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휴먼라이츠워치(전 세계 70여 개국 전문가들이 모인 국제인권단체)가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를 주제로 실태보고서를 발표했다. 2년에 걸친 장기 국내 취재와 다양한 피해 사례 확보, 고위 관료 등 각계각층의 심층 인터뷰가 주를 이룬 보고서는 100여 쪽을 꽉 채운 분량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7일 KBS 1TV <시사기획 창>은 이 실태보고서를 바탕으로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편을 방송했다. 취재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10일 류란 기자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이영광

 

다음은 류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떠세요?
"이번 작품은 특히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애정도 많이 갔던 작품이라서 마음이 후련하지는 않아요. 일단 시간상 취재한 내용의 절반도 방송에 내지 못했고요. 과연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할 내용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했나 아쉬움이 있어요."

- 어떻게 취재하게 됐어요?
"방송에도 나오는데요. 올해 6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서 한국만 꼭 집어서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냈어요. 처음 봤는데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왜냐하면 디지털 성범죄는 사실 전 세계적인 추세거든요. 근데 이게 그냥 작성된 게 아니고 2년 동안 피해자들도 여럿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하고 관련 기관 관료들도 만나 꼼꼼하게 취재를 진행했더라고요. 정말 나무랄 데가 없었어요.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 언론은 관심이 없는 거예요. (보고서를 읽어보니) 내용이 심각했어요. '이런 점이 심각한 문제이니 우리 함께 움직여 봅시다'라는 무브먼트 운동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제작하게 됐어요."

- 그전까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셨어요?
"정말 부끄럽지만, 저도 잘 몰랐어요. 디지털 성범죄가 특별히 뭔지 왜 그렇게 심각한지를 몰랐었어요. 직접 취재하고 보고서를 읽기 전까지는요."

- 처음 취재는 어디부터 시작하셨어요?
"일단 제도 파악부터 먼저 했죠. 처벌 수위, 양형기준, 그 다음에 관련법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부터 알고 감을 잡은 후에 가해자들이 어느 정도 처벌을 받는구나 살펴봤어요. 그리고 피해자들을 만나서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어요."

- 방송을 보면, 어떤 남자가 여자의 뒷모습을 찍더라고요. 초상권 침해 아닌가요?
"범죄자들이 굉장히 교묘한 것이 법을 정말 공부를 많이 하더라고요. 현행법에 구멍이 많은데 법에 걸리지 않을지 이미 연구한 사람으로 보였어요. 여자의 뒷모습을 찍었는데 피해자가 얼굴로 특정되지 않고 피해자가 (자신이)찍힌 지 모르게 찍었으니 초상권 침해로 처벌할 수 없는 거죠."

- 아무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을 찍으면 불법 아닌가요?
"현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가 풍경 사진을 찍는데 누군가 알 수 없는 사람이 찍힌다고 처벌하지는 않잖아요. 그러면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누군가를 무단으로 찍었을 때 불법이냐, 그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어떤 식으로 유통되고 변형되고 조작되고 합성되는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 최근 성중독·성범죄 환자가 급격히 늘었다던데 이유는 뭘까요?
"저도 그 원인을 딱 잘라서 이야기할 수 없지만 보고서에서는 하나의 문제로 결론을 내리거든요. 한국의 뛰어난 디지털 기술은 거의 타국의 추종을 불허하잖아요.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양성평등률이 굉장히 낮아요. 양성평등의 내용을 보면 남녀 임금 격차 그리고 성폭력 문제를 비롯한 물리적 폭력들에 있어 여성차별이 심한 상황이거든요. 기술은 엄청 뛰어나고 남성들 권한은 높죠. 그러니까 기술과 권력, 재력을 다 가지고 있는 남성이 여성들한테 이런 기술을 폭력적으로 사용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는 거예요. 실제로 판·검사들의 태도에서 드러나잖아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낮은 성평등 문제가 겹치면서 디지털 성범죄의 리더국이 됐다는 평가가 있더라고요."

- 카메라를 이용한 성범죄 불기소 비율이 43.5%고, 그중 징역형 비율은 2%잖아요. 왜 이렇게 낮은 걸까요?
"일단 방송에 나온 자료는 2017년도 통계거든요. 비공식적인 데이터지만 그거보다는 조금 비율이 올라간 통계가 있더라고요. 비공식 통계이긴 하지만 높아진 건 맞는 것 같아요. 워낙 사회가 발전하고 국민들이 분노하시니까요. 그런데 극단적으로 말하면 방송에서도 나오는데요. 아직도 판사분들과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법정형도 높였다고 하지만 최고가 7년 형이거든요. 그런데 양형기준은 그 절반이거든요. 1년부터 시작하는 것도 있고 감형 받으면 8개월, 거기다 집행유예 이런 식이에요. 아니면 벌금이죠.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코로나로 생계가 끊긴 한 할아버지가 배가 고파서 빵을 훔치셨어요. 절도죄로 감옥에 갔죠. (감옥에서) 나왔는데 두세 달 뒤에 또 배가 고파서 빵을 훔친 거예요. 상습범이 돼서 징역 6개월, 1년 8개월 이런 식의 선고가 나서 화제가 된 적이 있거든요. 내 은밀한 사생활이 조작되고 유통돼서 천 명·만 명 들어 있는 단톡방에서 공유되고 있어도 그 범죄를 빵 한두 개 훔친 것보다 약하게 보는 거예요.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박살 내는 범죄인데 그것에 대한 인식이 그렇지 않다는 게 심각한 문제 같아요."

- 취재할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관련된 모든 사람이 취재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거죠. 왜냐하면 피해자들은 피해가 나름대로 당연히 적극적일 수가 없겠죠. 제가 접촉한 피해자들 가운데 내가 당신에게 나의 사례를 얘기하고 증거 등을 제공하겠지만 방송에는 못 나가겠다고 하신 분들이 계셨어요. 경찰이나 검찰 등도 인터뷰를 거부했거든요. 그래서 취재하기가 조금 힘들었어요."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럿이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피해들이 너무나 정당하게 보장된 자신의 권리를 너무 모른다는 거예요. 너무 안타깝죠. 그래서 몰카 범죄피해자 매뉴얼이라는 유튜브용 영상을 짧게 만들었거든요. 사실 남녀 상관없이 누구나 알고 있으면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이거든요. 굉장히 짧으니까 저장을 해주시고 나중에 시청해 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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