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유명한 관광지다. 제주를 담은 많지 않은 영화가 죄다 제주를 여행지로 다루는 이유다. 영화엔 대개 제주로 떠나온 이들의 일탈이 담긴다. 살아가는 터전이 아닌 언제고 떠날 곳이라는 게 제주를 담은 영화에서 일관되게 엿보이는 정서다.

여행지로서의 제주를 다루다보면 제주가 화려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관광지, 이를테면 여러 오름과 성산일출봉, 우도, 섭지코지, 중문,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시월애> <자귀모> <연풍연가> 등 제주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가 그랬다.

다만 아쉬운 건 그 속에서 제주의 삶이 엿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일상이며 사연이 제주 아닌 곳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처럼 그려지는 작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포스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포스터 ⓒ (주)영화제작전원사

 
여행지 아닌 제주를 그린 영화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열심히 화려하고 애써서 아름답지 않은 제주를 다룬 몇 흔치 않은 영화다.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앞은 제천, 뒤는 제주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그저 그런 영화감독 구경남(김태우 분)이다. 그는 제천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초청됐다가 오래 전 친하게 지낸 친구 부상용(공형진 분)과 만난다. 상용의 집요한 요청으로 그의 집에 가게 된 경남은 그곳에서 그의 아내 유신(정유미 분)과 특별한 만남을 갖게 된다.

도망치듯 제천을 떠난 경남이 새로 향한 곳은 제주도다. 이번엔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 위해서다. 학생들과의 뒤풀이 자리를 갖게 된 그는 유명한 화가이자 선배인 양천수(문창길 분)를 만나고 그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의 집엔 한때 경남이 마음에 품었던 후배 고순임(고현정 분)이 있다. 순임이 나이 차이가 꽤나 나는 천수의 여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스틸컷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스틸컷 ⓒ (주)영화제작전원사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욕망의 집합체

영화는 홍상수의 영화가 자주 그러하듯 좀처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소하고 대단치 않은, 그러나 솔직하고 분명한 욕구들을 전면에 내보인다. 진실이 표면 위로 드러났을 때 느껴지는 낯섦이 주는 인상이 곧 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러닝타임 내내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거리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거리는 변하고 또 변화하여 지금은 지나간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어느 관계도 영원하지 않고, 어느 관계도 전에는 다가서지 못한 거리까지 가까이 갈 수 있다.

영화는 권력의 민낯도 그대로 까발린다. 영화감독이란 타이틀을 가진 구경과 그에게 사인을 받으려는 팬, 그를 물리치고 유명한 선배에게 매달리는 구경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잡아낸 장면은 단순한 흥미 이상의 인상을 준다. 젊은 대학생들에게 권위를 갖고자 하는 어느 교수의 모습이나 인기 있는 영화감독과 인기 없는 영화감독 사이에 느껴지는 격차에 대한 모습은 관객들이 홍상수의 영화에서 만나고픈 미묘한 권력과 열등감의 단면을 드러낸다. 관객이 제 삶에서가 아닌 영화 속에서 이 같은 민감한 감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홍상수 영화가 가진 흔치 않은 멋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스틸컷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스틸컷 ⓒ (주)영화제작전원사

 
제주의 공간, 제주의 사람들

영화는 총 촬영 회차의 꼭 절반인 13회차를 제주도에서 촬영했다. 제주영상미디어센터 내 제주 영상위원회, 올레리조트, 금릉해수욕장, 한림읍 귀덕리에 위치한 강요배 화백 작업실 같은 장소를 실제 쓰임에 맞게 영화 속에 등장시켰다. <쉬리>에서 신라호텔 산책로를 요양원 안뜰처럼 뒤바꾼 것처럼 제주의 재료를 영화에 맞춘 작품이 주를 이뤄온 가운데 실제 장소를 그대로 영화에 등장시켰다는 점은 홍상수의 영화가 지닌 특별함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영화엔 제주의 사람들도 등장한다. 홍상수 감독이 직접 오디션을 진행해 뽑은 단역배우들이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것이다. 특강에 참여한 학생들과 양천수 화백의 동네주민들 같은 이들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인간의 욕망과 위선을 드러내는 제 목적 외에도 좀처럼 보이지 않던 제주도의 모습을 스크린 위에 올렸다는 점에서 제주도에게 특별한 영화라고 하겠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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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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