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워 미드나잇"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아워 미드나잇"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필름다빈

 
1_'도시의 밤'을 채집해 완성한 영화
 
도시의 밤은 다면적이다. 이 시공간을 상상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를 법한 이미지, 미국의 현대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에서 도시의 야경과 그 안 곳곳의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은 현대인의 고독감을 극대화시킨다. 개별화된 사람들은 호퍼의 그림 속 공간 곳곳에서 각기 고립된 채로 방황한다. 그 지독한 외로움과 쓸쓸함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 겨울 냉기처럼 느릿느릿 스며드는 기분을 억지로 제공해줄 것이다.
 
호퍼의 그림 속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늘 마주치던 장소들, 익숙하게 느껴지던 주위 환경들은 순식간에 낯설어지는 체험을 겪게 된다. 그 정서는 한없이 검푸른 구덩이로 빠져들게 만드는 고립감이다. 하지만 때로 그런 이질감은 누군가에겐 신비감과 익명성의 보장으로도 기능한다. 아니 '케‧바‧케(Case by Case)'로 상황에 따라 그 속성이 다르게 작동하는 것에 가까울 테다.

그 독특한 질감을 문자로, 영상으로, 소리로 채집해 담아보려는 노력은 어느새 도시화된 세상에서 이제 시골의 반딧불이 잡이를 아득한 기억 저편으로 보내버리고 우리의 의식 구석자리를 점유하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 도전에 뛰어들었다 못 빠져나오지만 밤길 가로등 불빛에 몰려드는 나방처럼 끊임없이 달려든다.
 
임정은 감독은 정하담, 김혜윤 두 배우의 연기가 서늘한 긴장을 극대화시켰던, 취업준비생들의 무한경쟁을 밀도 있게 담은 단편 <새벽>(2018)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새벽>의 영화 속 세계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물갈퀴를 흔들면서도 겉으로는 우아한 척 해야 하는 백조들의 의자 뺏기의 시공간이었다. 그랬던 감독의 신작은 내용은 그랬던 인물들의 사회생활 이후 이야기이지만 제목은 동이 터오기 전 아주 조금 유예된 시간대를 골랐다. 그 엇갈리는 시점은 어떤 의도로 설정된 걸까? 그런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워 미드나잇>은 도시의 밤이 가진 복합성에 의지해 이야기를 시작한 뒤, 주인공들이 차가운 세상을 견뎌가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만남을 밤의 터널을 통과하듯 그려낸다.
 
2_그들의 밤 산책 이야기
 

<아워 미드나잇>의 기본적인 설정이나 배경은 그렇게 개성 있게 다가오진 않았다. 얼핏 근래 독립영화들에서 2030세대를 다룰 때 자주 구사되는 소재나 구조와 큰 차이가 보이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익숙할 지경이다. 작품의 내용 또한 몇 줄의 텍스트로만 접한다면 도시배경 일상물의 전형에 가깝다. 이걸 굳이 장편으로까지 만들어야 돼? 하는 반응이 툭 튀어나올 정도다. 차라리 깔끔하게 단편으로 내면 될 걸 감독의 자의식 과잉 아닌가? 반문도 흘러나올 법하다.
 
하지만 감독은 장편이 되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결심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영화를 봐야 한다. 영화를 보고 나니 고등학교 문학 과목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청소년들이 책 좀 읽으라고 만든 과목인데 수능시험을 대비해 요약된 문학으로만 남아버린 바로 그. 하지만 그런 요약본으로 그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아워 미드나잇> 역시 영화를 보지 않고 사전에 제공되는 외부정보만으로 그 전모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성질의 작업이었다. 이 영화는 직접 체험해야만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존재다.
 
2_1. 궤도에서 이탈한 이들, 만나다
 
"아워 미드나잇"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아워 미드나잇"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두 주인공의 상태를 설명하는, 통과의례이지만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할 초반 25분은 솔직히 그렇게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다른 독립영화 근작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 전형적 이야기들로 느껴졌다. 지훈은 꿈을 좇는 무명배우다. 무척 오래 사귀던 여자 친구가 그의 정체된 일상에 화가 나서 내뱉은 몇 마디가 그의 현재를 압축한다. 공연을 해도 정산을 받을 게 없다. 생계를 위해 몇 달간 일했던 알바비는 떼어먹힐 위기다. 도전을 위해 오디션 준비한다지만 '유명한 애'가 그 자리를 꿰어 찰 거란 걸 서로 다 안다. 결국 지훈은 여자 친구에게 결별을 통보받는다.
 
