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에서도 다양한 문화와 국적의 외국인 감독들이 활동하는 것을 보는 게 이제 그리 낯설지 않은 시대다. 특히 프로야구에서는 올해에만 외국인 감독에 관한 이색적인 기록이 속출했다.

2021시즌 KBO리그 10개 구단 중 무려 3팀이 외국인 사령탑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2020시즌부터 지휘봉을 잡았던 맷 윌리엄스 KIA 타이거즈 감독에 이어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이글스 감독이 부임했다. 그리고 지난 5월에는 롯데 자이언츠가 지난 5월 퓨처스팀 사령탑인 래리 서튼 감독을 승격시켰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 역사상 외국인 감독이 3명이나 있었던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올해 이전에는 롯데 제리 로이스터(2008-2010), SK 트레이 힐만(2017-2018), KIA 윌리엄스(2020) 감독이 있었지만 당시 이들은 모두 리그 내 유일한 외국인 감독이었다. 또한 KIA와 한화는 구단 역사상 첫 외국인 감독이었고, 롯데는 유일하게 2번째이자 유일하게 시즌 중 교체와 승격이라는 방식으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 기록을 세웠다.
 
2020년대 들어 깨진 외국인 감독 불패 신화

그동안 KBO리그를 거쳐간 외국인 감독은 비록 그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실패한 적도 없었다. 로이스터 감독은 자신의 부임 이전까지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롯데의 암흑기를 청산하고 팀을 3년 연속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화끈한 쇼맨십과 '노피어(두려움 없는)' 공격야구로 구도 부산의 야구 열기를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힐만 감독은 부임 첫 해 SK를 5위로 이끈 데 이어 2년차에는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며 KBO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외국인 감독으로 정상에 오르는 위업을 세웠다. 현재는 SSG로 인수되며 힐만의 우승은 SK라는 이름으로 거둔 마지막 우승으로 남게 됐다.

또한 힐만 감독은 일본에서도 2006년 니혼햄 파이터즈를 정상으로 이끈 경력이 있어서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유일무이한 외국인 감독'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철저한 선수 관리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세밀한 야구, 수평적이면서 개방적인 자세로 선수-팬-프런트를 아우르는 소통의 리더십으로 호평을 받았다.

로이스터와 힐만의 공통점은 재임기간을 합쳐 100% 가을야구 진출(5/5)을 일궈냈다는 점 그리고 메이저리그식 자율과 책임의 리더십이 한국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데 있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하던 한국프로야구에 외국인 감독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KIA 타이거즈를 떠나게 된 맷 윌리엄스 감독

KIA 타이거즈를 떠나게 된 맷 윌리엄스 감독 ⓒ KIA 타이거즈 홈페이지

 
하지만 로이스터-힐만이 보여준 외국인 감독의 불패 신화는 2020년대 들어 깨졌다. 지난 2020년 윌리엄스 감독이 맡은 KIA는 6위에 그치며 KBO리그 외국인 감독 중 최초로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는 기록을 세웠다. 올시즌에는 공교롭게도 서튼의 롯데가 8위, 윌리엄스의 KIA가 9위, 수베로의 한화가 각각 최하위를 기록하며 외국인 감독이 이끄는 팀들이 모두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여 '3약'으로 전락했다.
 
심지어 윌리엄스 감독은 계약기간 1년을 남겨놓고 경질되며 외국인 감독 중 최초로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한 감독, 재임기간 중 한 번도 포스트시즌을 밟지 못한 감독이라는 불명예 기록까지 수립했다. 특히 2021시즌 9위는 KIA의 전신 해태 타이거즈 시절을 포함해 구단 역대 최저 순위다. KIA는 지난 2004·2007년 8개 구단 체제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바 있지만 10개 구단 체제가 정착된 이후로 9위는 올해가 처음이었다.
 
윌리엄스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홈런-타점왕과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한 슈퍼스타로 KBO리그 역대 외국인 선수와 감독을 통틀어도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던 인물이다. 지도자로서도 워싱턴 내셔널스를 이끌며 2014년에 메이저리그 올해의 감독상(내셔널리그)까지 수상한 바 있다. 하지만 KBO리그에서는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초라한 실패를 맛봤다. KIA에서 2시즌 동안 남긴 성적은 288경기에서 131승 10무 147패에 그쳤다.
 
