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암동 팬앤터테인먼트 1층 카페 '비엔나커피하우스'에서 만난 양동석 캐스터. 화이팅 포즈를 요청하자 수줍은 미소와 함께 불끈 쥔 주먹을 들어올렸다.

서울 상암동 팬앤터테인먼트 1층 카페 '비엔나커피하우스'에서 만난 양동석 캐스터. 화이팅 포즈를 요청하자 수줍은 미소와 함께 불끈 쥔 주먹을 들어올렸다. ⓒ 안솔지

 
2019년 10월 27일 토트넘과 번리의 프리미어리그 16라운드 경기. 손흥민 선수가 수비수 6명을 따돌리고 70m 가량을 질주한 뒤 시원한 슈팅으로 '원더골'을 터뜨렸다. 이 골은 손흥민 선수에게 '푸스카스상'을 안겨줬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한 그해의 가장 뛰어난 골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 골로 화제를 모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경기 중계를 맡은 스포츠 전문 채널 스포티비(SPOTV) 간판 캐스터 양동석(32) 씨다.
 
"역습을 시작하는 토트넘 홋스퍼. 자, 손흥민 달려갑니다. 손흥민 뛰어갑니다. 자, 손흥민입니다. 손흥민, 손흥민, 손흥민! 고오오오올! 원더골입니다. 손흥민! 네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완성합니다!"
 
엄청난 샤우팅과 함께 외친 그의 코멘트는 현지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득점 장면에 놀라 적절한 멘트를 하지 못한 일부 영국 현지 해설과 정반대되는 '미친 텐션'을 보여준 것이 화제의 비결이다. 현지 팬들은 "한국어를 이해할 순 없지만 그들이 느낀 감동은 충분히 전해진다", "손흥민이 골을 넣을 때마다 한국어 해설도 함께 제공해 달라", "이 코멘트 없인 손흥민이 얼마나 멋진 골을 넣었는지 제대로 느낄 수 없을 것", "한국어 코멘트가 듣기 더 좋다"등의 호평을 잇따라 내놓았다. 세계적인 스포츠 미디어 ESPN 인터넷판 뉴스에도 실렸다. 기자는 "손흥민의 위대한 개인 득점이 한국 TV 코멘테이터의 격한 반응으로 더 좋아졌다"고 했다. 스포츠 캐스터 9년 차인 그에게도 특별한 경험이다.
 
"스포티비는 지금도 손흥민 선수의 번리전 골 장면을 재방송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 같아요.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던 경기 중계가 평생 박제된 거죠. 경기가 시작할 때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하자'고 주문을 외치는데 좋은 결과까지 따라줘 뿌듯합니다"
 

그는 2013년 대학교 3학년 때 대한축구협회 인터넷 방송 축구 캐스터로 데뷔한 인재다. 이후 IB스포츠 인턴, MBC스포츠(이하 엠스플)를 거쳐 2016년 경력직으로 스포티비에 입사했다. 현재는 스포티비의 유럽 축구 중계를 전담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간판스타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토트넘 홋스퍼 경기도 그의 몫이다. 그간 생중계한 축구 경기만 900경기 가까이 된다. 그에게 유럽 축구와 경기 해설을 더 알차게 즐기는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토트넘과 리버풀의 2018-201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중계한 스페인 마드리드 메트로폴리타노 경기장 중계석에서.

토트넘과 리버풀의 2018-201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중계한 스페인 마드리드 메트로폴리타노 경기장 중계석에서. ⓒ 양동석 인스타그램

 
'툭' 치면 축구 보따리 열리는 진짜 '축구 덕후'

- 축구를 가장 좋아하는 종목으로 꼽으셨어요. 축구 경기는 언제부터 봤습니까? '입덕' 계기가 된 경기는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제 입덕 경기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한국과 네덜란드의 조별예선 경기입니다. 당시 우리나라가 지고 있었어요. 후반 32분에 들어간 이동국 선수가 과감한 중거리 슛을 시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아직도 제 기억 속에 축구에 대한 첫 장면으로 남아있어요."
 
