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 <전우치>를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흥행 감독으로 떠오른 최동훈 감독의 신작 제작 소식이 영화 팬들을 들뜨게 했다. 검증된 흥행 감독의 신작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대치를 높이기 충분했지만 무엇보다 대단했던 것은 바로 '역대급' 캐스팅이었다. 실제로 최동훈 감독의 신작 <도둑들>에는 김윤석과 김혜수, 전지현, 이정재, 김해숙, 오달수, 김수현에 홍콩배우 임달화까지 스타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2012년 7월에 개봉한 <도둑들>은 전국 129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이는 당시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괴물>(1301만 명)에 육박하는 기록이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해 흥미로운 이야기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해 준 <도둑들>이 관객들을 만족시킨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도둑들>은 많은 관객들로부터 이 영화와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도둑들>의 각본과 연출을 모두 담당한 최동훈 감독 역시 <도둑들>이 이 영화를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바로 지난 2001년 할리우드의 스타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라스베이거스의 대형 카지노 금고의 돈을 훔치는 영화였던 마이크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이다.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오션스 일레븐>은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61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오션스 일레븐>은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61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만26세에 칸 영화제 정복한 천재감독

2006년 <괴물>로 한국영화 역대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봉준호 감독은 2013년 무려 57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고 크리스 에반스와 틸다 스윈튼, 에드 해리스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출연한 <설국열차>를 연출했다. 당시만 해도 봉준호 감독이 '한국형 블록버스터 감독'이라고 오해하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지만 봉준호 감독은 2019년 <기생충>을 통해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를 휩쓴 거장이 됐다.

<오션스> 시리즈 3편을 모두 연출한 소더버그 감독 역시 그를 잘 모르는 일부 대중들에게는 평범한 상업영화 감독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소더버그 감독은 1989년 장편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천재감독이다. 소더버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의 나이는 고작 만26세로 이는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역대 최연소 수상 기록이다.

이후 <카프카>와 <리틀킹>, <조지 클루니의 표적>등을 연출한 소더버그 감독은 2000년 <에린 브로코비치>와 <트래픽>으로 동시에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트래픽>으로 감독상 수상). 그리고 소더버그 감독은 2001년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줄리아 로버츠 등 할리우드 당대 최고의 스타 배우들을 캐스팅해 신작 <오션스 일레븐>을 선보였다.

1960년에 개봉했던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오션스 일레븐>은 다소 엉성했던 원작과 달리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연기, 소더버그 감독의 치밀한 연출이 맞물리며 크게 성공했다. 실제로 8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오션스 일레븐>은 세계적으로 4억5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3부작으로 만들어진 <오션스> 시리즈는 총 11억2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다.

<오션스> 시리즈를 끝낸 소더버그 감독은 2008년 <체 게바라>를 연출했고 2011년에는 코로나19로 재조명 받은 영화 <컨테이젼>, 2016년에는 경쾌한 범죄액션 코미디 <로건 럭키>를 선보였다. 저예산 인디영화부터 상업영화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소더버그 감독은 작년 미국감독조합의 특별위원회 수장이 됐고 지난 4월에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연출하기도 했다.

<도둑들> 모티브가 되다
 
 <오션스 일레븐>은 할리우드 최고의 섹시가이 브래드 피트(왼쪽)와 조지 클루니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오션스 일레븐>은 할리우드 최고의 섹시가이 브래드 피트(왼쪽)와 조지 클루니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범죄영화 중에서 무언가를 훔치거나 강탈하는 내용을 다룬 영화를 '하이스트 필름' 또는 '케이퍼 무비'라고 부른다. <오션스> 시리즈와 <분노의 질주> 시리즈, <나우 유 씨 미> 시리즈가 하이스트 필름의 대표적인 시리즈물이고 단일영화로는 <유주얼 서스펙트>,<이탈리안 잡>,<인셉션> 등이 있다. 한국 영화 중에서는 <범죄의 재구성>과 <도둑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을 하이스트 필름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감옥에서 출소한 대니얼 오션(조지 클루니 분)은 카지노 딜러 프랭크(버니 맥 분)를 시작으로 오랜 친구 러스티(브래드 피트 분), 폭발물 전문가 배셔(돈 치들 분), 친구의 아들이자 소매치기 라이너스(맷 데이먼 분) 등 각 분야의 전문가 10명을 차례로 영입한다. 그렇게 모인 11명의 집단이 가진 목적은 1억6000만 달러가 보관된 라스베이거스의 부호 베네딕트(앤디 가르시아 분)가 소유한 카지노 금고를 터는 것이다.

