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과 불화 논란'의 중심에 있던 김사니 IBK 기업은행 감독대행이 결국 자진사퇴했다. 김 대행은 2일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1~22 V리그 여자부 한국도로공사와의 경기를 앞두고 인터뷰에서 "지금 사태에 대한 책임이 있고 너무 죄송하게 생각한다. 오늘 경기를 마지막으로 구단을 떠나겠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지난 11월 21일 기업은행의 감독대행으로 선임된지 겨우 11일만이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경기를 치러야했던 기업은행은 도로공사에 0-3(13-25 20-25 17-25)으로 완패하며 2승 10패, 승점 5점으로 6위에 머물렀다.
 
한때 한국 여자배구의 레전드로 꼽혔던 김사니의 추락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김사니는 현역 시절 리그 최고의 세터로 꼽히며 2005-2006 V리그 세터상, 2014-2015시즌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상 등 화려한 이력을 쌓았고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수 차례 경험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10년 넘게 활약하며 2012 런던올림픽 4강 신화에 기여했다. 은퇴 후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마지막 소속팀이던 기업은행에서 여자프로배구 선수 최초의 영구결번까지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2017년을 끝으로 은퇴했던 김사니는 방송 해설위원을 거쳐 2020년 5월 친정팀 기업은행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 배구계에 아직은 몇 안 되는 여성 지도자, 그것도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라 차세대 여성 감독감이라는 기대를 모았고 본인도 의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배구인 김사니'가 평생 쌓아올린 명성이 신기루처럼 무너지는데는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달 13일 주장이자 주전 센터였던 조송화가 훈련 도중 무단으로 팀을 이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업은행 내분 사태가 처음 수면으로 떠올랐다. 김사니도 조송화에 이어 사의를 표명하고 팀을 떠났으나 구단의 설득으로 지난달 19일 팀에 복귀했다. 프로구단에서 주장과 코치가 동시에 팀을 이탈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그 이유는 바로 서남원 감독과의 갈등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틀 뒤인 11월 21일 기업은행 구단은 전격적으로 서남원 감독과 윤재섭 단장을 동시에 경질했고, 코치 신분이던 김사니를 감독대행으로 임명했다. 구단의 비상식적인 결정에 배구계와 팬들은 납득하지 못했고, 논란은 오히려 일파만파로 더 악화됐다.
 
설상가상 김사니 감독대행의 부적절한 언행은 가뜩이나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김사니 대행은 지휘봉을 잡은 이후 첫 공식석상에서 "서남원 전 감독으로부터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들었다"고 주장하며 사실상 팀내 갈등의 책임을 전임 감독에게 떠넘겼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폭언이 있었는지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오히려 서남원 감독이 KBS 등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폭언 사실을 강하게 부인하며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라고 반박하자, 김사니는 "나도 잘못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다시 말하겠다"고 답을 피했다.

김사니는 자신을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것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했지만, 배구계와 팬들의 전반적인 반응은 김사니야말로 선수단-프런트를 배후에 업고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전임 감독을 몰아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배구계 동료 선후배들도 모두 등을 돌렸다. 김사니에게 최후의 결정타가 된 것은 감독들의 집단 악수 거부 사태였다.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을 시작으로 여자프로배구 감독들 전원이 앞으로 기업은행과의 경기에서 김사니 감독대행과는 악수를 하지 않겠다는 공개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김사니는 이번 사태로 단지 기업은행이라는 구단을 떠나는 것을 넘어 지도자로서, 배구인으로서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다. 코치로서 팀을 무단이탈했고 감독에 노골적으로 항명과 월권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으며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인물을 지도자로서 다시 불러줄만한 감독이나 구단은 없다.
 
한편으로 비난의 초점이 한동안 김사니에게 지나치게 쏠린 감이 있지만, 이번 사태의 주범이자 몸통은 어디까지나 IBK 기업은행 구단이다. 선수-코치-감독이 내분을 일으킬 동안 구단 프런트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고, 심지어 석연찮은 이유로 감독을 내친 것도 모자라, 항명의 주체에게 감독대행을 맡기는 어이없는 후속 대처로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서남원 감독-김사니 등 이 사건에 연루된 수많은 배구인들이 이미지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결국 이번 사태에 연루된 누구도 승자는 없고 모두 패자만 남은 제로섬 게임이 됐다. 감독-단장에 이어 감독대행까지 불명예스럽게 사퇴하면서 당장 리더십의 공백도 크지만, 앞으로 누가 이런 구단을 믿고 선뜻 감독을 맡으려고 할지도 의문이다.
 
이제는 구단을 대신하여 책임을 뒤집어쓰고 화살받이 역할을 도맡던 김사니나 조송화, 서남원 감독도 더 이상 없다. 더이상 사태 수습을 구단 내부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기업은행 모기업이 전면에 나서서 이 모든 책임을 직접 감수하고 시시비비를 다시 가려야 한다. 기업은행이 이번 사태를 앞으로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구단의 존재 의의가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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