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시절, 그의 이름을 대면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공격보다 수비를 떠올렸다. 누군가는 그를 '수달(수비의 달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KBO리그에서 외야 수비를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던 선수였다.

2010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연장 11회말 동점 적시타로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해내는가 하면, 2013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정확한 홈 송구로 상대의 득점을 저지했다. 가을만 되면 늘 명승부를 연출한 두산 베어스의 중심에 있었던, 외야수 임재철이 그 주인공이다.

그 이후 LG 트윈스, 롯데 자이언츠를 거쳐 2015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그는 조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10년 넘게 시간을 보낸 프로 무대와는 조금 거리가 먼, 리틀야구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북일고 인스트럭터로 일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야구단을 운영 중인 임재철 '단장'을 지난 달 29일 서울 모처에서 직접 만났다.

프로에서 15년 넘게 뛴 베테랑이 리틀야구로 향한 이유
 
 임재철 단장은 선수도, 코치도 결코 쉽게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임재철 단장은 선수도, 코치도 결코 쉽게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 임재철 단장


은퇴 이후 다양한 진로를 꿈꿀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지도자 과정을 밟기 마련이다. 구단 입장에서도 수업을 받고 나서 코칭스태프에 합류해 후배들과 함께 호흡하길 원한다.

그러나 프로 지도자의 길로 향하지 않은 임재철 단장은 '불안정성'에 대한 걱정이 컸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정규시즌이 끝나고 베테랑 선수들, 혹은 성과가 뚜렷하지 못한 감독이나 코치가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는 것을 보면서 프로 무대와 거리를 두게 됐다는 것이 임 단장의 이야기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수들이든 코치들이든 해고 통보를 받아요. 성적을 내지 못하는 감독님들도 마찬가지이고요. 프로의 세계에서 선수와 코치 모두 직업이 안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1999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입성해 15년 넘게 KBO리그에서 활약한 임재철 단장은 2017년 말부터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서 작게나마 리틀야구단을 꾸렸다. 처음엔 인원도 많지 않았고 부지도 작았지만,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4년째 야구단을 유지 중이다.

야구단이 처음 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훈련 장소라고는 실내연습장 한 곳이 전부였으나 2019년 8월 기존 훈련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부지를 이전했고, 현재는 총 500평 규모의 실내외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그땐(2017년) 어린 친구들을 가르칠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상태였는데, 날이 지날수록 경험이 조금씩 쌓인 것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여기에 여러 야구인과의 만남을 통해 그런 부분이 어느 정도 정립됐던 것 같아요. 또한 학부형으로 만났던 분들이 '바른야구'가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기도 했고요."

리틀야구의 매력에 흠뻑... 그래서 더 책임감 느낀다

'승리'가 우선시되는 프로와 달리 리틀야구는 아무래도 '과정'이 더 부각된다. 그래도 이기는 야구를 하는 것만큼 기쁜 게 없다고 말한 임재철 단장은 "애들 야구가 프로보다 더 재밌다"는 표현을 수 차례 반복했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데, 대회에 나가서 저희가 0-8로 지고 있는 경기였어요. 그런데 2이닝 동안 우리 애들이 8점 차를 단숨에 뒤집었어요. 여유롭게 리드를 잡으면서 이겼다고 생각했던 상대팀은 야수들도 대거 교체했는데 그런 경기를 뒤집으니까 애들도 좋아하고, 저도 좋았죠. 이기면 단순히 기분만 좋은 게 아니라 애들 실력도 조금씩 향상되는 게 보이기도 하고요."

임재철 단장은 실력은 부족해도 아이들의 열정 만큼은 프로 선수들 못지않다며 미소를 지었다. 나이도 어리고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단계이기에 갈 길이 한참 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기량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그럴수록 어린 선수들이 바른 방향으로 성장하는 데 더 도움을 주고 싶은 임 단장은 리틀야구에 뛰어든 이후 꾸준히 연구하고, 또 공부하고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해외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면서 야구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고, 매일같이 영상을 살펴보면서 더 나은 코칭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6주간 3시간씩 듣는 일정으로 목요일마다 스포츠 멘탈 코칭 수업을 들어요. 주제는 매일 바뀌고요. 선수 시절 때 마음 고생을 겪은 시기가 길다 보니 그런 부분(멘탈)에 대한 중요성을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현역 시절일 땐 늘 운동이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다들 하나씩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죠."

그 누구보다도 한국 야구 발전을 진심으로 원하는 임재철 단장
 
 임재철 단장은 야구계가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씨앗'이 잘 자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임재철 단장은 야구계가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씨앗'이 잘 자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 임재철 단장


최근에는 기존의 리틀야구단과 더불어 올해 9월 용인시가 창단한 샐러드볼 야구단까지 맡았다. 야구단의 이름은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상호 공존하며 조화로운 통합을 이룬다는 의미의 '샐러드볼 이론'에서 유래됐다. 야구단은 4명의 다문화 가정 아동 8명의 비다문화 가정 아동으로 구성됐고, 이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임 단장 및 코치진의 지도 속에서 다양한 훈련을 받고 있다.

야구단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 것은 지자체가 아닌 임재철 단장이었다. 임 단장은 용인시에 직접 재능 기부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이를 수용한 용인시가 인원을 구성하면서 하나의 팀이 완성됐다.

지난 달 25일에는 백군기 용인시장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남성건 부회장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아이들과 임 단장을 격려했다. 또한 이 자리에 임재철 단장의 요청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온 KBSN스포츠 박용택 해설위원이 일일 코치로 나서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임재철 단장은 더 나아가 리틀야구가 탄력을 받아 한국 야구 전체가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지막으로 임 단장이 꺼낸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리틀야구는) 프로에 비하면 아직 씨앗에 불과한 단계잖아요. 저희가 그 씨앗을 잘 크게끔 도와주는 것, 그게 야구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측면에서 저와 같은 지도자들의 역할이 야구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기반을 잘 다져서, 또 올바른 습관으로 진학하고 성장해야 그 친구들에게도 플러스가 되고 발전이 이루어지니까요."

올해 출범 40주년을 맞이한 KBO리그는 칭찬보다 비판을 더 많이 들어야 했다.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닌, 구성원 모두가 반성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어린 선수들의 육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 임재철 단장의 이야기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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