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그거 봤어? <원 더 우먼>. 아직 안 봤으면 꼭 봐봐. 속이 뻥 뚫려."
 
내가 SBS <원 더 우먼>을 보게 된 것은 지인들의 추천 때문이었다. 40대 여성들로 구성된 독서 모임에서 한 여성이 <원 더 우먼> 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여성들도 이 드라마를 강력추천했다. 그리고 곧 나도 이 드라마가 주는 사이다 같은 시원함에 빠져들었다.
 
사실 재벌이나 검찰의 비리를 다룬 드라마는 꽤 흔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유독 통쾌함을 선사한 것은 아마도 권력에 펀치를 날리는 주체가 여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연주(이하늬)가 사람을 도구 취급하는 재벌 시가(비록 가짜 시가라 하더라도)와 사리사욕만 챙기는 검찰 조직에 날리는 대사들은 진심으로 통쾌함을 선사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종결을 향해 가는 요즘 나는 한 바탕 웃고 난 후에 씁쓸함을 느낀다. 여주인공의 활약이 이토록 시원하게 느껴지는 건 아직도 여성들이 억압받는 자리에 있다는 의미일 테다.

사실, 드라마 속 여성들도 그랬다. 이 드라마의 여성들은 연주 뿐 아니라 피해자로 상정된 미나(이하늬)와 악역을 맡은 성혜(진서연)까지 모두가 억압의 자리에 있었다. 가만 돌아보면 <원 더 우먼>의 이 세 여자는 숨막히는 환경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들이었다. 때로는 그 방법과 결과가 파괴적이긴 했지만 말이다.

<원 더 우먼>의 세 여자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서로 다른 길을 살펴본다(배우 이하늬는 드라마 속 연주와 미나를 연기했다).
 
강미나 : 속으론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원 더 우먼>의 강미나는 침묵과 인내 속에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간다.

<원 더 우먼>의 강미나는 침묵과 인내 속에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간다. ⓒ SBS

 
미나는 유민그룹 회장의 딸이지만, 혼외자라는 이유로 가족의 망신거리 취급을 당하며 자란다. 그러던 가족들은 또 다른 재벌인 한주그룹과 정략적으로 손을 잡기로 하고 그녀를 이용한다. 이에 미나는 한주그룹 한강식 회장의 아들 승욱(이상윤)과 연애를 하지만, 결혼 전 한강식 회장이 죽고, 동생 한영식(전국환)이 그룹을 차지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자 가족들은 승욱과 만나던 미나를 영식의 아들 성운(송원석)과 결혼시킨다. 그 후 시가에 혼외자임이 밝혀지고, 시가 식구들은 미나에게 막말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미나는 이처럼 철저하게 대상화되고 도구화된 인물이다. 한 사람으로 존중받기는커녕 가족의 부를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쓰인다. 이런 가운데 미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을 지키며 묵묵히 살아낸다. 아마도 이것만이 그녀에겐 유일한 생존의 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나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았다. 스스로를 지킬 계획들을 차근차근 세우고 있던 그녀는 마침내 계획한 그 날에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14회 승욱의 대사처럼 "속으론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강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재벌가에서 나와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 '지긋지긋한 인생 이제 끝이다. 지금과 완전히 다른 얼굴이기만 하면 돼.'(14회)라고 다짐하며 성형수술을 한다. 이름도 김은정으로 바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새 얼굴'과 '새 이름'으로 간 곳은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한성혜(한강식 회장의 딸) 전무의 비서 자리다.
 
아마도 미나는 복수하고 싶었을 것이다. 비서의 자리에서 교묘하게 성혜를 조정하며 통쾌함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그녀의 마음이 리셋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얼굴과 이름은 바꾸었지만, 마음속엔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가득했던 것이다. 때문에 완전히 시가를 떠나지 못하고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이는 14회 방송된 것처럼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린다. 해소되지 못한 미움과 분노는 그녀의 새로운 삶에 걸림돌이 되고 만다.
 
한성혜 : 자신과 타인 모두를 파괴하는 분노
 
 <원 더 우먼>의 한성혜는 자신을 도구화한 아버지의 그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며 자신의 야망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원 더 우먼>의 한성혜는 자신을 도구화한 아버지의 그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며 자신의 야망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 진서연

 
성혜는 극악무도한 악역으로 나온다. 이미지 관리를 위해 겉으로는 선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것을 지키고, 한주그룹을 차지하겠다는 야망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그녀에게 야망 외의 다른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생명도, 자신 곁을 지켜온 사람들과의 관계도 모두 권력과 부를 위한 도구로만 사용한다.
 
