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 프로레슬링의 아이콘으로 군림하던 헐크 호건은 1982년 <록키3>에서 록키와 자선경기를 펼치는 프로레슬러로 출연했다. 이를 계기로 WWF에 입성한 헐크 호건은 최고의 프로레슬러가 되면서 <죽느냐 사느냐> <우주에서 온 사나이> <산타클로스> <샤도우 워리어스> 등 여러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오늘날 헐크 호건을 프로레슬러가 아닌 배우로 기억하는 대중들은 거의 없다.

이처럼 아무리 한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스포츠 스타라 해도 다른 분야에서 또다시 성공을 거두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무리하게 고집을 피우다가는 스포츠 스타로서의 명성마저 흐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에서 헐크 호건 못지않은 명성을 얻은 이 스타는 배우로 변신한 후에도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레슬링 팬들에게는 '더 락'으로 더 유명한 액션스타 드웨인 존슨이 그 주인공이다.
   
최고의 프로레슬러에서 최고의 흥행배우로

프로레슬러로 활동했던 외조부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드웨인 존슨은 1996년 WWF에서 데뷔해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과 함께 애티튜드 시대(WWE 최대 중흥기로 불리는 거칠고 터프한 레슬러들의 시대)를 이끌었다. 특히 더 락은 화려한 기술과 리액션은 물론이고 '역대 최고'로 불리는 뛰어난 마이크 워크로 팬들을 사로잡았다(프로레슬러는 기술만큼이나 링 위에서의 언변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최고의 레슬러로 군림하던 드웨인 존슨은 2001년 <미이라2>에서 악역 스콜피온 킹으로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미이라>의 스핀오프 <스콜피온 킹>을 통해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2003년에 개봉한 <웰컴 투 더 정글>이 만족할 만한 흥행성적을 올리지 못했음에도 드웨인 존슨은 비평가들로부터 '리틀 아널드 슈워제네거'라는 평가를 받았다(실제로 이 영화에는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카메오로 출연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레슬러 활동과 배우 활동을 병행하던 드웨인 존슨은 <웰컴 투 더 정글>을 계기로 영화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워킹 툴> <둠> <미스터 이빨요정>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던 드웨인 존슨은 2011년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와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 신비의 섬>을 통해 세계적으로 9억 61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리며 일약 할리우드의 인기 배우 대열에 합류했다.

드웨인 존슨은 이병헌이 스톰 쉐도우로 출연했던 <지. 아이. 조. 2>가 3억 7500만 달러,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이 2억 700만 달러,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이 15억 15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 보증 수표로 떠올랐다. <쥬만지: 새로운 세계>와 <쥬만지: 넥스트 레벨> <램페이지> 등에 출연하며 명성을 올린 드웨인 존슨은 2018년부터 작년까지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배우로 선정됐다.

드웨인 존슨은 최근 올해도 <데드풀>의 라이언 레이놀즈, <원더우먼>의 갤 가돗과 함께 넷플릭스 영화 <레드 노티스>, 디즈니가 제작한 <정글 크루즈>에 출연하며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내년에도 DC필름스에서 제작하는 <샤잠!>의 스핀오프 영화 <블랙 아담>에 출연할 예정인 드웨인 존슨은 이제 '연기하는 레슬러'가 아니라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변신한 레슬러 출신 배우로 기억되고 있다.

'락 버텀'부터 터미네이터의 한 손 장전까지
   
미식축구 선수 네댓 명은 가볍게 혼내주는 최고의 해결사 벡(드웨인 존슨 분)은 작은 식당을 차려 요리사가 되는 소박한 꿈을 가졌다. 은퇴를 고민하던 어느 날, 벡은 마피아 두목으로부터 미지의 문명에 빠져 남미로 도망 친 아들 트래비스(숀 윌리엄 스코트 분)를 데려오라는 의뢰를 받는다. 벡은 어렵지 않게 트래비스를 찾아내지만 트래비스는 위험천만한 정글에서 신비의 보물 '가토'를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정글로 들어간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냉철함과는 거리가 있던 벡은 트래비스의 감언이설과 정글을 지키려는 현지 민병대를 만나 그들과 함께 가토를 찾아 나선다. 벡과 트래비스는 천신만고 끝에 가토를 찾아내지만 먹으면 잠이 드는 열매를 이용한 마리아나(로사이로 도슨 분)에 의해 보물을 빼앗긴다. 하지만 마리아나 역시 얼마 가지 못하고 정글의 독재자 해처(크리스토퍼 월켄 분)에게 가토를 빼앗긴다. 

