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 영화 8편을 비롯해 총 관객수가 1억8400만 명(조연 포함)에 빛나는 오달수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각각 누적관객 1억 명을 돌파한 송강호와 류승룡, 황정민은 대한민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흥행배우들이다.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1억 관객을 돌파한 시점이 모두 50세 전후였다는 점이다. 적어도 1억 명의 관객들에게 인정 받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하늘의 뜻을 알 정도의 경험과 연륜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1억 명의 관객을 돌파한 하정우는 예외다. 2008년<추격자>를 통해 본격적인 흥행배우 대열에 합류한 하정우는 지난 2018년 <신과 함께-인과 연>을 통해 송강호,황정민,오달수에 이어 역대 4번째로 '1억 관객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그리고 이듬 해 류승룡이 <극한직업>을 통해 '1억 관객 클럽'에 5번째로 합류했다). 1억 관객을 돌파했을 당시 하정우의 나이는 고작 만 40세에 불과했다.

하정우의 첫 번째 천 만 영화는 하와이 피스톨을 연기했던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었다. 그 전까지는 여러 작품을 흥행시키면서도 소위 '메가 흥행작'은 많지 않았는데 하정우가 출연한 여러 영화들 중에서도 자신의 실제 성격과 닮았다며 유난히 애정을 드러냈던 캐릭터가 있었다. 지난 2008년 20억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전국39만 관객(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을 동원했던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에서 맡았던 캐릭터 조병운이었다.
 
 20억 원으로 제작비가 많지 않았던 <멋진 하루>는 39만 관객으로도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20억 원으로 제작비가 많지 않았던 <멋진 하루>는 39만 관객으로도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윤기 감독 커리어 최고 흥행작

영화계에서는 선보이는 작품마다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하고도 평단의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감독이 있는 반면에 흥행에서는 아쉬운 성적을 올리지만 평론가들이나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언제나 좋은 평가를 받는 감독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감독들은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더 많은 관객들이 감상하고 공감해주길 기대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윤기 감독은 안타깝게도 후자에 해당하는 감독이다.

이윤기 감독은 특유의 섬세한 연출과 일상적인듯 하면서도 독창적인 이야기로 연출하는 작품들마다 언제나 평론가들과 영화 마니아들의 극찬을 받는다. 하지만 정작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던 작품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이윤기 감독은 지금까지 7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지만 이윤기 감독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은 도합 100만도 채 되지 않는다.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브라이언 싱어 등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들을 대거 배출한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이윤기 감독은 2005년 <여자,정혜>를 연출하며 장편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윤기 감독은 <여자, 정혜>를 통해 베를린 영화제 칼리가리상과 싱가포르 국제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능력을 인정 받았다. 2006년에는 한효주 주연의 <아주 특별한 손님>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8년에 개봉한 <멋진 하루>는 '칸의 여왕' 전도연과 <추격자>로 충무로 최고의 젊은 배우로 떠오른 하정우가 함께 출연하며 많은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다. 두 배우의 실감나는 생활연기와 이윤기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였던 <멋진 하루>는 전국 39만 관객을 동원하며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이윤기 감독은 <멋진 하루>를 통해 <놈놈놈>의 김지운 감독, <님은 먼 곳에>의 이준익 감독을 제치고 백상예술대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윤기 감독은 2011년 <시크릿가든>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군에 입대한 현빈과 임수정 주연의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전도연과 공유 주연의 <남과 여>, 김남길과 천우희가 출연한 <어느날>을 선보였다. 하지만 유명배우가 출연했던 세 작품 모두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윤기 감독의 차기작들이 흥행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전국 39만의 <멋진 하루>는 2021년까지 본의 아니게(?) 이윤기 감독 커리어 최고의 흥행작으로 남아있다.

박찬욱 감독도 극찬한 하정우의 생활연기
 
 영화 속에서 전도연(오른쪽)은 항상 불만에 가득찬 표정, 하정우는 늘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다.

영화 속에서 전도연(오른쪽)은 항상 불만에 가득찬 표정, 하정우는 늘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어느 날, 전 남친에게 빌려준 돈 350만원이 생각난 희수(전도연 분)는 경마장에 찾아가 자신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은 병운(하정우 분)을 만난다. 병운은 돈을 빌렸다는 사실조차 잊은 듯 희수에게 일상적인 안부를 묻고 이 같은 행동은 희수를 더욱 화나게 한다. 하지만 다른 곳에 가야 돈을 줄 수 있다는 병운의 변명에 희수는 병운에게 끌려 다닐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두 사람은 350만원을 구하기 위한 하루 동안의 짧은 여행(?)을 시작한다.

