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와 중앙대, 한양대는 뛰어난 배우들을 많이 배출한 학교로 유명하다. 동국대의 고현정, 김혜수, 이미연, 전지현, 신민아, 중앙대의 하정우, 고아라, 김희애, 박중훈, 장나라, 한양대의 설경구, 이병헌, 김민정, 김소현, 정유미 등이 대표적이다. 만약 이 세 학교가 대대적으로 동문회라도 개최한다면 어지간한 방송국의 연말 시상식이나 영화제를 방불케 할 만큼 스타들이 총출동하게 될지도 모른다.

동국대와 중앙대, 한양대 못지 않게 많은 문화·예술인들을 배출한 학교는 바로 서울예대다. 1962년 개교해 내년이면 60주년을 맞는 서울예대는 일일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화예술인들을 배출한 명문 예술사학이다. 이제는 '국민MC'라는 수식어도 약해 보이는 유재석(중퇴)을 비롯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전도연, 패션모델 겸 배우 장윤주, <모가디슈> < D.P >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구교환 등이 모두 서울예대 동문들이다.

이처럼 많은 유명인들을 배출한 서울예대에서도 90학번은 '전설의 학번'이라 불릴 정도로 연극과에서 많은 스타들을 배출했다. 천만 영화를 네 편이나 보유한 류승룡을 비롯해 황정민, 신동엽(중퇴), 안재욱, 임원희 등이 모두 연극과 90학번 출신들이다. 그리고 2003년 한국 영화 최초의 천만 영화 <실미도>에 출연했던 정재영 역시 그 유명한 서울예대 연극과 90학번 출신으로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배우다.
 
 장진 감독이 수장으로 있는 필름 있수다에서 제작한 <바르게 살자>는 전국 210만 관객을 동원했다.

장진 감독이 수장으로 있는 필름 있수다에서 제작한 <바르게 살자>는 전국 210만 관객을 동원했다. ⓒ CJ 엔터테인먼트

 
어떤 역할도 소화할 수 있는 넓은 연기 폭의 배우

고교 시절부터 청소년 연극제에서 입상을 할 정도로 연기에 두각을 나타냈던 정재영은 서울예대 연극과 입학 후 고교 시절부터 자신의 연극을 인상 깊게 본 장진 감독을 만나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다(실제로 정재영은 <허탕> <택시 드리벌> <서툰 사람들> 등 장진 감독의 대표 연극에 빠짐 없이 출연했다). 그리고 1996년 <박봉곤 가출사건>의 불량배와 <초록물고기>의 캬바레 손님 역을 통해 영화 출연을 시작했다.

여러 영화에서 조·단역으로 출연하던 정재영은 2001년 장진 감독의 <킬러들의 수다>에서 킬러 4인방 중 한 명인 재영을 연기했다. 비록 킬러 4인방 중 비중은 가장 작았지만 신하균, 원빈처럼 떠오르는 스타배우들과 함께 당당히 주연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2002년 류승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전도연을 끈질기게 쫓는 독불을 연기한 정재영은 2003년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에 캐스팅했다.

<실미도>에서 설경구와 함께 684부대를 이끄는 한상필 역을 소화한 정재영은 <실미도> 이후 <아는 여자>와 <귀여워>에 잇따라 출연했다. 특히 2005년 인민군 장교 리수화를 연기했던 <웰컴 투 동막골>은 8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그해 한국영화 최다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장진 감독과는 <박수칠 때 떠나라>의 카메오 출연과 <거룩한 계보> 주연으로 인연을 이어갔다.

2007년에 개봉한 라희찬 감독의 <바르게 살자>는 2006년 <마이 캡틴 김대출>(전국 12만)로 쓴 맛을 봤던 정재영의 두 번째 단독 주연작이었다. 정재영은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었던 정도만 캐릭터를 잘 소화하면서 210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정재영은 그 후 <신기전> <김씨 표류기> <이끼> <글러브> <카운트다운> <내가 살인범이다> 등에 차례로 출연하며 신뢰감 높은 배우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재영은 2015년 KBS 드라마 <어셈블리>에서 해직 노동자 출신의 여당 초선 국회의원 진상필을 연기하며 뒤늦게 드라마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두 시즌에 걸쳐 방영된 법의학 수사물 <검법남녀>를 통해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지난 8월에 종영된 드라마 <미치지 않고서야>에서 문소리와 연기호흡을 맞췄던 정재영은 <명량>의 속편인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명나라 장수 진린을 연기할 예정이다.

성실한 그에게 은행강도를 맡긴 건 큰 실수였다
 
 정재영은 <바르게 살자>를 통해 원톱주연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배우임을 증명했다.

정재영은 <바르게 살자>를 통해 원톱주연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배우임을 증명했다. ⓒ CJ 엔터테인먼트

 
수사과 형사였던 정도만(정재영 분)은 도지사의 비리를 수사하다가 교통과 순경으로 좌천됐다. 정도만이 근무하는 삼포시는 유난히 잦은 은행강도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했는데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 이승우(손병호 분)는 민심도 얻고 본청에 잘 보이려는 마음에 유례없는 은행강도 모의훈련을 실시한다. 그리고 첫 만남에서 경찰서장에게 신호위반 딱지를 뗀 정도만은 범인 역할로 낙점된다.

