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포스터

▲ 올레 포스터 ⓒ (주)대명문화공장

 
누구나 훌쩍 떠나고플 때가 있다. 삶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죄다 그만두고플 때가 있다. 경쟁에 시달리고, 남과의 비교에 질리고, 스스로를 믿지 못해 마지막 남은 실 한 가닥도 마저 놓아버리고 싶은 시기가 언제든 올 수 있다. 그럴 때 훌쩍 떠나 반전의 전기를 마련할 여행지 한 곳을 고를 수 있다면 어디가 좋을까.

여기 제주도에서 잊지 못할 여행을 하는 세 친구가 있다. 철없던 대학교 시절 함께 뭉쳐 다닌 동기들이 대학교 선배의 부친상을 이유로 제주를 찾았다. 말은 조문을 위해 왔다지만 하는 짓은 영락없는 친구들의 여행이다. 오자마자 뚜껑 열리는 외제차를 빌리고 이십대 청춘들이 주로 찾는다는 게스트하우스를 돌며 파티를 즐긴다. 영화 <올레> 이야기다.

넷플릭스 웹드라마 <마이네임>으로 여심을 씹어 먹고 있는 박희순과 당시엔 그보다 더 잘 나갔던 두 배우 신하균과 오만석이 출연한 영화다. 제목부터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방언인 <올레>를 가져와 썼다. 영화 사이사이 한 두 장면 정도만 제주의 모습을 비춘 영화들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제주를 전면적으로 다뤘다. 1998년 <연풍연가> 이후 제주도를 이렇게 많이 다룬 영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영화의 제목인 '올레'는 마을의 큰 길에서 가정집 앞마당으로 이어지는 좁고 긴 길을 뜻한다. 소설가 서명숙씨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착상해 추진한 걷기 좋은 길 개발사업의 결과물에 제주 올레길이란 이름이 붙으며 전국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영화가 개봉한 2016년은 올레길이 한창 활성화됐던 시기이기도 했다.
 
올레 스틸컷

▲ 올레 스틸컷 ⓒ (주)대명문화공장

 
중년의 제 모습에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영화는 막 중년에 접어든 세 친구의 이야기다. 한때는 대학동기로 하나같이 꿈 많은 청춘이었으나 제각각 갈라진 인생이 이들을 전혀 다른 곳에 이르게 했다. 중필(신하균 분)은 대기업 과장으로 근무하는 싱글이다. 평범한 듯도 하지만 다들 알고 있듯 대기업 정규직 자리란 건 그리 평범한 노력만으로는 얻어내기도 지켜내기도 쉽지 않는 것이다.

수탁(박희순 분)은 절망적이다. 벌써 몇 년 째 고시공부를 했는지 돌아보고 싶지도 않을 지경이다. 여자도 돈도, 모든 꿈을 유예하고 밀어붙여 온 공부지만 합격에 대한 자신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집에선 애물단지, 스스로도 자긍심이 박살나 버린 인생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그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은동(오만석 분)은 유명인이다. 방송국 간판 아나운서로 나다니다보면 얼굴을 알아보는 이도 드물게 만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은 하며 성취도 갖는 삶이란 건 그리 흔하지 않은 기회다. 어쩌면 세 친구 중 가장 성공한 게 그처럼도 보인다.

중필과 수탁과 은동이 제주를 여행한다. 오픈카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그곳에 머무는 여성들과 특별한 만남을 기대한다. 젊은이들로 가득한 게스트하우스에선 저녁마다 파티도 한다. 저마다의 이유로 여행을 온 이들이 서로 만나 감정을 나눈다. 한없이 가볍고 활발하며 그럼에도 기대하게 되는 마음들이 오간다.
 
올레 스틸컷

▲ 올레 스틸컷 ⓒ (주)대명문화공장

 
백수, 퇴직, 질병... 현실을 옭아매는 제약들

수탁은 절실하다. 13년이나 사법시험을 준비한 그에게 미래는 없는 것만 같다. 제주에서 어떻게든 여자를 만나 진탕 놀아보기라도 해야겠다는 그의 각오가 처절함을 넘어 비참하고 비루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그를 중필과 은동은 마냥 막아설 수 없다. 그가 마주한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어서다.

겉보기엔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중필도 고민이 많다. 그는 10년 넘게 몸담아 온 직장에서 밀려날 위기다. 그는 딸린 식구가 없다는 이유로 명예퇴직 1순위로 분류된다. 그간 그가 모셔온 임원은 그를 지켜줄 마음이 없다. 전부인 줄 알았던 회사에서 한 순간에 쫓겨나게 된 중필에게 삶은 불확실한 위험이다.

은동이라고 다르지 않다. 은동은 암 진단을 받고 모든 것을 내려둔 채 제주로 떠나온 길이다. 이제 막 날개를 편 것만 같았는데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세 친구가 제주에서 맞는 일탈이 멋진 풍광과 게스트하우스, 걷기 좋은 올레길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2010년대 중반 전성기를 맞았던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 문화 역시 영화에 자연스레 담겨 관객들에게 여행 충동을 자극한다.
 
올레 스틸컷

▲ 올레 스틸컷 ⓒ (주)대명문화공장

 
게스트하우스 문화 이끈 제주의 면모

제주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게스트하우스 문화는 젊은 세대의 국내여행에 큰 인기를 불어넣었으나 현재 위기를 맞고 있다. 2010년대 후반 일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들에 의해 자행된 성범죄가 거듭됐고, 코로나19 확산 가운데서도 파티를 한 일부 게스트하우스가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도미토리 중심의 게스트하우스 숙박시설이 감염에 특히 취약하다는 인식도 게스트하우스 여행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의 수많은 게스트하우스는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청결과 감염예방, 파티문화 점검의 계기를 갖고 있다. 더불어 특색 있는 여행프로그램과 여행자 만남, 조식제공 등의 서비스를 개발해 위드코로나 시대 관광의 중심이 되겠다는 포부를 갖는 곳도 적지 않다.

향후 <올레>가 그랬듯 제주여행을 깊이 있게 다루는 영화가 나온다면 제주의 게스트하우스 문화가 다시금 조명될 기회도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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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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