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하얀 종이 위에 적힌 검은 글씨로 세상을 이해한다. 삼풍백화점 붕괴, 502명 사망. 성수대교 붕괴, 32명 사망. 대구지하철 화재, 192명 사망. 천안함 침몰, 46명 사망. 세월호 침몰, 304명 사망. 제천스포츠센터 화재, 29명 사망. 이런 식이다.

글씨로 받아들인 참사는 그저 사건이며 피해일 뿐이다. 비극은 글씨로 읽히는 피해 뒤에 있다. 그 각각의 죽음이 가져온 상실과 남겨진 자들이 겪는 삶의 변화가 진정한 비극이다. 그 비극을 들여다봐야만 우리는 이들 사건이 가져온 고통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글씨 너머에 있는 삶을 비로소 들여다볼 수 있다.
 
맛있는 저녁식사 스틸컷

▲ 맛있는 저녁식사 스틸컷 ⓒ GIFF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 일깨운다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 '프리미어 기프' 부문으로 소개된 <맛있는 저녁식사>는 참사로 빼앗긴 것이 진실로 어떠한 것인지를 관객 앞에 내보이는 영화다. 비록 단순할지라도, 모두가 알고 있다고 믿을지라도, 눈으로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다름을 알게 하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어느 날 아침에 시작한다. 악몽을 꾸고 일어난 엄마를 딸이 불러 깨운다. 등교하는 아이는 엄마에게 제가 먹고 싶은 것을 말한다. 손도 많이 가는 갈비찜이 그렇게도 먹고 싶다고 웃으며 애교를 핀다.

엄마는 못 이기는 척 준비해놓겠다고 말한다. 딸에게 걸려온 전화도 받지 못하고 종일 열심히 일하고는 가게 문을 일찍 닫는다. 빨리 가서 딸에게 갈비찜을 해줘야 하니까, 장을 보고 요리까지 하려면 시간이 촉박해서다.
 
맛있는 저녁식사 스틸컷

▲ 맛있는 저녁식사 스틸컷 ⓒ GIFF

 
행복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영화는 행복한 가족의 하루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짚는다. 예고 없이 차에 치이듯, 아무런 준비 없이 박살나버린 가족들이 있음을 일깨운다. 무심하게도 7년이나 훌쩍 흘러버린 세월호 침몰참사의 유가족들이, 위에 언급한 수많은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이 사라진 가족과 친구와 이웃의 빈자리를 끌어안고 통곡하고 있다. 그 모든 슬픔 뒤에서 그들을 마음껏 슬퍼하게 조차 해주지 못하는 사회가 우뚝 서 있다. 7년 동안 이뤄진 진상조사는, 수많은 음해와 훼방은 돌아보기조차 민망한 흔적을 새겼다.

<맛있는 저녁식사> 속 엄마는 울음을 삼키며 말한다. 수학여행을 가는 날 아침, 먹고 싶은 밥이라도 든든히 먹여 보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비통한 목소리로 말한다. 돌잡이 때 새 명주실을 사서 올렸어야 했을 것을, 헌 실을 올려 이렇게 되었나 하고. 애끓는 호흡으로 말한다. 젊을 적에 너를 낳아 한 달이라도 더 품고 세상에 놓았다면, 그리하여 사주라도 바꿀 수 있었다면 달랐을까 하고. 그 후회와 슬픔과 자책을 이 사회는 어떻게 달랠 수 있다는 말인가.

영화의 끝에서 관객은 마주한다. 이들이 정말로 잃어버린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피부로 느끼고야 마는 것이다. 하하호호 웃던 행복한 밥상이, 귀여운 딸아이를 보기 위해 서둘러 퇴근하는 아버지의 즐거움이, 만면에 웃음꽃 피우던 엄마의 얼굴이, 그 모든 일상이 완전히 사라진 텅 빈 집으로 영화는 관객을 데려다 놓는다. 바로 그때 느끼게 되는 감상이야말로 검은 글씨 뒤에 놓인 진짜 삶이다.
 
맛있는 저녁식사 스틸컷

▲ 맛있는 저녁식사 스틸컷 ⓒ GIFF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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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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