하지만 언제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정도만에게 범인 역을 맡긴 것은 서장의 실수였다. 정도만은 범죄 영화와 소설, 기사 등 각종 참고자료(?)들을 찾아 보면서 연구에 매진했고 혈혈단신으로 순식간에 은행을 장악해 버린다. 체포조 역할을 맡은 우종대 반장(고창석 분)과 우슈 특채로 입사한 한소영 형사(엄수정 분)가 체포를 시도하지만 총을 가진 정도만에 의해 허무하게 살해된다(물론 모의훈련이기 때문에 실제 사격은 이뤄지지 않았다).

범인의 뜻하지 않은 맹활약(?)에 바짝 약이 오른 서장은 경찰특공대를 투입, 금고를 통해 은행진입을 시도하지만 CCTV를 통해 이를 확인한 정도만은 금고의 산소투입을 막아 경찰특공대를 제압해 버린다. 그렇게 8명의 경찰과 인질을 죽인 정도만은 남은 인질들을 풀어준 후 서장이 이끄는 경찰들과 대치하다가 인질과 자신에게 (물론 가짜로) 총을 쏜 후 길었던 모의훈련을 경찰이 아닌 스스로의 손으로 종결했다.

1991년에 개봉한 일본영화 <노는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를 리메이크한 <바르게 살자>는 은행강도 모의훈련이라는 독특한 상황과 융통성 없는 정도만이라는 캐릭터가 배우 정재영과 만나 묘한 시너지를 발산했다. 특히 협상전문가가 정도만의 어머니(이용이 분)를 모셔 왔을 때 어머니가 "도만아, 인감 어디다 뒀냐? 내일 아침에 동사무소에 가야 하는디"라고 외치는 씬은 정도만의 '팔 굽혀 펴기'와 함께 관객들을 가장 크게 웃겼던 장면이었다.

리메이크 영화라지만 장진 감독이 제작과 각본에 참여한 영화답게 <바르게 살자>에서는 소위 '장진식 유머'가 자주 등장한다. 체포조로 투입됐다가 사망 처리된 우 반장에게 걸려온 전화를 정도만이 대신 받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융통성 없는 정도만은 우 반장의 어머니에게 "우 반장님 좀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뭐 훈련 중에 돌아가신 거니까 순직 뭐 비슷한 건데"라고 말하면서 심장이 약한 우 반장의 어머니를 혼절시켰다.

정도만과 손발이 잘 맞았던 창구직원
 
 이영은(오른쪽)이 연기한 전다혜는 영화 중반부터는 마치 정도만과 함께 은행을 터는 공범처럼 행동한다.

이영은(오른쪽)이 연기한 전다혜는 영화 중반부터는 마치 정도만과 함께 은행을 터는 공범처럼 행동한다. ⓒ CJ 엔터테인먼트

 
<논스톱4>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이영은은 30편 가까운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영화 출연은 양 손에 넉넉히 꼽을 수 있을 만큼 적다. 그중에서도 이영은의 두 번째 영화였던 <바르게 살자>는 2009년에 개봉했던 <구세주2>와 함께 그녀의 영화 출연작 중 가장 비중이 큰 작품이었다. 나머지 작품들은 대부분 <그녀를 믿지 마세요>처럼 출연분량이 적었거나 <여름, 속삭임>처럼 개봉에 의의를 둘 만큼 규모가 작은 영화들이었다.

<바르게 살자>에서 이영은은 다른 은행에서 개인 업무를 보느라 지각을 해 지점장(주진모 분)에게 혼이 나는 창구직원 전다혜를 연기했다. 초반에는 은행에 있는 많은 인질들 중 한 명에 불과했던 다혜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정도만과 손발이 잘 맞다가 후반부에는 사실상 '공범'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정도만에게 마지막으로 살해된 후에는 "저 잘했죠? 오늘만 해도 몇 명이 죽는 걸 봤는데요"라며 정도만과 교감(?)을 나눈다.

배우 고창석은 2005년 <친절한 금자씨>에서 김부선의 남편으로 출연했지만 비중이 너무 작았고 다른 작품에서도 조·단역을 전전했다. 그런 고창석에게 <바르게 살자>의 우종대 반장은 영화 데뷔 후 처음으로 찾아온 비중 있는 역할이었다. 비록 초반에 사살(?)되지만 영화 종반까지 정도만과 설전을 벌이며 관객들을 즐겁게 한 고창석은 2010년 장훈 감독의 <의형제>에서 베트남 보스를 연기하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씬스틸러로 급부상했다.

2002년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신하균이 맡았던 류의 누나를 연기했던 배우 임지은은 <바르게 살자>에서 리포터 김성미 역으로 우정 출연했다. 다른 취재 때문에 삼포시를 찾았다가 즉흥적으로 은행강도 모의훈련을 취재하고 이를 방송국으로 보내 중계차를 은행으로 불러 오는 데 성공한다. 김성미 리포터는 지방 소도시의 모의훈련이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는 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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