오션이 멤버들을 모아 철저히 사전조사와 예행연습을 하고 현장에서 이를 그대로 실행에 옮겨 금고의 돈을 훔치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통쾌하다.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에서 각각의 캐릭터가 욕심을 부리면서 중간에 팀이 와해되는 것과 달리 <오션스 일레븐>의 멤버들은 '금고털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한다. 특히 오션과 러스티는 라이너스에게 새 임무를 주기 위해 위장으로 싸우기도 한다.

일개 소매치기임에도 오션이 아버지와 친분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오션스의 11번째 멤버가 된 라이너스는 노련하고 담대한 선배들에 비해 경험이 부족하고 일 처리도 서툰 편이다. 라스베이거스를 일시적으로 정전시킬 '핀치'를 훔칠 때도 오션의 말을 듣지 않고 단독행동을 하다가 멤버들을 위협에 빠트릴 뻔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실전에서는 네바다주 도박위원회의 셀던 윌리스로 변신해 베네딕트를 완벽히 속였다.

기존 멤버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가세한 <오션스 트웰브>, 그녀가 빠진 자리에 앤디 가르시아와 에디 아자드가 투입된 <오션스 서틴>을 흥행시킨 소더버그 감독은 2018년 여성 멤버들이 주축이 된 <오션스8>을 제작했다. 산드라 블록과 케이트 블란쳇, 앤 해서웨이 등 남자들의 <오션스> 시리즈 못지않게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오션스8>은 7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2억9700만 달러의 쏠쏠한 흥행성적을 남겼다.

소더버그 감독 위해 조연 자처한 줄리아 로버츠
 
 전작에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줄리아 로버츠는 <오션스 일레븐>에서 냉미녀 역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전작에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줄리아 로버츠는 <오션스 일레븐>에서 냉미녀 역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줄리아 로버츠는 90년대 후반부터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으로 2억9900만 달러, <노팅 힐>로 3억6300만 달러(이상 세계흥행 기준), <에린 브로코비치>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제2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 줄리아 로버츠에게 <오션스 일레븐>의 테스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줄리아 로버츠는 자신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에린 브로코비치>를 만든 소더버그 감독의 차기작을 외면하지 않았다.

<오션스 일레븐>에서 주인공 오션의 전부인이자 악역 베네딕트의 현 여자친구 테스를 연기한 줄리아 로버츠는 잦은 수감생활을 하는 오션을 원망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오션의 작전에 동참한다. 특히 88번 채널을 통해 베네딕트가 사랑 대신 돈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자신을 붙잡는 베네딕트에게 "당신 호텔엔 늘 당신을 지켜보는 눈이 있어요"라는 뼈 있는 말을 던진 후 그를 떠난다.

<언터처블>과 <대부3> 등에 출연하며 주목 받은 앤디 가르시아는 1994년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맥 라이언과 애틋한 멜로 연기를 펼치며 많은 여성 팬들을 설레게 했다. <남자가 사랑할 때>로 앤디 가르시아를 기억하는 관객들은 그가 <오션스 일레븐>에서 '악의 축' 테리 베네딕트로 나왔을 때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앤디 가르시아는 경험 많은 베테랑 배우답게 <오션스 일레븐>의 빌런 연기를 무난하게 소화했다.

<오션스 일레븐>에서 오션의 일당들에게 호되게 당한 베네딕트는 <오션스 트웰브>에서 멤버들에게 2주 안으로 돈을 모두 갚으라고 통보하며 빌런의 역할을 이어간다. 하지만 윌리 뱅크(알 파치노 분)라는 새로운 빌런이 등장한 <오션스 서틴>에서는 멤버들의 투자자 역할을 하며 새로운 멤버로 합류한다. 비록 자신의 몫이 오션에 의해 고아원에 기부되지만 베네딕트는 이를 계기로 오프라 윈프리쇼에 출연하며 졸지에 '기부천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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