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 벤투 감독이 자신의 확고한 축구 철학을 한국 대표팀에 점차적으로 이식시키고 있다.

▲ 파울루 벤투 감독 벤투 감독이 자신의 확고한 축구 철학을 한국 대표팀에 점차적으로 이식시키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벤투호를 바라보는 시선은 부정적이었다. 파울루 벤투 한국 대표팀 감독의 축구 철학에 대해 '고집'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날 선 비판을 가한 것이다. 하지만 철학을 고수하며 '마이 웨이(my way)'를 택한 벤투호는 점진적으로 발전을 거듭하며 비판 여론을 완전히 잠재웠다.
 
한국은 지난 17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이라크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차전에서 3-0 대승을 거두며,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9부 능선을 넘었다.
 
내년 11월 21일 개막하는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까지 365일을 남겨둔 가운데 벤투호가 걸어온 발자취와 현재를 진단한다.
 
능동적이고 지배하는 축구
 
벤투의 축구 전술에 대해 일각에서는 '빌드업 축구'로 지칭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축구에서 '빌드업'이란 득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만들어가는 과정을 뜻한다. 즉, 모든 팀이 이러한 빌드업을 시도한다.
 
벤투 감독을 선임한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벤투 감독의 축구를 "능동적인 축구"라고 정의내렸다. 수동적으로 상대팀에 끌려다니는 축구를 지양하고, 선진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한 감독을 물색한 끝에 벤투를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 아무리 한국 축구와 상반된 스타일이라고 하더라도 언제까지 수동적인 축구만 할 수 없다.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결국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4년 임기를 채운 감독이 한 명도 없을만큼 한국 대표팀 사령탑은 독이 든 성배와 같았다.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본선 1년을 남겨두고 감독을 교체해 실패를 맛본 사례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벤투 감독은 지난 2018년 말 KFA 기술 컨퍼런스에서 자신의 축구 철학을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라고 설명했다. 맹목적으로 점유율만 높이는 축구가 아닌 공격을 하기 위해 공을 소유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골키퍼부터 시작해 센터백을 거쳐 3선에 포진한 미드필더에게 안전하게 공을 운반한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센터백 2명 사이 공간으로 내려와서 빌드업에 참여하며, 좌우 풀백들은 적극적으로 높은 지점에 위치해 공격에 나선다. 2선 공격수들도 상대 최종 수비 라인으로 최대한 근접한다. 이는 상대팀이 라인을 올리지 못하는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좌우 측면 수비 배후 공간으로 중앙 미드필더들이 오픈 롱패스를 전개하면서 속도감 있는 전환을 시도하며, 2선 공격수들은 활발한 스위칭과 중앙으로 좁히는 움직임을 가져갈 때 좌우 풀백들이 침투해 측면 공간을 메운다.
 
짧은 패스가 밑바탕이 되면서도 긴 패스를 혼용하며 상대 수비에 혼선을 야기했고, 3선서의에 안정성을 확보해 항상 상대 역습을 대비하도록 했다. 그리고 공격 전개시 소유권을 내주더라도 재빨리 압박으로 전환하며 상대의 빌드업을 억제했다.
 
2018년 8월 한국 대표팀의 새로운 수장으로 부임한 벤투 감독은 1개월 뒤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데뷔전부터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코스타리카를 비롯해 칠레, 파나마, 우루과이 등 피파랭킹이 높은 중남미 팀들을 상대로 내용과 결과를 잡아내며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벤투호가 시행착오를 겪은 것은 밀집 수비를 펼치는 아시아 약체팀들과의 경기였다. 2019 아시안컵에서 필리핀, 키르기스스탄, 바레인, 카타르 등을 상대로 졸전 끝에 8강 탈락에 머물렀다.
 
