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같은 여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이영애가 오랜만에 JTBC의 주말극 <구경이>로 돌아왔다.
 
 JTBC <구경이> 포스터

JTBC <구경이> 포스터 ⓒ JTBC

   
떡진 머리의 게임 덕후 이영애 

그런데 언제나 정갈한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던 익숙한 모습이 아니다. 도무지 언제 감았는지 모를 떡진 머리에, 게임용 헤드폰을 쓰고 걷기가 힘들 정도로 앉아서 게임을 하는 '폐인'의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살 이유가 없다'며 쓰레기차로 몸을 던지고, 언제 '폐인'이었냐 싶게 앉아서 천리를 보듯 미해결 사건의 열쇠를 척척 풀어낸다. 알록달록한 바지, 늘어진 흰티, 거기에 대충 걸친 트렌치코트,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풀어내는 추리의 대사는 아직 어색하지만, 예쁘거나 젊은 것이 관건이 아닌 캐릭터로 돌아온 이 배우의 모습이 반갑다. 

하지만 반가운 건 오랜만에 신선한 시도로 돌아온 이영애 만이 아니다. '오타쿠' 냄새를 풀풀 풍기며 게임에 몰두하는 주인공 구경이와 또 다른 인물 케이(김혜준 분)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며 실험에 몰두하는 모습을 대비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구경이>는 B급 장르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일찍이 <얼럴뚱땅 흥신소> <추리의 여왕> 등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B급 스릴러가 가지는 엉뚱하고 기발한 캐릭터와 설정들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근무하던 학교에서 한 학생이 자살을 하고, 그 학생과의 관계를 의심받던 남편까지 자살을 선택했다. 이 일로 경찰직을 내던지고 이제는 간간이 의뢰받는 보험 조사일이나 하며 살아가는 비극의 주인공인 구경이는 심각하기보다 엉뚱하다. '빼갈'에 티백을 담근 블랜디 맛을 즐기고, 의심병을 치료한다며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그런 그가 후배인 보험조사 팀장 나제희(곽선영 분)의 의뢰를 받아 통영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보험 사기 사건을 조사하던 구경이는 사건의 당사자가 죽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구경이 말 그대로 '사이즈'가 큰 사건의 시작이었다. 어수룩해 보이지만 예리한 탐정 구경이의 촉 그대로, 통영 바닷가의 한 배에서 있었던 회식 장소에서 벌어진 사건 당사자들의 집단 사망 사건이었다. 그 배후에는 죽을 죄를 지은 이들을 그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죽이는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JTBC <구경이> 포스터

JTBC <구경이> 포스터 ⓒ JTBC

 
탐정과 사이코패스, 그리고 심상찮은 주변 인물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킹덤>에서 자신의 보위를 위해서라면 남을 희생시키는 걸 주저하지 않았던 왕비 역할로 눈길을 모았던 김혜준은 <구경이>에서 죽이는 기쁨을 즐기는 사이코패스로 분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누군가가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을 대신 죽여주던 그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기꺼이 완전 범죄를 기획한다. 이번에도 통영까지 내려가 억울하게 죽은 젊은이 대신, 그들의 죽음을 방조한 이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신이 나서 돌아온다. 

구경이와 케이는 2회 마지막 장면에서야 드디어 조우한다. 드라마는 탁월한 감과 수사 능력을 가졌지만 보기엔 어쩐지 사회부적응자같은 구경이와 "심심해, 사람 죽이고 싶다"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사이코패스 케이의 대결을 축으로 한다. 

탐정과 사이코패스의 대결에 <구경이>는 흥미롭지만 모호한 캐릭터들로 재미를 더한다. 배우 김혜숙은 산속에서 홀로 막걸리잔을 기울이더니, 구경이를 납치해 허름한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수사를 의뢰하는 용숙으로 등장했다. 김혜숙이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심상찮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살인범을 잡고 싶다는데 과연 그의 진심은 무얼까. 

그런가 하면,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준완(정경호 분)의 마음을 애태우면서도 엉뚱한 매력을 뽐내던 익순 역할의 곽선영도 기대가 된다. ​구경이의 후배 나제희 캐릭터는 그저 조력자라고 하기에는 존재감이 만만치 않기 때문. 거기에 넷플릭스 < D. P >를 통해 대중에게 한 발 다가선 조현철이나 OCN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경이로운 소문>의 수혜자 이홍내 등 출연진의 면면 만으로도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이영애, 김혜숙, 곽선영, 조현철, 이홍내 등 이 신선한 조합을 끌어모은 이는 드라마 <조작> <아무도 모른다>를 연출함 이정흠 PD다. <아무다 모른다>를 통해 김서형의 또 다른 매력을 한껏 발산시켰던 그는 전작과는 180도 다른 슬랩스틱 코미디에, ​연극의 한 장면같은 실험적인 연출까지 마다하지 않는 <구경이>로 돌아왔다. 

물론 <구경이>가 시청률마저 담보된 대중적인 스릴러일 거라는 예측은 못하겠다. 하지만 모처럼 제작진의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B급 스릴러의 귀환이란 사실만으로도 반갑다. 부디 순항하여, 떡진 머리 탐정 이영애의 다음 시즌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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