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8월 손예진과 김남길 주연의 해상 코믹 어드벤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이 개봉했다. <해적>에 개봉한 지 7년이 지난 현재, 많은 대중들은 <해적>이 일주일 먼저 개봉한 한국영화 역대 최고 흥행작(1760만) <명량>에 밀려 흥행에 실패했다고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해적>은 전국 86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흥행성적을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해적>은 <명량>이라는 공룡을 상대로 '2등 전략'을 선택했다. 영화의 규모로 보나 화제성으로 보나 <명량>과의 맞대결이 쉽지 않다면 억지로 개봉시기를 피하기보다 오히려 정면으로 맞붙어 박스오피스 2등을 노리는 작전(?)이었다. 여름방학 시즌인 7~8월은 더운 날씨 때문에 시원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해적>의 2등 전략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면서 천하의 <명량>과 '윈윈'에 성공했다. 

이처럼 극장가를 지배할 정도로 압도적인 대작이 개봉할 때는 일부러 개봉시기를 겹치게 해서 2등을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홍보 전략이다. 2006년 당시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새로 썼던 봉준호 감독의 <괴물>(1300만)이 개봉했을 때도 비슷한 전략을 썼던 영화가 있었다. <괴물>의 흥행이 절정에 달해 있던 2006년 8월에 개봉해 느리지만 잔잔한 흥행 속도로 손익분기점을 넘었던 임수정 주연의 <각설탕>이었다.
 
 <각설탕>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같은 시기에 개봉했음에도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선전했다.

<각설탕>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같은 시기에 개봉했음에도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선전했다. ⓒ CJ 엔터테인먼트

 
흥행파워와 연기력 겸비한 여성배우

고교 시절 우연히 연극을 보고 연기자의 꿈을 키운 임수정은 잡지와 광고 모델을 하다가 2000년 SBS <좋은 친구들>의 미니드라마 <흑과백>을 통해 TV에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1년 <학교4>에서 무용과 학생 오혜라 역에 캐스팅되며 정식 연기자로 데뷔했다. 하지만 오혜라는 함께 출연했던 고 김보경이 중도하차하면서 캐릭터의 색깔이 흐려졌고 <학교4>의 주역은 임수정이 아닌 박서원 역의 이유리에게 넘어갔다.

<학교4>에서 기대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한 임수정은 2002년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 대통령(안성기 분)의 반항기 있는 딸을 연기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임수정은 2003년에 개봉해 전국 300만 관객을 동원한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을 통해 드디어 껍질을 깨고 나왔다. 임수정은 <장화, 홍련>의 열연을 통해 청룡영화제와 대한민국 영화대상을 비롯한 4개 영화제의 신인상을 휩쓸었다. 

김래원과 호흡을 맞춘 영화 < …ing >에서 불치병에 걸린 여고생 민아를 연기하며 또 한 번 많은 사랑을 받은 임수정은 2004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통해 인지도를 크게 끌어 올렸다. 임수정이 극 중에서 입었던 의상과 부츠가 크게 유행했을 정도였다는 후문. 그리고 임수정은 2006년 영화 <각설탕>을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단독주연을 맡았다. <각설탕>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음에도 전국 140만 관객을 모으며 선전했다. 

박찬욱 감독의 흑역사로 기억되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역시 영화의 흥행실패와 별개로 임수정의 독특한 싸이보그 연기는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2007년 허진호 감독의 <행복>을 통해 청룡영화제와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임수정은 2년 동안 휴식기를 가진 후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를 통해 컴백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459만 관객을 동원하며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실 임수정은 <내 아내의 모든 것> 이후 <은밀한 유혹>,<시간이탈자>,<당신의 부탁> 등 출연하는 영화들마다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임수정은 2019년 드라마 < 검색어를 입력하세요WWW >에서 포털사이트의 본부장 배타미를 연기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현재는 <스위트홈>으로 주목 받은 신예 이도현과 함께 지난 10일 첫 방송된 tvN 수목드라마 <멜랑꼴리아>에 출연하고 있다.