윌리엄스 감독은 역대 외국인 감독 중 유독 불운한 인물이기도 했다. 부임 당시 KIA의 전력 자체가 정점을 지난 하향곡선으로 접어드는 시점이었고 특정 선수 의존도가 높았다.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속에 2년차에는 에이스 양현종마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며 전력이 더 약해졌다. 하지만 윌리엄스 감독 역시 KBO리그 적응에 실패하며 뚜렷한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선수 기용이나 리더십은 오히려 국내 감독들과 비교해도 보수적이고 유연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 지켜봐야 할 수베로-서튼 감독
 
선수들과 대화하는 수베로 감독 10월 26일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신한은행 SOL KBO리그'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한화 수베로 감독이 선수들과 대화하고 있다.

▲ 선수들과 대화하는 수베로 감독 10월 26일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21 프로야구 신한은행 SOL KBO리그'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한화 수베로 감독이 선수들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수베로와 서튼 감독은 아직은 올시즌의 성과만으로 섣불리 평가하기는 어렵다. 수베로 감독은 리그 최약체 전력으로 꼽히던 한화의 지휘봉을 물려받아 2021시즌은 온전히 리빌딩이라는 과제에 전념해야 했다. 예상대로 한화는 지난해에 이어 또 한번 최하위에 그쳤고 수베로 감독은 KBO리그 외국인 감독 첫 꼴찌라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국내 선발 최다인 14승을 달성한 김민우라는 에이스를 키워냈고, 하주석·정은원·노시환으로 이어지는 주전급 내야진을 구축했다. 이밖에도 강재민, 윤대경, 김범수, 김기중 등 많은 유망주들이 가능성을 보여줬다. 파격적인 수비 시프트와 주루 플레이로 수베로호만의 팀컬러를 확립한 것도 성과다. 물론 아직 한화는 전반적인 투수력와 외야진에서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다음 시즌 FA 영입 등을 통하여 전력을 보강한다면 한화가 더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는 게 위안이었다.
 
서튼 감독은 지난 5월 허문회 감독의 경질과 함께 시즌 중 1군 사령탑으로 승격되어서 당장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롯데는 올시즌 8위에 그쳤지만 서튼 감독이 이끈 114경기에서 53승 53패 8무로 정확히 5할 승률을 올렸다.
 
시즌 초반 꼴찌였던 팀을 빠르게 정비해 중위권 싸움으로 이끌었고, 전임 감독 시절에 배제되었던 유망주와 백업멤버들을 기용하면서 성과를 올린 것은 호평을 받기 충분했다. 이미 KBO리그에서 외국인 선수와 2군 감독 경력을 거치면서 팀 내부사정과 한국야구 문화에 익숙하다는 것은 서튼 감독의 최대 장점이다. 간판스타 이대호의 마지막 시즌이 될 2022년은 서튼 감독과 최소한 가을야구 진출 이상의 성과로서 증명해내야 한다.
 
외국인 감독이 남긴 엇갈린 성과는 단지 개인의 책임으로만 볼 수는 없다. 아무리 화려한 경력과 이름값을 자랑하는 외국인 감독이라고 해도, 리그와 팀에 녹아들지 못하고 제대로 지원과 운도 따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로이스터와 힐만의 성공은 자신만의 확고한 야구스타일과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선수-팬-프런트과의 소통에 개방적이었고 자율 속에서 책임을 요구하는 리더십이 시대의 흐름과도 잘맞았다. 무엇보다 그들이 이끌던 당시의 롯데와 SK는 충분히 잠재력있는 선수층을 보유하며 주축들이 전성기를 맞이하던 시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이라고 해서 당연히 만능은 아니다. 윌리엄스 감독의 실패 사례는 본인의 능력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팀이 가야 할 방향성이나 타이밍과는 맞지않는 감독을 선임한 데 있었다. 당시 KIA는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로 서서히 리빌딩을 준비해야 할 과도기였지만, 윌리엄스 감독은 육성보다는 성적을 추구했던 지도자였다.
 
2022시즌에는 서튼-수베로 두 감독이 외국인 사령탑의 명예회복에 도전한다. 하지만 내년에도 롯데-한화가 가을야구에 진출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올시즌에는 비교적 관대한 평가를 받았지만 2년차에는 성적에 대한 기대치가 올해보다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선수뿐만 아니라 지도자도 무한 경쟁이 요구되는 시대에, 외국인 감독의 다양한 야구스타일과 리더십이 국내 지도자들과 '선의의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KBO리그도 더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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