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송새벽은 차기작 캐스팅을 위해 연극을 보러 다니던 봉준호 감독에 의해 <마더>에 캐스팅돼 세팍타크로 형사를 연기했다. 하지만 관객들이 송새벽이라는 배우를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한 캐릭터는 단연 <방자전>의 변학도였다. <방자전>에서 코믹하고도 독특한 연기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은 송새벽은 이후 <해결사> <위험한 상견례> <나의 아저씨> 등에 출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로 성장했다.

지금은 관객들로부터 누구보다 '믿고 보는 배우'로 인정 받고 있는 김윤석도 마찬가지. 극단 연우무대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김윤석은 2000년대부터 드라마와 TV를 넘나들며 조연으로 출연하다가 2006년 <타짜>의 아귀라는 '인생캐릭터'를 만났다. 김윤석은 <타짜> 이후 <추격자> <황해> <완득이> <도둑들> <검은 사제들> < 1987 > <암수살인> <모가디슈>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과 흥행파워를 겸비한 대배우가 됐다.

송새벽과 김윤석 외에도 연극으로 출발해 TV와 영화로 자리 잡은 배우들은 일일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송새벽의 변학도나 김윤석의 아귀처럼 연기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인생캐릭터를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새 천년의 시작과 함께 <박하사탕>의 김영호로 인생캐릭터를 연기한 배우 설경구는 불과 2년 만에 두 번째 인생캐릭터를 만났다. 바로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에서 연기했던 강동서 강력반 강철중이었다.
 
 <공공의 적>은 서울에서만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공공의 적>은 서울에서만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시네마서비스

 
2년 만에 다시 만난 설경구의 두 번째 인생캐릭터

재수 끝에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설경구는 졸업 후 동문들이 주축이 된 한양 레퍼토리에서 극단생활을 하다가 <아침이슬>로 유명한 가수 김민기가 번안 및 연출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캐스팅됐다. 설경구는 <지하철 1호선>에서 거의 모든 역할을 맡았을 정도로 <지하철 1호선>을 상징하는 배우로 자리 잡았고 2001년에는 1000회를 기념해 독일 베를린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몇몇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던 설경구는 새천년이 시작되는 1월 1일에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순수함을 잃고 타락하는 김영호를 통해 첫 번째 '인생캐릭터'를 만났다. 설경구는 <박하사탕>을 통해 5개 영화제의 남우주연상 및 신인상을 휩쓸며 연기력을 인정 받았지만 차기작 <단적비연수>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가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하면서 대중들과는 완전히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러던 2002년, 설경구는 <투캅스>의 강우석 감독이 연출한 <공공의 적>을 통해 두 번째 인생캐릭터 강철중을 만났다. 설경구의 열연이 돋보였던 <공공의 적>은 서울에서만 110만 관객(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을 동원했고 설경구는 <공공의 적>으로 청룡과 대종상, 백상예술대상의 남우주연상을 싹쓸이했다. 설경구는 2002년에만 <공공의 적>을 시작으로 <오아시스> <광복절특사>에 출연하며 최고의 배우로 우뚝 섰다.

설경구는 2003년 강우석 감독과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실미도>에 출연, 한국 최초의 천만 영화 주연배우가 됐고 2004년엔 <역도산>을 위해 30kg을 찌우는 변신을 단행했다. <공공의 적2> 이후 <사랑을 놓치다> <열혈남아> <싸움>이 나란히 흥행실패하며 슬럼프에 빠지는 듯했던 설경구는 2009년 <해운대>로 두 번째 천만 영화를 만들며 건재를 과시했다. 설경구는 2010년대에도 <타워> <감시자들> <스파이> 등 꾸준히 흥행작을 배출했다.

설경구는 2017년 임시완과 함께 출연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 95만 관객에 그쳤지만 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했고 <불한당>의 한재호는 김영호, 강철중에 이어 설경구의 세 번째 인생캐릭터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대 중·후반에도 <생일> <퍼펙트맨> <자산어보> 등에 출연하며 부지런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설경구는 현재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와 이해영 감독의 <유령> 촬영을 마쳤다.

강철중 원맨쇼로 138분 꽉 채운 캐릭터 코미디
 
 설경구(왼쪽)는 <공공의 적>으로 대한민국 3대 영화제(청룡,대종상,백상)의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설경구(왼쪽)는 <공공의 적>으로 대한민국 3대 영화제(청룡,대종상,백상)의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 시네마서비스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간 죄수가 6년 동안 숟가락으로 땅굴을 파서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는데 알고 보니 특사 명단에 포함돼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야 하는 황당한 상황. 영화 <광복절 특사>가 흥행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이렇게 특별한 상황에 캐릭터들을 몰아 넣어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장르를 '시츄에이션 코미디'라고 한다. <광복절 특사> 외에도 <극한직업> <두사부일체> 등이 대표적인 시츄에이션 코미디로 꼽힌다.

