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역사상 정규리그 4위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4위는 정규리그 우승팀에 비해 객관적인 전력이 약한 데다가 포스트시즌의 험한 과정을 거치면서 선수들도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도 정규리그 4위 두산 베어스가 역대 최초의 기록에 도전했지만 KT 위즈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두산은 단 한 경기도 따내지 못하고 내리 4연패를 당하면서 7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등극에 실패했다.

한편 2013년 창단해 2015년부터 1군에 참여하기 시작한 KT는 창단 9년, 1군 참가 7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던 시절(2015~2017년)에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위업이다. KT는 박석민과 이종욱, 손시헌, 양의지 등 대형 FA들을 영입하며 전폭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NC다이노스(8년)보다 1년 먼저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목표에 도달했다. 

KT는 지난 8년 동안 3명의 감독이 팀을 지휘했다. 조범현 감독과 김진욱 감독 체제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던 KT는 2019 시즌을 앞두고 이강철 감독이 부임하면서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이강철 감독 체제 3년 만에 정상의 자리에 올라 섰다. 그리고 현역 시절부터 많은 우승 경력과 대기록들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언제나 '2인자'로 불리던 이강철 감독은 KT 유니폼을 입고 드디어 감독으로서 최정점에 올라섰다.

통산 152승 올리고도 1인자 등극 실패

동국대 시절부터 국가대표에 선발되며 '즉시전력감 잠수함'으로 불리던 이강철 감독은 1989년 1차지명으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지 못했다. 같은 해 서울올림픽에 참가했던 특급 유망주 조계현과 이광우(두산 2군 트레이닝 코치)가 이강철 감독과 함께 해태 유니폼을 입고 프로무대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이강철 감독은 시작부터 입단 동기들에게 밀린 2인자로 출발을 했던 셈이다.

이강철 감독은 루키 시즌이던 1989년부터 15승8패5세이브 평균자책점3.23을 기록했지만 그 해 혜성처럼 등장한 태평양 돌핀스의 중고신인 박정현(19승10패2세이브2.15)에 밀려 신인왕 등극에 실패했다. 이강철 감독은 입단 후 3년 연속 15승 이상을 기록하며 46승을 따냈지만 그 시절 해태에는 같은 기간 무려 62승을 기록하며 리그를 완벽히 지배했던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 있었다. 

1992년은 이강철 감독의 전성기였다. 이강철 감독은 선동열이 '안식년'을 가진 1992년 타이거즈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18승9패3.44를 기록했다. 하지만 같은 해 빙그레 이글스의 좌완 송진우가 19승8패17세이브3.25로 다승왕과 구원왕을 모두 휩쓸었고 이강철 감독은 또 한 번 2인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선동열의 마무리 변신으로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 같았던 '해태의 에이스'라는 칭호 역시 뒤늦게 잠재력이 폭발한 입단동기 조계현에게 빼앗겼다.

이강철 감독은 1995 시즌이 끝나고 선동열이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하면서 드디어 1인자가 될 기회를 얻는 듯 했다. 하지만 이강철 감독은 1996년 평균자책점 6위(2.46)에 오르고도 '16승 듀오' 조계현과 이대진에 밀려 해태 선발진에서도 3인자로 밀려났다. 다만 그 해 현대 유니콘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완봉승 1회를 포함해 2승1세이브0.56을 기록하며 선수로서 처음이자 마지막 타이틀인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1999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얻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던 이강철 감독은 2001년 트레이드로 친정에 복귀한 후 2004년까지 KIA의 필승조로 활약했다. 하지만 2004년 후반기부터 구위가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2005 시즌이 끝난 후 현역 은퇴를 선택했다. 이강철 감독은 선동열과 조계현, 이대진 같은 투수들 사이에서 한 번도 1인자로 불리진 못했지만 그 어떤 투수도 달성하지 못한 '10년 연속 10승100탈삼진'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KT감독 부임 3년 만에 통합우승 달성 

이강철 감독은 현역 은퇴 후 2012년까지 친정팀 KIA에서 투수코치를 역임했다. 현역 시절 전설적인 잠수함 투수였던 만큼 코치 시절에도 잠수함 투수들을 발굴, 육성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특히 2009년 6승2패22세이브0.53의 거짓말 같은 성적으로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마무리 유동훈을 키워내면서 지도력을 인정 받았다. 하지만 2009년 우승 당시에도 야구팬들의 관심은 이강철 코치가 아닌 조범현 감독과 선수들에게로 향했다.

이강철 감독은 2012 시즌이 끝나고 광주일고 동문 염경엽 감독이 부임한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에서 투수총괄 겸 수석코치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히어로즈는 이강철 수석코치가 재직한 4년 동안 201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포함해 한 번도 빠짐 없이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2017년 두산의 2군 투수코치를 시작으로 2군 감독, 1군 수석코치를 역임한 2년 동안에도 유망주 박치국을 필승조 투수로 키워냈다.

2018 시즌이 끝나고 KT의 3대 감독으로 부임한 이강철 감독은 감독을 맡은 첫 시즌부터 9위에 머물렀던 팀을 5할 승률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작년 시즌에는 KT의 정규리그 2위와 창단 첫 가을야구 진출을 견인했다. 이강철 감독은 플레이오프에서 2년 동안 두산에서 감독과 수석코치로 한솥밥을 먹었던 김태형 감독과 맞대결을 펼쳤지만 가을야구에서의 경험부족을 극복하지 못하고 1승3패로 시리즈를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이강철 감독은 작년 플레이오프 1승3패의 아쉬움을 올해 한국시리즈 4전 전승으로 되갚아줬다. 정규리그에서 토종 에이스 역할을 해준 '국가대표 잠수함' 고영표를 과감하게 불펜으로 돌리는 작전을 구사한 이강철 감독은 적절한 투수교체 타이밍을 통해 두산 타선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타자들에게는 꾸준한 믿음을 통해 정규리그 성적이 썩 좋지 않았던 황재균과 박경수의 맹활약을 끄집어냈다.

이강철 감독은 한국시리즈가 열리기 전 미디어데이에서 키플레이어를 꼽아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팀KT"라고 대답했다. 당시만 해도 '모든 선수들이 고르게 잘해야 우승할 수 있다'는 감독의 의례적인 멘트라고 받아 들였지만 KT는 실제로 특정 선수가 아닌 팀원 전체가 제 역할을 하면서 역대 9번째 4전 전승 우승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선수시절부터 '영원한 2인자'로 불리던 이강철 감독은 드디어 감독으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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