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경남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경기. LG 이관희가 슛하고 있다.

25일 경남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경기. LG 이관희가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두 남자가 싸움 대신 농구로 자존심 대결을 펼치니 모처럼 멋진 명승부가 나왔다. 이정현(전주 KCC)과 이관희(창원 LG), 두 국내 선수들의 환상적인 쇼다운이 농구팬들을 즐겁게 했다. 2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1-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 경기에서 KCC가 치열한 접전 끝에 LG를 86-85로 꺾었다.
 
양팀 모두에게 흐름상 중요한 경기였다. 지난해 정규리그 우승팀 KCC는 송교창-정창영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중위권에 처지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지난해 꼴찌팀 LG는 대대적인 전력보강에도 불구하고 조직력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또다시 1라운드 최하위로 그친 상황이었다. 2라운드 첫 경기에서 누가 먼저 기선을 제압하느냐가 중요했다. 
 
특히 이날 승부에서 눈에 띈 것은 이정현과 이관희의 맞대결이었다. 두 선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경기 최다인 26점을 올리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이정현은 26점 2리바운드 2어시스트, 이관희는 26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이정현과 이관희는 농구계에서 유명한 앙숙관계다. 연세대 1년 선후배지간이자 상무 농구단에서도 선후임 사이로 오랫동안 함께 농구해온 관계지만 공개되지않은 개인적인 이유로 언제부터인가 만나기만 하는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됐다. 코트위에서 충돌한 것도 여러 번이고, 두 선수 모두 서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굳이 숨기지않는다.
 
사실 선수로서의 종합적인 커리어나 명성에서는 이정현이 크게 앞선다. 이정현은 리그 MVP에 우승 경력, 국가대표팀에서도 오랫동안 간판 슈터이자 주장까지 역임하며 명실상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대기만성의 이관희도 차근차근 성장을 거듭하며 어느덧 리그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지난 시즌 LG 이적 이후로는 한층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이며 팀의 에이스 반열에 오르고 FA 대박까지 터뜨렸다. 현재의 위상만 놓고보면 두 선수가 거의 대등한 수준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농구계나 언론에서는 그동안 이정현과 이관희를 '라이벌' 관계로서 조명하려는 시도가 종종 있었다.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고 끈끈한 한국 농구계의 특성상 이정현과 이관희처럼 대놓고 악연을 드러낸 사례가 드물다는 희소성, 여기에 비슷한 나이-신체조건, 같은 포지션에 이르기까지 경쟁구도를 부각시키기에 좋은 접점이 많았다.
 
하지만 두 선수의 관계는 사실 정상적인 라이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동안 이정현과 이관희의 맞대결을 돌아보면 주로 물리적인 충돌과 신경전에 초점이 맞춰졌을뿐 정작 가장 중요한 '농구'가 메인이 된 경우는 드물었다.
 
무리한 기싸움을 벌이다가 서로 나란히 페이스가 흔들리기 일쑤였고, 팀의 경기력에도 좋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양팀도 만약의 불상사를 우려하여 두 선수간의 매치업 상황을 의도적으로 피하기도 했다. 
 
올시즌에는 지난 10월 17일 열린 1라운드(KCC 71-63승)에서는 이정현이 무득점, 이관희가 7점에 그치며 두 선수 모두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 맞대결에서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두 선수 모두 이날만큼은 모처럼 진짜 라이벌이 된 느낌을 풍겼다.
 
 12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고양오리온-안양KGC인삼공사 경기. 오리온 이정현이 슛하고 있다. 2021.10.12

12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고양오리온-안양KGC인삼공사 경기. 오리온 이정현이 슛하고 있다. 2021.10.12 ⓒ 연합뉴스

 
이관희가 2쿼터에만 10점을 몰아넣는 폭발력을 선보이며 먼저 경기를 주도하자 이정현도 지지않고 후반들어 연이어 점수를 몰아치며 반격에 나섰다. 3쿼터에는 모처럼 두 선수가 매치업을 이루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두 선수는 서로가 서로의 수비를 뚫고 득점을 주고받으며 불타오르는 쇼다운이 연출되기도 했다.
 
물론 신경전이 이날도 없지는 않았다. 3쿼터 종료 5분을 넘기고 54-51로 앞선 KCC의 공격 상황에서 공을 받으러 다가가던 이정현을 수비하던 이관희가 밀어 넘어뜨렸다. 심판은 이관희의 파울을 지적했다. 이관희는 넘어진 이정현에게 천천히 다가갔지만 심판이 길목을 막자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바로 돌아섰다.
 
이때 다가온 KCC 김상규가 오히려 이관희를 어깨로 툭 밀쳤고 이관희는 김상규를 잠시 노려봤지만 다른 LG 선수들이 재빨리 제지하여 큰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정현과 이관희 역시 베테랑답게 그 이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다시 경기에 집중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관희는 4쿼터에는 이정현을 전담수비하지는 않았지만, 경기 종료 1분여를 남기고 이정현의 3점슛을 블록하며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치열했던 승부에서 마지막으로 웃은 쪽은 이번에도 KCC였다. KCC가 경기 종료 2초를 남기고 김지완의 골밑슛으로 86-85 역전에 성공했다. 그래도 KCC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던 승부는 1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이재도가 하프라인에서 급하기 던진 장거리 3점포가 백보드를 맞고 골망을 갈랐다.

LG는 극적인 역전승에 환호했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종료 신호가 울리고 나서 이재도의 손에서 공이 떠난 것이 확인됐다. 힘겹게 승리를 지켜내며 5할승률을 회복한 KCC(5승 5패)는 안도했고,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한 LG(2승 8패)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는 결국 이정현의 판정승으로 끝났지만, 이날은 두 선수 모두 우열을 가릴수 없을만큼 좋은 경기를 보여줬다. 두 선수가 맞붙었던 역대 경기중 명승부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만큼 이정현과 이관희 모두 팀의 에이스로서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쓸데없는 감정소모없이 오직 농구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많은 팬들이 두 선수에게 진정으로 기대했던 진짜 라이벌다운 모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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