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포스터

▲ 건축학개론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건축학개론>은 지난 10년의 한국영화사에 어떻게든 거론될 작품이다. 수많은 예술의 동력이 되는 첫사랑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영화란 점에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빼어난 카피라이팅이 있었다는 점에서,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들을 수두룩하게 발굴한 선구안 있는 작품이란 점에서 그렇다.

그뿐인가. 1994년 나온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은 무려 18년 만에 제 자리를 찾아 한국영화 사상 손꼽히는 영화 삽입곡으로 기록됐다. 영화의 제목인 <건축학개론>은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세련된 작명이란 평가도 받았다. 2010년대 초반 복고감성의 정점에 섰으며 감성적인 영상 역시 호평받았다.

무엇보다 영화를 남다르게 한 건 배우다. <건축학개론>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자연스런 세대교체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2010년대 인물로 출연한 엄태웅과 한가인보다 훨씬 큰 조명을 받은 건 1990년대 인물을 연기한 수지와 이제훈, 조정석이다. 지난 10여 년을 대표하는 앞의 두 배우에서 향후 10년 이상을 책임질 뒤의 세 배우로 극의 중심이 옮겨간 점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기록할 거리가 있는 <건축학개론>엔 한 가지 매력포인트가 더 있다. 다름 아닌 제주의 풍광을 담은 그리 많지 않은 상업영화 중 하나란 점이다. 제주도가 한국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로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지난해만 1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은 곳이란 걸 고려하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건축학개론 스틸컷

▲ 건축학개론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15년 만에 재회한 엇갈린 남녀

때로 영화와 드라마는 관광을 이끄는 주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모래시계> 이후 정동진이, <겨울연가> 이후 남이섬이 큰 인기를 끌었고, <웰컴 투 동막골> 촬영지인 삼양목장이나 <클래식> 속 연세대학교 캠퍼스도 꾸준한 방문객이 이어졌다. 천혜의 환경을 간직한 제주도에서 영화 속 이야기를 꺼내 관광콘텐츠로 삼으려는 의욕적 시도가 있었던 배경이다.

<건축학개론>엔 엇갈린 남녀가 등장한다. 서른다섯의 건축가 승민(엄태웅 분)이 평소처럼 일에 여념 없던 어느 날, 그의 앞에 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녀의 이름은 서연(한가인 분), 승민과는 오래 전 만난 인연이 있는 사이다. 서연은 제주도의 집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건축가를 구하고 있다며 승민에게 일을 맡긴다. 입원 중인 아버지가 퇴원한 뒤 함께 살 집을 고쳐달란 것이다. 15년 만의 재회에 얼떨떨한 기분도 잠시, 승민은 서연의 일을 맡아 작업에 들어간다.

승민과 서연이 처음 만난 건 대학교 1학년 건축학개론 수업에서였다. 연세대학교 건축학과 1학년이던 승민(이제훈 분)의 눈에 음대생 서연(수지 분)이 들어온다. 교수는 자기가 사는 집과 학교까지의 동선을 지도에 표시하라는 과제를 내주고 승민과 서연은 서로 가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둘은 함께 버스를 타고 과제를 하고 그렇게 조금씩 친해져간다.
 
건축학개론 스틸컷

▲ 건축학개론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주도 위미항 명소 된 '서연의 집'

여느 첫사랑영화가 그렇듯 몇 번의 엇갈림은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오해는 커지고 어린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둘 사이를 가로막은 문제를 극복하기엔 둘은 어렸고 마음은 여렸으므로 관계는 끝내 회복되지 못한다. 그리고 15년이 지나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첫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영화는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과 정릉 인근 동네 골목들과 제주도를 오가며 찍혔다. 그 아름다운 순간들 가운데 현재는 제주도에서 그려진다. 여적 낭만이 남아 있는 섬에서 서연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영화 속 서연의 집은 그 이름 그대로 '카페 서연의 집'이 돼 제주에서 손님들을 맞고 있다. 카페엔 영화촬영에 사용된 소품과 배우들의 핸드프린트 같은 것들이 전시돼 관심을 끈다. 첫사랑의 아련함은 영화 속 전람회와 이제는 전람회 못지않은 추억 속 무엇이 되어버린 영화 <건축학개론>과 함께 이 카페를 아련함으로 가득 채운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건축학개론>이 제주를 가장 잘 담아낸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서연의집 제주도 위미항 명소가 된 카페 서연의집에서 본 경치.

▲ 서연의집 제주도 위미항 명소가 된 카페 서연의집에서 본 경치. ⓒ 김성호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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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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