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학 감독의 프로농구 최초 정규리그 통산 700승 달성을 기념하는 울산 현대모비스 홈페이지 갈무리.

유재학 감독 ⓒ 울산 현대모비스


유재학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이 KBL 역대 최초로 정규리그 통산 700승 달성이라는 위업을 이뤄냈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현대모비스는 지난 12일 열린 프로농구 창원 LG와의 원정경기에서 80-61로 승리했다.
 
현대모비스는 전반을 38-38 동점으로 마쳤지만, 그동안 약세를 보였던 3쿼터에서 모처럼 주도권을 가져가며 23-11로 LG를 압도하며 승기를 잡았다. 외국인 선수들이 다소 부진했지만 서명진(3점슛 3개)와 장재석(8리바운드)이 나란히 팀내 최다인 15득점을 올리는 등 활발한 활약으로 경기를 주도했다.
 
박정현(21점 10리바운드)에게 인생 경기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대신 이관희(12점)-아셈 마레이(4점 16리바운드)-이재도(7점) 등 LG의 주득점원들을 잘 틀어막았다. 현대모비스는 4쿼터에도 LG를 몰아붙여 더 이상 큰 위기없이 유재학 감독에게 700번째 승리를 안겼다. 1998년 11월 11일 인천 대우(현 대구 한국가스공사)를 이끌고 광주 나산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둔 이후 무려 23년 만에 이뤄낸 대기록이다.
 
경기 전까지 승수나 기록에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던 유재학 감독은 실제로 700승을 달성하자 영광을 모두 주변에 돌렸다. "프로농구 감독을 하면서 열 명이 넘는 단장님들과 함께 했다. 구단 사무국 직원들, 코치로 같이 했던 임근배(삼성생명 감독), 김재훈-조동현-양동근 코치 등에게도 고맙다. 뭐니뭐니 해도 선수들이 만들어준 결과이기에 감사하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유재학 감독은 그 자체로 한국 프로농구의 살아있는 역사다. 유 감독은 1997년 인천 대우 코치를 시작으로 출범 3년차인 1998-99시즌부터 감독 자리에 올랐고, 2004년부터는 지금의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무려 17년째 장기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프로 원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무려 24년간 단 한 번도 공백기 없이 현장을 지키며 한국 프로농구의 흥망성쇠를 함께해온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유재학은 경복고와 연세대를 나와 실업 기아에서 선수 생활을 보내며 천재 포인트가드로 주목받았지만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일찍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이른 은퇴는 그에게 좀 더 일찍 준비된 지도자로서 제 2의 농구인생을 열어주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1991년 모교인 연세대 코치에 부임하며 지도자의 길에 입문한 유 감독은 1994년 신생 대우 농구단 창단 코치를 임명되어 프로 원년 출범까지 대우 제우스 코치로 활약했다.
 
1998년 5월에는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최종규 전 감독의 뒤를 이어 감독대행으로 임명되었을 당시 유재학의 나이는 겨우 35세였다. 대행 딱지를 벗고 본격적으로 정식 감독에 임명된 1999-2000 시즌부터 감안해도 'KBL 역대 최연소 감독 기록'이었다.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30대 감독이었던 젊은 지도자가 어느덧 현재는 환갑을 바라보는 '백발의 최고령 감독'이 되었다는 사실은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케한다.

유재학 감독은 울산 현대모비스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후 전성기를 맞이하며 KBL 정규리그 우승 6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 및 최초의 3연패를 달성하여 '모비스 왕조'를 구축했다. 국제무대에서도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농구에 12년 만의 금메달이라는 영광을 안기기도 했다.
 
정상은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게 더 힘들다고 한다. 오랜 시간 활약했다는 것은 그만큼 꾸준히 성적을 올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유 감독의 정규리그 통산 성적은 1217경기에서 700승 517패로 승률이 57.5%에 이른다. 유 감독을 제외하면 500승 이상을 거둔 감독도 아직 전무하다.
 
역대 최다승 2위는 유재학 감독의 동갑내기 라이벌 전창친 전주 KCC 감독으로서 840경기에서 491승(349패, 승률 58.5%)을 기록하며 승률에서는 앞서지만 누적에서는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졌다. 400승 이상을 거둔 감독은 유재학, 전창진 감독과 김진 전 감독(803경기 415승388패)까지 역대 3명뿐이다. 또한 유재학 감독은 플레이오프에서도 최다승(58승47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산술적으로 공백기없이 감독생활 24년 이상 이어가면서 매시즌 6강 진출권인 정규리그 평균 30승에 가까운 성적을 꼬박꼬박 올려야 유 감독의 기록에 겨우 근접할수 있다는 의미다.현재 프로농구 감독들이 대부분 40대 초중반에 경력을 시작하여 제법 성공했다는 감독도 10년차를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감안하면 유재학 감독의 기록에 도전할수 있을만한 인물은 당분간 나오기 어렵다.
 
또한 유재학 감독이 한국농구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무엇보다 KBL 특유의 농구스타일과 리더십의 기준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탄탄한 조직력과 변화무쌍한 전술을 바탕으로 한 '수비 농구'는 오늘날 KBL의 농구스타일을 대표하는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비만이 유재학 감독의 전부는 아니었다. 유재학 감독의 진정한 장점이자 다른 감독들과 가장 차별화된 점은, 변화하는 선수구성이나 농구 트렌드에 맞춰 그때그때 유연하게 진화해왔다는 점이다. 유재학 감독은 인천 전자랜드-울산 모비스 등 하위권 전력의 팀을 맡아 수차례의 리빌딩을 성공시키기도 했고, 지난 시즌에도 레전드 양동근의 은퇴 이후 흔들린 팀을 재건하며 정규리그 2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이끌었다.
 
또한 성적 못지않게 선수 육성에도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다. 지금이야 프로농구 레전드로 자리잡은 양동근이나 함지훈은 프로 데뷔 초기만 해도 장단점이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유재학 농구' 시스템에서 그 능력을 극대화하며 프로농구에 한 획을 긋는 선수들로 성장했다. 김효범이나 이승준, 이대성같이 재능은 출중하지만 튀는 성향이 있는 선수들도 적재적소의 용병술로 한국 농구에 맞게 가장 잘 활용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인맥과 학연에 얽매이지않고 선수들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안목은 국내 감독 중 단연 독보적이라는 평가다. 많은 현역 지도자들에게도 유재학 감독은 롤모델로 꼽히며 그의 전술적 역량과 지도 스타일을 따라잡기 위하여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은 유명하다.
 
유재학 감독은 20년 이상 한 구단에서만 장기집권하면서 팀을 명문으로 발돋움시키고 역사를 만들어낸 화려하고도 꾸준한 커리어, 엄격하고 카리스마넘치지는 이미지지만 자신의 선수들을 누구보다 아끼는 원칙과 신뢰의 리더십, 리그의 최장수-최고령 감독이라는 점 등에서 NBA(미프로농구)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그렉 포포비치 감독과 많은 면에서 닮았다. 현대모비스는 올 시즌 현재 10개 팀 중 8위에 처져있지만 1라운드 개막 7경기에서 1승6패의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다가 최근 7경기에서는 5승2패를 기록하며 반등하고 있다. '한국의 포포비치'로 평가받는 유재학 감독이 포포비치처럼 한국 프로농구에서도 언젠가 1000승 고지를 밟는 지도자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불가능한 도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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