도대체 성혜는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나는 이 역시 그녀가 억압받고 도구화된 여성의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친 결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성혜의 방식은 결코 타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드라마 곳곳에 숨어 있는 성혜의 사연들은 그녀 역시 억압의 자리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음을 보여줬다.

성혜는 아마도 욕심이 많은 아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죽은 것으로 나오는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낀 둘째 딸은 재벌가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혜는 자신의 꿈과 야망을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 했을 것이다. 숱한 노력으로 그룹의 일부 계열사를 소유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계열사는 그룹 안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녀는 특유의 지략과 노력으로 한주패션과 호텔을 키워내지만 이마저 인정받지 못한다.

게다가 아버지 한영식 회장은 딸인 성혜의 안위보다 회장 자리가 더 중요한 인물이다. 14회 방송분에서는 한주패션 공장에 불이 났던 날의 사연이 나온다. 이 날 성혜는 당황한 채로 운전을 하다 연주의 할머니를 치고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아버지 한 회장이 묻는 것은 성혜의 안위가 아니라 형인 한강식 회장의 사망 여부였다. 이때 성혜는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자신은 아버지에게 결국 도구와 같은 존재였음을.
 
이에 성혜는 홀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더욱 강해지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라면 가족마저 철저하게 이용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란 그녀가 배운 건 역시 같은 방법뿐이다. 아버지를 싫어하지만, 결국엔 동일시해버린 성혜는 아버지가 했던 부도덕한 방식들로 자신을 지킨다. 잘못된 수단을 이용한 투쟁은 결국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파괴해 버린다.
 
조연주 : 분노와 복수에 용서를 더하다
 
 <원 더 우먼> 조연주는 복수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한다.

<원 더 우먼> 조연주는 복수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한다. ⓒ SBS

 
연주는 미나나 성혜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인물이다. 조직폭력배이자 전과자였던 아버지 명국(정인기) 때문에 연주는 늘 가난과 편견에 시달리며 성장한다. 그러던 중 연주를 키워준 할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한주패션 공장에 불이 났던 그 날, 의료진들이 화재 사고에 집중하는 사이 할머니는 이렇다 할 치료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연주는 절망하고 동시에 분노한다.
 
이 후 연주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분노, 할머니를 죽게 한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을 원동력 삼아 살아간다. 그녀는 권력과 맞설 힘을 갖기 위해 기를 쓰고 검사가 된다. 검사가 된 후에도 그녀는 오직 복수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고 전략적으로 움직인다. 때로는 그 전략이 윗선에 아부하고, 뇌물을 받는 것일지라도 감수해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지 않으면 상자 안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기억하며 결말에 가서 보여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한다(5회).

연주는 분노를 품고 있지만, 그 분노에 휩쓸리지 않고 전략적 사고를 유지한다. 이는 미움, 분노, 복수에 압도당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못했던 미나와 성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또한, 연주 곁에는 이런 연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유준(이원근)과 승욱이 늘 함께 했다. 특히, 승욱은 12회 아버지의 진실을 알고 혼란스러워하는 연주에게 "(그런 아버지) 정말 싫었겠다"며 공감해주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해 미움에 압도당하지 말라고 조언해준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과 고통과 분노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 덕에 미나는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분노와 복수는 파괴적이지 않을 수 있었다.

나약하지 않은 여성들

이처럼 <원 더 우먼>의 여자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이들은 대상화되고 도구화된 자리, 소외와 억압의 자리에서 빠져나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때로는 그 분노와 힘이 너무 강해 타인과 자신을 해치기도 했지만 결코 수동적인 상태에 머무르지만은 않았다. 
 
나는 현실의 여성들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누구든 자기 자신을  지켜낼 충분한 힘을 내면에 지니고 있다. 여전한 현실이 삶을 제약해 오더라도 결코 이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분노와 힘이 올바르게 사용되지 않는다면, 타인은 물론 자신도 파괴할 수 있음을 반드시 함께 기억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원 더 우먼>의 연주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진짜 모습을 잊지 않고, 사랑과 용서에 늘 마음을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분노에 압도당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자신을 지켜낸 힘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도 건강한 자원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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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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