다른 친구들은 만나면 상사 욕과 직장 푸념을 하는 사회인이 다들 되어 있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은 술값 계산에서 열외라는 암묵적 배려가 오히려 지훈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된다. 하지만 그런 '열폭'은 그를 오히려 고립시키기만 한다. 별 기약도 없이 학교 연습실과 옥탑방을 오가는 처지에 지쳐가며 지훈은 서서히 자신감을 잃어가는 처지다. 결국 '영화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학창시절 호기롭게 사진을 찍었으나 이젠 공무원이 된 선배에게 알바자릴 부탁한다. 그리고 한강 다리에서 비공식적으로 근무하는 자살방지 아르바이트를 소개받는다. 일반인인 척 강변을 배회하다 자살시도자를 발견하면 대화를 걸어 시도를 막는 일이다.
 
은영은 직장에서 비밀 사내연애를 했으나 끝이 좋지 못했다. 상대는 데이트 폭력을 일삼았고 은영은 그를 직장에 신고하지만 제대로 된 징계 처리는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은영만 구설수에 올라 퇴사를 암묵적으로 종용 당한다. 정당한 대응을 하고 피해자 구제 요청한 것뿐인데 돌아오는 결과는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그녀가 쏟았을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나 부조리하다. 현실에 시달리고 지친 은영은 한강을 찾는다. 그곳에서 은영은 지훈과 의도치 않은 첫 만남의 시간을 가진다. 그러나 은영은 첫 순간은 기억할 수 없다. 다만 그런 만남이 있었다는 걸 인지할 뿐이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이 일어난다. 그 직후 영화의 제목이 '영화는 이제부터 제대로 시작된다!' 선포를 하듯 화면에 가득히 새겨진다.
 
2_2. 판타스틱 야행의 시간
 
둘은 지훈의 제안으로 한강을 출발해 명동, 정동, 종로와 을지로 주변 일대를 인적 없는 심야에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산책하기 시작한다. 마치 벽에 부딪힌 것처럼 현실에 지쳐 있던 둘은 주변으로부터도 스스로 고립되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숨쉴 틈을 얻는다. 서로 모르는 사이, 수틀리면 산책을 중단하면 벗어날 관계라는 점을 잘 알기에 둘의 밤 산책길에선 오히려 더 편히 누구에게도 말 못하던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인적 없는 심야의 거리와 시끄러운 차량의 굉음이라는 조건, 도시의 익명성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대와 주변 환경 덕에 이들은 그 평범한 일상에 포로가 된 이들이라면 쉬이 누리기 힘들 특권을 맘껏 누린다.
 
둘의 여정은 따져보면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다. 그들은 그저 하염없이 걷기만 하는 게 아니다. 가끔 소리를 지르거나 볼륨을 높여도 별 문제가 안 되니 이것저것 못해본 소심한 일탈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무명배우는 상황극과 그림자극을 선보이며 상대의 상처를 이해하고 위로하려 애쓴다. 제대로 길을 알진 못하지만 어둠 속 미로 같은 서울 구도심으로 둘의 모험을 이끄는 것도 기본적으로 지훈의 몫이긴 하다. (영화가 만들어질 때는 의도치 못했겠지만 이후 폐관과정을 밟게 된) 서울극장의 풍경이 그 장소를 추억하는 이들에겐 노스텔지어를 전해주기도 한다.
 
서울시민에겐 익숙하던 장소들이 밤 풍경으로 이색적인 공간으로 변신하는 순간들이 매혹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촬영과정 간소화와 비용절감을 고려했을 법한 적외선 필터링으로 인위적으로 조성된 블랙 앤 화이트. 그 흑백으로 고정된 색채대비가 이 영화에선 유독 따스하게 다가온다. 더럽거나 슬픈 건 어둠에 눈 속처럼 파묻히는 느낌이랄까. 차가운 도시의 밤기운을 생각한 이들에겐 그 대신 작품 속 설정된 시간대처럼 산책하기 좋은 봄날 밤의 기운이 전해져 오는 기분이다. 그런 밤의 여정 속 종착역인 서울극장 앞마당에서 지훈이 벌이던 손가락 그림자극은 다양한 시연을 거쳐 마지막에 밤의 판타스틱을 불러온다. 관객은 상상력으로 그 '초현실'이 강림하는 찰나를 각자의 머릿속에 완성하게 된다.
 