반면에 마동석, 전지현 등 주연배우의 매력과 캐릭터에 의존하는 <부라더> <엽기적인 그녀> 같은 코미디 영화를 '캐릭터 코미디'라고 부른다. 강철중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138분의 짧지 않은 런닝 타임 동안 관객들을 끊임 없이 웃기는 <공공의 적> 역시 200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캐릭터 코미디다. 사실 성질 더러운 다혈질의 형사가 부모를 죽인 패륜아를 잡는다는 시놉시스만 보면 <공공의 적>은 전혀 신선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시안게임 복싱 특채 형사 강철중(설경구 분)은 통장의 270원이 전재산인 청렴한(?) 경찰이라 감찰반의 추궁에도 언제나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불법 주류업자 산수(이문식 분)를 잡고 의기양양하던 강철중은 늦은 밤 잠복근무 도중 화장실이 급해 빗속을 헤매다가 판초우의를 입은 괴한에게 흉기로 공격을 당한다. 그리고 얼마 후 강철중은 부모의 죽음으로 경찰서를 찾은 피해자 가족 조규환(이성재 분)을 만나고 그에게서 수상한 점들을 발견한다.

강철중은 조규환을 조사하면서 조규환에 대한 의심을 키우지만 강철중의 수사에는 경찰로서의 공명심이과 정의감은 포함되지 않는다. 강철중은 철저히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상대에 대한 개인적 원한으로 조규환을 잡으려 한다. 그리고 조규환 부모의 재산 10억이 조규환에게는 185억 원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의심은 확신으로 변한다. 그렇게 강철중은 조규환을 때려 잡고 개인적인 복수가 '우연찮게' 정의를 구현하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얻는다.

<공공의 적> 최대 수혜자이자 주역이 설경구와 강우석 감독이었다면 <공공의 적> 최대 피해자(?)는 단연 조규환을 연기했던 배우 이성재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흥행보증수표'로 이름을 날리던 이성재는 <공공의 적>에서 부모를 죽이는 패륜아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관객들의 미움을 받으며 수 년간 <바람의 전설> <상사부일체> <나탈리> 등 차기작들이 연속으로 흥행에 실패하는 불운을 겪었다. 

이문식부터 유해진까지, 충무로 씬스틸러 총출동
 
 이문식(오른쪽)은 <공공의 적>에서의 짧은 출연 이후 충무로를 대표하는 씬스틸러로 자리 잡았다.

이문식(오른쪽)은 <공공의 적>에서의 짧은 출연 이후 충무로를 대표하는 씬스틸러로 자리 잡았다. ⓒ 시네마서비스

 
<공공의 적>은 강우석 감독이 1998년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으로 다소 아쉬운 흥행성적(서울 14만)을 기록한 후 3년 5개월 동안 철치부심해서 만든 작품이다. 그만큼 배우 캐스팅에도 상당히 공을 들였고 주연들은 물론 작은 역할을 맡은 조·단역 배우들도 훗날 꽤 이름값 높은 배우로 성장한 경우가 여럿 있었다. 대표적인 배우가 영화 속에서 강철중이 첫 실적을 올릴 때 등장하는 주류판매 깡패 역을 맡았던 이문식이었다.

설경구의 한양대 연극영화과 후배이기도 한 이문식은 <공공의 적>에서 술을 팔지 않는 콜라텍에 술을 들여 놓으라고 사장을 협박하다가 강철중에게 신나게 얻어맞는 산수를 연기했다. 조서를 쓸 때 강철중이 원하는 답변을 하지 못할 때마다 의자를 걷어 차이는데 벽으로 밀린 산수가 바퀴를 힘들게 끌면서 앞으로 다가오는 코믹한 표정이 압권이었다. 이문식은 2008년에 개봉한 <공공의 적 1-1>에서 출소 후 개과천선한 노래방 사장으로 출연했다.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용가리 역을 맡으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유해진도 <공공의 적>을 통해 본격적인 한국영화의 '씬스틸러'로 자리 잡았다. 유해진은 강철중이 범행 수법을 알아보기 위해 잡아온 조폭출신 칼잡이 이용만을 연기했다. 영화 막판에는 조규환 어머니의 목에서 조규환의 손톱을 발견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유해진은 <공공의 적> 이후 1년에 3~4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충무로에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이 밖에 강신일과 기주봉, 안석환, 안내상 등 관객들에게 익숙한 중견 배우들이 강철중의 동료 경찰 역할로 출연했다. <친구>에서 상택을 연기했던 서태화는 <공공의 적>에서 동부지검의 최검사 역을 맡았는데 끝까지 조규환을 비호하다가 후반부 엄반장(강신일 분)으로부터 시원하게 욕을 먹는다. 감초배우 권병길은 인터넷에서 너무나 유명해진 전설의 명짤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라는 명대사(?)를 날리는 국립과학수사 연구원 간부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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