- 축구를 좋아하는 꼬마 시절부터 스포츠 캐스터가 된 지금까지 못해도 많은 경기를 봤을 텐데요. 전술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팀은 어디입니까?
"2019-2020년 시즌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해 당시 리그 무패를 달리고 있던 2018-2019년 준우승팀 리버풀을 패배 위기로 물아붙이는 등 돌풍을 이끌었던 셰필드 유나이티드입니다. 당시 크리스 와일더 감독의 전술이 정말 신선했습니다. 3-5-2 포메이션 기반으로 세 명의 수비수를 배치한 백스리 전술을 구사했는데 양쪽 수비수가 스로인(경기 재개를 위해 터치라인 밖으로 흘러나온 공을 경기장 안으로 던져 넣는 것)도 하고, 센터백 한 명만 두고 전원 공격에 가담하는 등 과감한 공격을 구사하는 모습을 중계하면서 현대 축구가 한층 성장했다고 느꼈습니다."
 
- 입문자들을 축구의 매력에 푹 빠뜨릴 수 있는명경기를 추천한다면요.
"축구의 매력은 '공은 둥글다'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승리만큼 짜릿한 경기가 있을까요? 입문자라면 '캄프 누의 기적(1999년, 2017년)', '이스탄불의 기적', '리아소르의 기적', '베른의 기적', '로마의 기적', '리스본의 기적' 등 '기적 시리즈'부터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캄프 누의 기적' https://youtu.be/8UzHJGGwWow)
 
- 황희찬 선수가 임대오면서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현재 두 명으로 늘었습니다. '손-황' 코리안 더비를 볼 수 있어 중계가 더 즐거울 것 같습니다. 손흥민 선수의 토트넘과 황희찬 선수의 울버햄튼이 맞붙은 경기를 중계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지난 9월 카라바오컵(리그컵) 32강전 경기로 오랜만에 코리안 더비가 성사됐죠. 두 선수 모두 팀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어서 너무 기뻤어요. 중계에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죠. 워낙 좋아하는 선수들이고 소중한 한국 선수들인 만큼 팩트 위주로 이야기하면서 편파 중계를 하지 않으려 애쓰기도 했습니다. 사실 '팩트 중계'는 모든 경기에 통용되는 원칙이기도 합니다. 특정 선수, 특정 팀 구분 없이 반박 불가한 데이터를 중심으로 말하면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중계를 하는 것이 캐스터의 역할이죠."
 
- 전담 캐스터이자 20여 년 간 축구를 봐 온 전문가 입장에서 새로 부임한 콘테 감독과 토트넘의 궁합은 어떨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누누 감독 체제 토트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감독의 선수단 장악 실패와 세부 전술의 부재였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감독이 콘테 감독이라고 확신합니다. 특히 콘테 감독이 가진 특유의 라커룸 리더십과 백스리를 기반으로 하는 탄탄한 수비가 토트넘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이번 시즌 내내 부진을 겪고 있는 케인의 공격력을 높여줄 수도 있겠죠. 특히 '우승 청부사'라고 불리는 콘테 감독이 들어올린 트로피 커리어는 지금의 토트넘 선수들에게 많은 동기부여가 될겁니다."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움직이는 토끼 모자를 쓴 양동석 캐스터와 '케미왕' 장지현 해설위원.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움직이는 토끼 모자를 쓴 양동석 캐스터와 '케미왕' 장지현 해설위원. ⓒ 양동석 인스타그램