일관된 전술 컨셉과 4-2-3-1 포메이션에 의존했으며, 선수 배치 또한 매 경기 같았다. 라인을 내리고, 밀집 수비에 치중하는 팀을 상대로 벤투 감독은 이렇다 할 파훼법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 대표팀 한국이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4승 2무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 한국 대표팀 한국이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4승 2무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벤투호가 변하고 있다
 
아시안컵 실패 이후 벤투 감독은 4-2-3-1 대신 4-1-3-2 포메이션을 가동하며, 공격의 비중을 한껏 높이기 시작했다. 원톱이 아닌 투톱으로, 미드필드 구성을 일자가 아닌 다이아몬드 형태로 변화를 추구했다. 빠르고 속도감 있는 공격 전개와 직선적인 플레이가 가미된 벤투호는 볼리비아, 콜롬비아, 호주를 모두 제압한데 이어 아시아 최강으로 분류되는 이란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4-1-3-2 포메이션은 1에 위치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많은 과부하가 걸린다. 정우영, 백승호 등이 이 위치를 잘 소화했지만 결국 후방의 안정감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4-2-3-1과 4-3-3 포메이션으로 회귀를 택한 벤투 감독이다.
 
그 결과 벤투호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서 다시금 성장통을 겪었다. 투르크메니스탄, 레바논, 북한 원정 경기에서 답답함을 노출했다. 2019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서는 직선적인 롱패스 비율을 늘리는 등 평소와는 다른 컨셉의 전술을 내세워 3전 전승 우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2019년까지 벤투호는 비교적 순탄대로를 달려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들어 예상치 않은 코로나19 확산세로 인해 장기간 선수들을 소집하지 못하는 악재를 맞았다. 2020년 11월 멕시코-카타르와의 2연전에서야 유럽파가 합류하면서 완전체를 형성했으나 기초 빌드업 상황에서 약점을 부각시켰다.

벤투호가 가장 큰 고비를 맞은 것은 올해 3월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 참패다. 당시 유럽파들을 소집하지 못하며, 아시아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 위주로 스쿼드를 구성한 탓에 충격의 0-3 패배를 당했다.

 
한국 대표팀 한국 선수들이 지난 11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UAE와의 경기를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한국 대표팀 한국 선수들이 지난 11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UAE와의 경기를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전술적 완성도 높아진 벤투호
 
벤투호가 조금씩 정상궤도로 올라선 계기는 지난 6월 열린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부터다. 6월, 9월, 10월, 11월까지 짧은 간격으로 소집 훈련을 갖게 되면서 선수들도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6월과 9월에는 여전히 시행착오가 있었다. 특히 아시아 최종예선 이라크와의 1차전에서 단조롭고 느린 공격 전개, 지극히 슈팅을 아끼는 소극적인 플레이로 0-0 무승부에 그치면서 여론은 벤투 감독에게 등을 돌렸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 선발, 세밀하게 패스로 풀어가는 전술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작 선수들은 벤투 감독의 훈련 방식과 축구 철학에 만족감을 드러내며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벤투 감독은 비판에 굴하지 않고, 철학을 고수했다. 거센 비난에 시달린 황인범, 정우영에게 확고한 믿음을 보이며, 지속적으로 중용한 결실이 이번 최종예선부터 나타났다. 황인범과 정우영은 미드필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대체 불가임을 입증했다. 
 
레바논과의 2차전에서 첫 승을 거둔 이후 벤투호는 확연한 오름세로 전환했다. 적극적인 슈팅 시도를 통해 이라크전에서 나타난 많은 문제점을 상쇄한 것이다.
 
지난달 16일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 원정 경기는 벤투호의 비관론을 완전히 바꾼 경기였다. 상대의 강한 압박에 당황하지 않은 채 볼을 소유하고, 경기를 컨트롤하며 능동적으로 흐름을 이끌었다. 여기에 속도와 강한 압박 전술이 더해지면서 한층 완성도 있는 팀으로 변모했다.
 
11월 열린 UAE-이라크와의 2연전에서도 내실 있는 경기 내용으로 2승을 챙기면서 본선 진출에 한걸음 다가섰다. 남은 최종예선 4경기에서 최소 승점 5을 획득하면 카타르행 열차에 탑승하게 된다.
 
이제 벤투호의 시선은 내년 11월 개최되는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으로 향한다. 32개국이 겨루는 월드컵 본선이야말로 지금까지 아시아 예선에서 상대한 팀들보다 훨씬 강하다. 남은 1년 동안 강팀과의 평가전을 통해 예방주사를 맞고 약점을 최소화하며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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