병운은 희수를 데리고 돈을 꾸기 위해 자신과 인연이 닿았던 여성들을 찾아 다닌다. 그 중에는 350만원이 아니라 3500만원도 꿔줄 수 있을 거 같은 부자 사모님(김혜옥 분)도 있었고 작은 마트에서 일하며 힘들게 돈을 버는 친구(장소연 분)도 있었으며 화려한 집에 사는 직업이 의심스러운 젊은 여자(오지은 분)도 있었다. 하지만 희수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사실은 병운이 찾아간 여자들 모두가 병운을 좋아하고 병운을 돕기 위해 애를 썼다는 점이다.

그렇게 병운과 하루를 보내면서 희수는 조금씩 병운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게 되고 병운도 "내가 조금 단순한 건 사실인데,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을걸?"이라며 희수를 향한 마음을 표현했다. 비록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약속도 하지 못하고 헤어지지만 병운을 처음 만났을 때 잔뜩 표정이 굳어 있던 희수는 먼발치에서 병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병운과의 행복했던 추억들을 떠올리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전도연과 하정우는 2005년 SBS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대통령의 딸과 그를 지키는 경호원으로 한 차례 연기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 때문인지 두 사람은 <멋진 하루>에서도 대단히 자연스러운 연기호흡을 선보였다. 특히 하정우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는 식사가 아니라 스넥"이라고 평가절하했다가 자신의 차례가 오자 상당히 능숙하고 디테일한 주문을 하며 관객들에게 뜻밖의 웃음을 전달했다.

하정우가 연기한 병운은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한국 영화에 기억될 만한 남성 캐릭터"라고 극찬을 받은 인물이다. 실제로 박찬욱 감독은 <멋진 하루>의 병운 캐릭터를 참고해 <아가씨>에서 하정우가 연기했던 백작 캐릭터를 만들었다. 하정우 역시 <아가씨>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나와 조병운과 백작의 공통점은 바로 '생존본능'"이라며 전혀 다른 듯한 <멋진 하루> 병운과 <아가씨> 백작의 공통점에 대해 인정하기도 했다.

카메오로 짧게 지나가는 신예스타 한효주
 
 김영민(오른쪽)은 멋진 하루에서 아내와 병운의 사이를 의심하는 의처증이 심한 남편을 연기했다.

김영민(오른쪽)은 멋진 하루에서 아내와 병운의 사이를 의심하는 의처증이 심한 남편을 연기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나의 아저씨>의 도준영, <구해줘2>의 성철우 목사,<사랑의 불시착>의 정만복, <부부의 세계>의 손제혁 등 선역과 악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 김영민은 어려 보이는 얼굴과 달리 어느덧 50세를 훌쩍 넘긴 중견 배우다. <멋진 하루>에서는 병운의 승마동아리 후배의 남편으로 출연해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하는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김영민은 곧바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김명민 분)의 라이벌 정명환을 연기했다.

작은 마트에서 일을 하면서 남편 없이 혼자 딸을 키우는 은정은 친구 병운의 부탁에 힘든 살림에도 선뜻 40만원을 구해 희수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희수에게 병운을 나쁘게 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장준혁(김명민 분)의 오진을 옆에서 목격한 유미라 간호사를 연기하며 주목 받은 배우 장소연은 <하얀거탑>의 안판석 PD가 연출한 <아내의 자격> <밀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도 잇따라 출연했다.

어느덧 한국 나이로 30세가 됐음에도 여전히 드라마 <꼭지>의 원빈 조카와 <매직키드 마수리>의 최이슬로 유명한 김희정도 <멋진 하루>에 출연해 소연을 연기했다. 선생님도 포기한 문제아지만 병운과는 유난히 사이가 좋은 소연은 견인된 희수의 차를 찾으러 갈 때도 동행하며 두 사람의 말벗이 된다. 김희정은 최근 SBS 축구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송소희와 황소윤이 속한 'FC 원더우먼'의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멋진 하루>에는 영화 <투사부일체>와 드라마 <봄의 왈츠> <일지매> 등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신예배우 한효주도 특별 출연했다. 한효주는 이윤기 감독이 연출했던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 주인공 이보경을 연기했던 인연으로 <멋진 하루>에서 여자화장실에서 들리는 전화통화 목소리와 비 오는 버스정류장 장면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역할로 출연했다. 워낙 짧게 등장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뛰어난 관객이 아니면 찾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멋진 하루 이윤기 감독 전도연 하정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