2_3. 다시 낮의 일상으로 돌아오다
 
"아워 미드나잇"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아워 미드나잇"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그리고 다음날 다시 시작된 둘의 일상. 지훈은 자신이 타인에게 뭔가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살짝 흥분했던 것 같다. 그는 약간의 오지랖을 용기를 내 다른 이에게도 발휘하지만 서툰 그의 진심과 호의는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되기엔 아직 내공과 사려가 부족함을 노출시킨 채 참담히 실패한다. 지훈의 용기는 번지수를 놓치기만 한다. 잔뜩 위축된 그는 평상심을 잃어버린 것 때문에 다른 기회를 놓쳐버리고 죄의식에 시달린다.
 
알바를 알선해줬던 공무원 선배는 지훈이 쓸데없이 생각이 많다며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고 채근하지만 지훈의 좌절감은 다시 밤의 한강을 찾게 만든다. 약속 같은 건 하지 않았는데도 그곳에는 은영이 와 있다. 실은 은영 역시 결국 권고사직을 당해버리는 상황이다. 하룻밤의 산책으로 둘이 처한 잔인한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에겐 아직 밤의 기운이 더 각자의 안에 충전되어야 할 것 같다. 지훈과 은영은 두 번째 '미드나잇'을 함께 한다. 첫 번째 밤에는 지훈이 은영을 위로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면 이번엔 입장이 전환되어 은영이 역할을 주도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들이 새벽에 무엇을 했는지 감독은 구체적으로 보여주진 않는다. 그저 둘이 함께 시간을 보냈음을 암시할 뿐이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온다.
 
이제 두 번째 마법의 시간이 도래할 때다. 밤의 기운에 감싸여 보호받던 순간은 둘에게 이미 흘러가버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해가 뜬 아침에 여전히 함께 있다. 물론 마법사도 요정도 등장하지 않지만, 아니 그 어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 변화란 없음에도 무엇인가가 둘을 바꿔놓았음을 관객은 직감할 수 있다. 과연 두 번째 밤에 무엇이 일어난 걸까? 관객은 괜히 궁금해진다. 감독은 이 영화가 장편으로 완성되어야 할 이유를 마침내 증명하려는 듯 그 찰나를 공들여 선보인다. 그리고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 영화의 일관되던 톤은 눈부신 현란함의 순간을 맞이한다.
 
3_100번째 날을 피하지 않은 두 사람의 미래는?
 

지훈과 은영의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엔딩 장면에서 둘이 정서적 교감을 이루게 되었음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지만 세상살이에서 그런 일시적 기분이 금시 휘발되기 쉽다는 건 관객들 대부분이 세상살이를 통해 경험한 부분일 테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려워도 영화가 차곡차곡 쌓아올린 전개의 끝에서 공들여 연출한 도시의 밤은, 그저 차갑다는 선입견에 갇히지 않는 것으로 다가올 것이다.
 
첫 '미드나잇' 때 지훈은 은영에게 '공주를 사랑한 병사'의 우화를 들려준다. 100일을 기다리면 만남을 허락할 것이라는 제안에 99일을 견딘 병사는 100일 째에 홀연히 사라진다. 그 다음날 자신의 노력과 믿음은 배반당할 거란 걸 알고 있었으니. 하지만 그 '다음날'에 지훈과 은영은 도망치지 않고 아침을 맞이한다. 물론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바쁘게 한강을 건너는 평범한 우리들은 혀를 끌끌 차거나 팔자 좋다며 흘겨볼지도 모르지만, 영화를 지켜본 관객이라면 그 낯선 풍경이 (감독의 소망을 담아) 일말의 가능성을 숨기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미드나잇'을 가지게 될 날이 올 것을 기약하며 영화는 그 가능성을 채 일 분 안 되는 시간 동안 눈부신 색채로 구현한다. 그렇게 감독은 첫 장편을 세상에 내보였다.
 
p.s. 이 영화는 독립영화를 보는 작은 재미가 꽤 쏠쏠한 작품이다. 감독의 영화동료들이 <아워 미드나잇>에 카메오로 대거 등장한다. 이들 상당수는 영화 제작에 스태프로 참여했기도 하다. <흩어진 밤>의 김솔 감독, <에듀케이션>의 김덕중 감독, <여름날>의 오정석 감독, <검은 여름>의 이원영 감독, <은미>의 정지영 감독, <종착역>의 권민표, 서한솔 감독 등 독립영화에 관심 가진 이들이라면 '어어?' 하며 발견의 기쁨을 누릴 보물찾기의 시간이기도 하다.
 
<작품정보>
아워 미드나잇 Our Midnight
2020|한국|드라마
2021.11.11. 개봉|77분|12세 관람가
감독 임정은
주연 이승훈(지훈), 박서은(은영)
출연 임영우(영우), 한해인(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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