해처의 비겁한 소행을 알게 된 벡은 물소떼를 이용해 적들을 당황시킨 후 일당백의 솜씨로 적들을 차례로 괴멸시킨다. 특히 '총은 언제나 불행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아무리 위험한 순간에도 절대 총을 사용하지 않았던 벡이 트래비스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순간 총을 사용해 트래비스를 구해내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그렇게 해처 일당을 일망타진한 벡은 가토를 원래 주인인 마리아나와 원주민들에게 넘기고 트래비스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간다.

벡과 트래비스의 정글모험을 그리고 있는 <웰컴 투 더 정글>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드웨인 존슨의 화려한 액션이다. 드웨인 존슨은 영화 초반부 풋볼 선수들과의 클럽 액션에서부터 자신의 피니시 기술인 '락 버텀'을 선보인다. 특히 총을 사용하기 시작한 마지막 액션에서는 터미네이터로 빙의해 한 손으로 총을 장전하고 정확한 사격을 통해 적을 섬멸하는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

<웰컴 투 더 정글>을 연출한 피터 버그 감독은 론 하워드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배우로 시작해 감독으로 데뷔한 케이스다. 초기에는 <웰컴 투 더 정글> <핸콕> <배틀쉽> 등 가벼운 상업 영화들을 주로 만들다가 2013년 <론 서바이버>, 2016년 <페트리어트 데이> <딥워터 호라이즌> 등을 연출하며 호평을 받았다. 드웨인 존슨과는 지난 2015년 미식축구 드라마 <볼러스>를 통해 12년 만에 재회했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배우의 악역 연기
   
지금이야 20년이 넘는 경력과 4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중견배우가 됐지만 <웰컴 투 더 정글>은 레슬러로 훨씬 유명했던 드웨인 존슨의 세 번째 장편 영화였다. 다년간의 레슬러 경력으로 액션 연기에는 특화돼 있지만 아무래도 홀로 영화를 이끌어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트래비스 역으로 <아메리칸 파이>에서 스티브 스티플러를 연기했던 숀 윌리엄 스코트가 투입된 이유다. 

<아메리칸 파이>를 통해 강렬하게 데뷔한 숀 윌리엄 스코트는 <데스티네이션> <아메리칸 파이2> <방탄승> 등에 출연했다가 <웰컴 투 더 정글>을 통해 고고학에 푹 빠진 트래비스를 연기했다. 허풍과 거짓말만 앞세운 캐릭터 같지만 해처 부하와의 1대 1 격투에서는 비겁한 방법을 쓰지 않고도 승리를 거두는 의외의 면도 가지고 있다. 스코트는 애니메이션 <아이스 에이지2>부터 5편까지 주머니쥐 크래쉬의 목소리 연기도 맡았다.

벡에게 선뜻 정글 출입을 허락했다가 벡이 가는 곳에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벡과 트래비스를 추격하는 악역 해처는 1943년생 노장배우 크리스토퍼 월켄이 연기했다. <디어 헌터>로 1979년 미국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캐치 미 이프 유 캔>으로 2003년 영국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월켄은 <웰컴 투 더 정글>에서도 악역으로서 묵직한 연기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낮에는 정글 마을 술집의 바텐더, 밤에는 해처 일당에 맞서는 민병대로 활약하는 <웰컴 투 더 정글>의 히로인 마리아나 역은 로사리오 도슨이 연기했다. 10대 시절부터 배우활동을 시작한 도슨은 2002년 <맨 인 블랙2>에서 로라나 여왕의 딸 로라 공주, <씬시티>에서 매춘부들의 리더 게일을 연기하며 주목받았다. 2015년 마블의 드라마 <데어데블>에서는 '힐러' 클레어 템플을 연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