍명보 감독의 최대 약점이기도 한, 유연하지 못한 주전 위주의 경직된 전술운용도 아쉬웠다. 전북과 포항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고도 시즌 막바지 가장 중요한 맞대결(파이널라운드, ACL 토너먼트 등)에서 무너지는 고질적인 '뒷심 부족'은 결국 울산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숙제였다.
 
하지만 우승-준우승이라는 결과를 떠나 리그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북과 울산의 라이벌 구도 덕분에 K리그를 보는 재미가 더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리그에서 전북처럼 한 팀이 지나치게 독주체제를 구축하는 경우 '어차피 우승은 OO'이라는 식으로 뻔한 결과가 흥미를 반감시킨다는 우려가 나오기 마련이다. 또한 울산처럼 번번이 준우승에 그치는 팀은 만년 2인자라는 설움을 감수해야 한다.
 
전북과 울산의 경쟁은 우승 타이틀을 넘어 서로에게 '상호 보완적인 공생관계'를 형성했다. 전북은 5연패기간동안 2017년에는 승점 75점으로 2위 제주와 9점차, 2018년에는 승점 86점으로 2위 경남과 무려 21점차의 압도적인 격차로 싱거운 조기 우승을 달성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3년간 울산이 강력한 대항마로 등장했다. 2021년에는 2점차로 간발의 우승을 달성한 전북이 아슬아슬하게 최종전 타이틀을 가져갔다. 손에 땀을 쥐는 아슬아슬한 경쟁구도는 K리그 팬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울산은 울산대로 전북이라는 넘어야 할 목표가 확실했기에 더욱 적극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이어갈 수 있었다. 울산의 도전과 투자가 K리그 흥행에 기여한 부분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야 할 이유다. 울산의 우승 도전이 내년에도 멈추지 않길 팬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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