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세페 토르나토레의 명작 <시네마 천국>은 대부분의 장면을 이탈리아 남단 시칠리아섬의 한 마을 '팔라쪼 아드리아노'에서 촬영했다. 로마의 이름난 감독이 어릴 적 가까이 지낸 영사기사의 부고를 듣고 고향으로 찾아가며 시작되는 영화다. 아련한 추억을 자극하는 옛 마을의 정취와 좌절된 사랑과 꿈이 엇갈리는 이야기가 시대를 초월해 강력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낙후됐던 시칠리아섬으로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았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났던 작은 마을이 다시금 일어서고 천혜의 자연경관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영화 <인어공주> 포스터

영화 <인어공주>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인어공주>가 선택한 천혜의 섬

박흥식 감독의 2004년작 <인어공주>는 여러모로 <시네마 천국>을 떠올리게 한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은행 직원인 주인공이 어릴 적 떠나온 섬 마을로 돌아간다는 설정이 그렇다. 주인공에게 고향이 그리 달갑지 않다는 것부터, 떠밀리듯 억지로 고향을 찾게 된다는 점이 유사하다. 촬영 분량의 대부분을 한두 개 장소에서만 했다는 점이나 현지 주민을 적극 출연시켜 향토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는 점도 두 영화가 유사하다.

<인어공주>가 선택한 장소는 제주도 동북쪽 종달해안에서 바로 내다보이는 섬 우도다. 남서쪽의 가파도나 마라도와 함께 섬 안의 섬으로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제주 동쪽을 여행하는 이들이라면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와 함께 우도를 관광코스로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가파도나 마파도에 비해 훨씬 큰 섬이라 제대로 돌아보려면 온전히 하루를 내야하지만, 비경이 많아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시월애> <연풍연가> 같은 영화가 우도를 조금이나마 영화 안에 담아내려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어공주>는 앞의 두 영화보다 우도를 전폭적으로 담아냈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요한 공간이 우도 한복판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가족이 지긋지긋한 은행원 나영(전도연 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녀의 엄마 연순(고두심 분)은 목욕탕 때밀이로 일하고, 아버지(김봉근 분)는 우체국에서 근무한다. 그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데, 나영이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아버지를 구박하는 모습이 늘 되풀이돼 왔기 때문이다.
 
 <인어공주> 스틸컷

<인어공주>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우도에서 마주한 부모의 청춘

나영이 기억하는 집은 늘 어려웠다.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선 탓이다. 사람 좋은 아버지가 주변의 어느 누구를 믿었고, 그는 그 기대를 배신했다. 어머니가 억척 같이 일한 덕에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지만 평생을 발 편히 뻗지 못하고,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한 게 이들의 삶이다. 연순은 늘 남편을 구박하고, 나영은 그 모두가 지긋지긋했다.

어려운 형편 탓에 나영은 대학교도 가지 못했다. 겨우 취업한 은행에서 번 돈은 죄다 집을 돕는 데 쓰인다. 어쩌다 주어진 뉴질랜드 출장 기회가 그녀에겐 커다란 기대며 해방구가 된다. 그 기대감은 출발을 앞둔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가 병에 걸렸다고 고백하며 산산이 깨어진다.

이야기는 훌쩍 떠나버린 아버지를 찾아 나영이 우도에 들어오며 전환된다. 나영 앞에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타난 것이다. 나영은 엄마와 아빠의 찬란한 한때를 곁에서 지켜보며 그들에게도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인어공주> 스틸컷

<인어공주>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현실이 팍팍할수록 추억은 힘이 된다

전도연의 출세작 가운데 하나인 <내 마음의 풍금>의 흔적도 곳곳에서 엿보인다. 우도에서 근무하는 집배원(박해일 분)이 글을 깨지 못한 나이 찬 여자를 지도하고 그녀가 집배원을 남몰래 연모한다는 이야기는 시골 학교 선생과 나이찬 제자의 순박한 로맨스와 판박이기 때문이다. 검게 그을린 피부의 전도연이 순박한 표정과 태도로 섬 안을 쏘다니는 모습은 5년 전의 제 모습을 다분히 염두에 둔 듯 비슷한 부분이 많아 보는 재미가 있다. <내 마음의 풍금>에서도 극중 배역과 10살쯤의 차이가 있던 그녀가 삼십 줄에 접어들어 십대 소녀를 연기하는 게 조금은 버겁게 느껴질지라도 말이다.

영화에 담긴 우도의 광경은 지금과 제법 다른 면모를 보인다. 함께 밭을 매고 물질하던 젊은 아낙들이 나이든 노인들로 모습을 바꾸었고, 섬 안엔 관광객을 맞는 각종 시설들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우도 안에 버스가 나다니게 된 걸 기념하는 영화 속 장면은 오늘의 우도를 경험한 관객들에겐 썩 색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하다.

<인어공주> 속 나영은 엄마 연순에게도 순정이 있었음을 확인한다. 엄마 연순은 영화의 끝에서 그가 평생을 구박해온 남편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물질과 현실만으로 사는 존재는 아니다. 현실이 팍팍할수록 간절해지는 건 꿈과 기대, 사랑과 추억 같은 것들이니 말이다. 어쩌면 우도가 관광객들에게 건네고자 하는 것도 그와 같은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