기수와 말의 우정, '억지감동'은 옥에 티
 
 임수정은 실제 말과 교감하는 듯한 열연으로 첫 단독주연 작품을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임수정은 실제 말과 교감하는 듯한 열연으로 첫 단독주연 작품을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 싸이더스

 
<장화, 홍련>의 열연을 통해 많은 관객들을 놀라게 했던 임수정은 영화 < ...ing >와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2000년대 중반 가장 주목 받는 20대 여성 배우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연기 경험이 많지 않았던 임수정이 단독 주연으로 영화 한 편을 온전히 이끌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관객은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상대는 '천재' 봉준호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제작비 110억 원의 <괴물>이었다.

하지만 임수정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 임수정은 일반 대중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경마장 기수라는 이색 직업을 연기하면서 말에 대한 애정과 감정변화를 잘 표현했다. 특히 영화 초반부 아버지(박은수 분)가 시은(임수정 분)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천둥을 팔자 아버지에게 "어떤 정신 나간 년이 자기 동생 팔아서 대학 가!!"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그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임수정의 연기야 그렇다 쳐도 천둥이를 연기한 말(실제 등록명도 '천둥'이었다)도 기대 이상의 호연(?)을 펼쳤다. 물론 실제로는 수 많은 반복촬영 끝에 힘들게 'OK컷'을 따냈겠지만 영화만 보면 '정말로 천둥이가 임수정과 말이 통하는 게 아닌가' 라는 착각이 들 정도의 실감나는 연기를 선보였다. 참고로 천둥이는 <각설탕> 촬영 후 승용마로 용도변경 됐다가 2007년 장기에 병이 생기면서 영화에서처럼 얼마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기수와 말의 우정을 담백하게 보여주던 중반부까지에 비해 억지감동을 이끌어 내려는 듯한 후반부는 <각설탕>의 옥에 티로 꼽힌다. 특히 천둥이 수술을 받으면 살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조교사와 기수가 그랑프리 대회 출전을 강행한 것은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해도 '인간의 욕심'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각설탕>은 2004년 송승헌과 고 정다빈 주연의 <그놈은 멋있었다>를 연출한 이환경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이환경 감독은 <각설탕>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긴 후 2011년 또 다시 말이 등장하는 차태현, 박하선 주연의 <챔프>를 연출했지만 전국 53만 관객으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환경 감독은 2013년에 개봉한 4번째 장편영화 <7번방의 선물>로 12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천만 감독'으로 등극했다.

작은 역할도 선뜻 맡았던 유오성
 
 거친 이미지를 가진 배우 유오성은 <각설탕>에서 인간적이고 부드러운 조교사를 연기했다.

거친 이미지를 가진 배우 유오성은 <각설탕>에서 인간적이고 부드러운 조교사를 연기했다. ⓒ 싸이더스

 
<친구>를 통해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배우 유오성은 이후 <챔피언>,<별>,<도마 안중근>이 차례로 흥행 실패하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하지만 아무리 유오성이 슬럼프에 빠져 있다 해도 한참 어린 후배 임수정이 단독 주연을 맡은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할 정도로 위상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주연이라 하기엔 분량이 너무 적었고 조연에 들어가기엔 이름값이 너무 컸던 유오성을 크레딧에 '우정출연'이라고 올린 이유다.

유오성이 연기한 윤조교사는 남자 기수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던 시은을 위로해 주고 인정해주는 따뜻한 캐릭터다. '말을 움직이는 것은 기수의 마음'이라는 철학을 가진 시은이 복수심에 불타 천둥에게 심한 채찍질을 할 때는 따끔하게 시은을 질책하기도 한다.

작품에 따라 때로는 인간적인 역할을 맡을 때도 있고 때로는 비겁하고 극악무도한 연기를 할 때도 있는 배우 박길수는 <각설탕>에서 시은과 같은 기수 후보생들의 반장 역을 맡았다. 반장은 김조교사(최학락 분)의 꼬임에 넘어가 시은의 레이스를 방해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시은을 도우려다가 낙마해 목숨을 잃는다. 시은이 승리를 위해 비겁한 수도 마다하지 않는 김조교사에게 본격적으로 복수심을 품게 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지금이야 영화와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대중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친근한 배우가 됐지만 <각설탕>에 출연할 당시 김광규는 <친구>의 선생님 이미지가 가장 강했다. 김광규는 <각설탕>에서도 천둥이 같은 국산 말을 무시하는 부패한 마주를 얄밉게 연기했다. <각설탕>에서 관객들의 미움을 받았던 김광규는 그 해 10월 <환상의 커플>에서 코믹한 공실장을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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