 
'덕업일치'로 성공가도 달린다

- 스포츠 캐스터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중계가 없는 날은 보고서 작성 등 행정 업무를 처리해요. 평범한 직장인처럼 '나인투식스'죠. 중계가 있는 날은 경기 3시간 전 출근해 관련 자료를 검토합니다. 경기 1시간 전 선발 명단이 올라오면 해설위원과 함께 내용을 확인하고 생방송 리허설을 해요. 방송 의상을 입고 경기 30분 전에 스튜디오에 입장한 뒤 당일 방송에서 활용되는 CG 내용을 담당 PD와 함께 더블 체크하고, 스튜디오 화면과 CG가 나오는 타이밍 등을 협의합니다. 그리고 실제 방송처럼 오프닝부터 킥오프까지의 과정을 진행해 보죠. 경기 중계가 끝나고 퇴근하면 오전 7시쯤 됩니다. 축구 시즌 동안에는 유럽 사람이나 다름 없어요."
 
- 경기와 관련된 자료 조사에는 시간을 얼마나 투자합니까?
"저는 3시간 이내에 끝내려고 합니다. 사실 자료 양이 방대해서 찾으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그래서 꼭 필요하고 놓쳐선 안 될 자료 위주로 수집을 하고 바로 암기에 들어갑니다. 3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 자료나 데이터보다 영상을 보면서 눈으로 선수와 전술을 파악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편입니다."
 
-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나요?
"3년차쯤 발성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매일 방송을 반복하다보니 목 상태가 나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 상태로 방송을 계속하려니 자존감도 낮아졌어요. 2년 넘게 축구가 아닌 다른 종목을 담당하다 보니 의욕이 떨어졌고요. 결국 당시 근무하던 엠스플을 퇴사했습니다. 항공사 공채도 지원해 보고, 대학 전공을 살려 대치동 입시학원에서 국어 강사도 했어요. 재미없더군요. 몸은 힘들지만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스포츠 캐스터'라는 확신이 들어 방황을 청산했습니다. 요즘은 슬럼프 없이 매일 행복하게 방송하고 있습니다."
 
- 방황을 겪고 돌아와 지금은 9년차 스포츠 캐스터가 됐습니다. 그간의 방송 활동에서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지난 2020-2021년 시즌 프리미어리그 토트넘과 첼시 경기였습니다. 킥오프와 동시에 베르너 선수가 헤딩을 시도했죠. 실제로는 뒷 그물을 스쳐 노 골(No goal) 상황이었는데 각도상 골이 들어갔다고 착각을 해서 저도 모르게 '들어갔어요!'라고 외치고 말았어요. 함께 중계하던 장지현 해설위원이 웃고 있어서 '아차' 했습니다. 경기 진행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셈이니 분명 불편한 시청자들도 있을 것 같아 바로 내용을 정정하고 사과 멘트를 했는데 상당히 민망했습니다."
 
- 그 정도는 귀여운 에피소드 같습니다. 악플 때문에 힘들진 않나요?
"중계톤에 대해 시청자분들께 많은 피드백을 받습니다. 저는 비판적인 피드백도 다 찾아봐요. 더 나은 중계를 위해서 시청자분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고 부족한 부분을 고치려고 하거든요. 단 이유 없이 맹목적인 비난은 수용하지 않습니다."
 
- 스포츠 캐스터로 계속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팬들의 응원이 큰 원동력입니다. SNS 계정을 통해 정말 많은 메시지를 받는데 팬들의 진심 어린 응원 글을 받을 때마다 보람을 느끼고 더 잘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얻습니다."
    
 양동석 캐스터

양동석 캐스터 ⓒ 안솔지

   
팬들의 응원과 더불어 그가 스포츠 캐스터의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또 있다. 다소 진부할지 모르겠지만 축구에 대한 그의 '진심'이다.
 
"스포츠 캐스터는 제게 '덕질'이자 '밥벌이'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원없이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를 중계하는 지금이 너무도 소중합니다. 손흥민 선수의 전성기 경기 중계를 전담하게 된 것도 영광이죠. 앞으로도 선수와 해설위원을 어시스트하고, 시청자들이 믿고 들을 수 있는 중계를 선보이는 스포츠 캐스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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