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보는 사람이 있다. 업을 둘러싼 수많은 것들, 예컨대 봉급과 주변의 시선과 발전 가능성과 그 밖의 수많은 것들에 앞서 업이 가진 원초의 의무를 바라보는 사람 말이다. 직업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들 중 무엇도 직업의 본질보다 중하진 않다. 군인에겐 나라를 지키는 것이, 의사에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업의 본질이다. 세상 어느 업에 본질이 없겠는가.

도가 고전 <장자>엔 전설적인 도적 도척의 일화가 나온다. 그가 부하들 앞에서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도둑질에 과연 도가 있느냐"고 묻는 부하 앞에서 도척이 답한다. "세상 어디에 도가 없는 곳이 있겠느냐"고. 방 안에 뭐가 있는지를 맞히는 건 성(聖)이고, 들어설 때 앞에 서는 게 용(勇)이며, 나올 때 가장 뒤에 있는 게 의(義)라고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이 시작하기 전에 건이 될지 안 될지를 내다보는 건 지(知)이고, 일이 끝난 뒤 분배를 공정하게 하는 건 인(仁)이다. 이 다섯 가지가 갖춰지지 않은 큰 도둑이 세상엔 단 한 명도 없었다. 도척이 말하는 다섯 가지 도는 그저 도둑질에도 도가 있음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세상 만사에 지켜야 할 원칙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의 색깔 포스터

▲ 가족의 색깔 포스터 ⓒ 영화사 진진

 
가족과 열차, 지나간 것들이 남기는 감상

일본영화 <가족의 색깔>은 다소 지루한 작품이다. 열차와 가족과 애정 같은 한 물 간 것들을 다루고 있어서 그렇다. <동경이야기>와 <철도원>과 그도 아니면 <어느 가족> 같은 걸출한 일본 영화의 설정을 억지로 빌려와서일까. 기라성 같은 일본 영화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이지만 그중 어느 작품도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다.

줄거리는 간명하다. 아키라는 남편 슈헤이가 죽은 뒤 아들 슌야와 함께 시아버지 세츠오를 찾아 시골로 간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세츠오와 아키라가 난생 처음 만나는 남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사정은 이렇다. 아키라는 슈헤이가 재혼한 아내다. 슈헤이의 전처는 아들 슌야를 낳고 세상을 떠났다.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슈헤이가 슌야를 기르기 어렵다고 염려한 세츠오는 손자를 전처의 부모에게 넘기려 하지만 슈헤이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 사건으로 슈헤이와 세츠오는 연을 끊고 지낸다.

이들의 관계는 슈헤이가 어느 날 갑자기 죽게 되며 전환을 맞는다. 기댈 곳이 없어진 아키라가 슌야를 데리고 세츠오를 찾는 것이다. 기관장인 세츠오와 그의 아들 슈헤이처럼 슌야도 남달리 기차를 좋아한다. 아키라는 슌야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기관사가 되기 위한 도전에 나선다.
 
가족의 색깔 스틸컷

▲ 가족의 색깔 스틸컷 ⓒ 영화사 진진

 
남편 잃은 아내의 기관사 도전기

영화는 스물다섯에 미망인이 된 아키라의 도전기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 슌야에게 인정받고자 기관사가 되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온갖 어려움을 마주하고 극복해 나간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아들과 시아버지의 도움으로 조금씩 나아진다.

영화의 큰 얼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시아버지와 며느리, 새엄마와 아들 간 관계의 복원에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줄기가 새로운 직업에 적응해나가는 아키라의 도전인 것이다. 둘 모두 중심에 아키라가 있고, 그녀가 기꺼이 그 모두를 해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아키라의 이야기라 하겠다.

얼핏 남편의 사망 뒤 시아버지를 찾아 고향으로 향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가 구태의 복원처럼도 보이지만 여성으로서 기관사가 된다는 설정이 도전적으로 다가온다. 낡고 낙후한 드라마로 볼 수 있는 설정도 적지 않지만 아키라의 도전이 수많은 역경과 마주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그것과 얼마 다르지 않기에 몰입해 볼 수 있는 매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그 너머에 있다. 기차를 모은 기관장으로서 세츠오와 아키라 사이에 이어지는 업에 대한 철학이 그것이다. 텅 빈 역사 앞을 지날 때도 원칙대로 오른쪽과 왼쪽을 살핀 뒤 길을 건너는 세츠오는 타고난 기관장이다. 그가 일을 배우며 흔들리는 며느리 아키라에게 건네는 말 한 마디가 영화 전체를 가로질러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너는 손님들을 태우고 있어."
 
가족의 색깔 스틸컷

▲ 가족의 색깔 스틸컷 ⓒ 영화사 진진

 
로드킬 뒤 트라우마 겪는 여성 기관사

정식 기관사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운행에서 철길을 가로막은 사슴을 친 아키라는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왜 아니겠나. 철길에 뛰어드는 건 사슴만이 아니다. 때로는 동물을 치고 때로는 사람을 치는 게 기관사의 일이다. 한국에서도 역마다 대기하는 기관사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인간을 치어죽인 다른 기관사와 교대해 차질 없이 열차를 운행한다. 그들이 겪은 트라우마가 얼마나 큰 것인지 이 사회는 제대로 돌아보긴 했을까.

그 비극 앞에서 아키라를 꺼내 제대로 된 기관사로 만드는 게 세츠오의 한 마디다. "너는 손님들을 태우고 있어"라는 그 말이 아키라를 두려움에 떨며 주저앉은 나약한 여성으로 놔두지 않는다. 아키라는 일어나 열차를 몰고, 손님들을 안전하게 운송한다.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이 한 순간은 우리가 쉽게 무시하고 넘어가는 업의 본질을 일깨운다. 지난달 31일 일본 도쿄의 지하철에서 조커 분장을 한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승객 17명이 다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흉기를 휘두른 것도 모자라 객차 안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였는데, 그 때문에 열차가 멈추고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가족의 색깔 스틸컷

▲ 가족의 색깔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승객 잊은 기관장은 끝없이 초라해진다

후속조치도 당황스러웠다. 일본 스크린도어는 내부에서 문을 열 수 없도록 설계됐고 승객들은 혼잡한 상황에서 창문을 통해 스크린도어를 넘어 겨우 빠져나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기관장과 역무원들은 사태에 주도적으로 대응하는데 실패했고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우리에게도 먼 일이 아니다. 세월호 침몰참사와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설계미비와 책임자의 대응 실패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들 참사에서 책임이 있는 선장과 기관장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세츠오처럼 "너는 손님을 태우고 있어"라고 말 한 마디 건넨 스승이 있었다면 일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업의 본질은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자에겐 저널리즘이, 의사에겐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변호사에겐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 공직자에겐 국민을 섬기는 자세가 실종돼 있는 것만 같다. 직무를 유기하고 개인의 이익만 돌보는 이들이 세상에 넘쳐난다. 그러나 업의 본질을 돌아보지 않고선 누구도 좋은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혼란에 빠진 아키라에게 업의 본질을 일깨운 세츠오를 <곡성>의 아쿠마로 한국 영화팬에게도 익숙한 쿠니무라 준이 연기한다. 믿음을 비웃던 악마적 존재가 업의 본질을 일깨우는 어른을 연기하는 모습은 영화팬에게 꽤나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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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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