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리 포스터

▲ 쉬리 포스터 ⓒ 강제규필름

 
한국 영화사상 가장 특별한 영화 한 편을 꼽는다면 가장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말할 것이다. 최초의 한국영화 나운규의 <아리랑>, 첫 100만 관객영화 <서편제>, 한국영화사상 전무후무한 명성을 얻은 <기생충>과 같은 상징적 작품이 여럿이지만 오늘 한국영화계의 부흥에 시작점이 된 영화가 <쉬리>라는 사실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쉬리> 이전 한국영화는 규모와 착상, 연출에 이르기까지 세계 영화계의 흐름에서 뒤처져 있었단 평가가 많았다. 스티븐 스필버그로 대표되는 할리우드의 패권이 전 세계로 뻗쳐나가고 있었고 아시아에선 홍콩이 액션과 멜로라는 양대 장르에서 실력을 행사했다. 한국 학생들의 책받침엔 브룩 쉴즈와 데미 무어, 피비 케이츠 같은 할리우드 배우가 아니면 왕조현과 임청하, 장만옥 같은 이들이 나붙어 있었다.
 
쉬리 스틸컷

▲ 쉬리 스틸컷 ⓒ 강제규필름

 
한국영화의 변곡점

<쉬리>는 한국도 재밌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자긍심을 일깨웠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문학계의 오랜 격언에 따라 가장 한국스러운 분단의 아픔을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풀었다. 한국적 아픔이란 특수성에 사랑과 우정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더하니 관객을 움직일 수 있는 썩 괜찮은 영화 한 편이 완성됐다.

<게임의 법칙> 각본가이자 <은행나무 침대>로 흥행감독이 된 강제규 감독은 <쉬리>로 그 야심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 시절 그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의 연출이 알알이 담겼다.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이어지는 강제규의 영화는 그 시절 한국영화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지였다. 그가 이끈 고지로부터 후배들은 양과 질 모두에서 한국영화의 전성시대를 열어젖혔다.

<쉬리>는 남북 정보기관 비밀요원들의 이야기다. 한국 정부요인을 수차례 저격한 북한의 저격수를 한국의 비밀요원 중원(한석규 분)이 뒤쫓는 과정이 흥미를 자아낸다. 미스테리와 첩보물의 성격과 함께 경기장에 설치된 액체폭탄을 찾아야만 하는 블록버스터 특유의 긴박감을 더한다. 호쾌한 액션과 반전에 더해 당대 최고의 걸출한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한다. 한석규와 송강호, 최민식을 한 영화에서 만나는 건 지금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쉬리 스틸컷

▲ 쉬리 스틸컷 ⓒ 강제규필름

 
'쉬리 명소'로 기억되는 중문관광단지

공과 사가, 대의와 사생활이 어긋나는 상황 가운데 선택을 강요받는 인물들의 상황은 비통한 역사를 나름으로 헤치고 나아왔을 관객들에게 적잖은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그 모든 비극의 끝에 중원이 도달하는 곳은 제주의 어느 언덕이다. 실제로는 신라호텔의 산책로를 가로질러 바다를 굽어보는 경치 좋은 언덕이다. 그곳의 벤치에 앉아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여자가 있다. 모든 미스테리의 가운데 있었던 여인 명현(김윤진 분)이다.

쉬리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김윤진의 연기가 어찌나 남달랐던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녀가 1인2역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녀는 <로스트> 시리즈를 통해 한국의 위상을 널리 알리기도 했고 <국제시장>에서도 중요한 역을 맡아 연기한다. 돌아보면 <쉬리>의 선구안은 하나하나 죄다 훌륭했다.

한때 제주엔 캐롤 키드가 부른 <쉬리> 삽입곡 'When I dream'을 들으며 쉬리의 언덕을 둘러보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23년이 흐른 지금, <쉬리>만큼 많은 관광객을 제주로 이끈 영화는 떠오르지 않는다. 양과 질 모두에서 과거와 비견할 수 없는 한국영화가 제주라는 좋은 재료를 충실히 활용하고 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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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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