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귀모> 포스터

영화 <자귀모> 포스터 ⓒ 시네마서비스

 
199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미녀로 불린 여자배우가 있다. 김희선이다. 남자배우는 장동건과 정우성이 자웅을 겨루고 있던 시절, 여자 배우 중에선 김희선만한 이가 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오랜 시간 세 명쯤의 톱배우를 엮어 트로이카라고 부르고는 했지만 20세기 말 한국에서 가장 빼어난 미모를 지닌 배우로 거론되는 건 단연 김희선이었다.

김희선은 유독 영화에선 성적이 좋지 못했다. 고소영이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전지현이 <화이트 발렌타인> 같은 영화를 찍던 시절, 김희선이 출연한 작품은 대개 혹평을 받고 일찌감치 문을 닫기 일쑤였다. 1997년작 <패자부활전>, 1999년 <카라>와 <자귀모>, 2000년 <비천무>에 이르기까지 김희선의 출연작은 범작이란 평가를 받는 작품마저 희귀했다.

<자귀모>는 <닥터 봉>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한 이광훈 감독의 야심작이었다. 두 번째 작품에 당대 최고의 스타 장동건과 김희선을 기용해 <패자부활전>을 찍었으나 크게 실패하고 절치부심해 세 번째 작품으로 준비한 작품이다. 역시 김희선을 내세워 지난 실패를 가뿐하게 넘어서려 했다. 남자배우는 연기력이 출중하다고 평가받던 이성재로 교체했지만 김희선에 대한 믿음은 확고했다.
 
 <자귀모> 스틸컷

<자귀모> 스틸컷 ⓒ 시네마서비스

 
찾아보기 힘든 설정, 귀신들의 이야기

개봉 후 22년이 흐른 지금, <자귀모>는 한국영화에서 손꼽히는 괴작 중 한 편으로 남아 있다. 2001년작 <화산고>처럼 독특한 설정으로 당대 한국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든 분위기를 가졌다.

이야기는 제법 참신하다. '자살한 귀신들의 모임'을 줄인 제목 그대로 귀신들의 이야기다. 귀신들이 산 사람에게 자살을 권유한다는 설정은 당시 큰 사회문제로 떠오른 개인의 극단적 선택을 영화적 소재로 선택한 증거였다. 사회상을 반영한 영화란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영화 속 자살한 귀신들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다. 성폭행을 당하고 뚱뚱한 외모로 고통을 받다 죽음을 맞는 등 자살의 사유도 다양하다. 이들의 사정을 조금만 잘 매만졌더라도 당대의 사회상이 심도 있게 드러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뒤따른다.
 
 <자귀모> 스틸컷

<자귀모> 스틸컷 ⓒ 시네마서비스

 
<자귀모>가 담은 제주, 섭지코지

<자귀모>는 제주도를 담은 많지 않은 영화 중 한 편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나온 영화들은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를 다루거나 아예 유럽 등 해외를 배경으로 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1999년까지는 상황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연풍연가> <시월애> <자귀모>까지 제주를 담은 영화가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나온 배경이다.

<자귀모>에서 등장하는 제주는 지금도 유명한 관광지인 제주 동쪽 섭지코지다. 초원을 건너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내다보이는 섭지코지의 탁 트인 풍경을 22년 전 김희선 귀신과 이성재 귀신이 오간다.

섭지코지의 섭지는 좁은 땅을 뜻하는 협지(狹地)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뒤에 붙은 코지는 곶을 뜻하는 제주방언이다. 좁고 튀어나온 곳이란 뜻인데, 남동쪽으로 튀어나와 북동편에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건너볼 수 있는 섭지코지의 지리와 어울린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섭지코지 초원은 본래 입구에서 끄트머리까지 뻗어있는 비경이었는데, 현재는 한화아쿠아플라넷제주와 유민미술관이 자리해 또 다른 인상을 준다.

영화 속 귀신들이 저승사자를 피해 어머니를 만나려 했던 숨겨진 고장이 2021년엔 제주에서 손꼽히는 명소로 변해버렸다는 게 격세지감을 일으킨다. 어쩌면 정말 대단하고 무서운 건 귀신이 아니라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흥행에 참패하고만 비운의 영화 <자귀모>가 진정으로 전하고픈 메시지였을 테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