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비극이야 예술의 오랜 소재다. 고향으로부터 멀리 끌려나와 제 삶과는 별반 관련이 없는 싸움을 벌이는 일 아닌가. 끌려나와 죽는 남자들도, 그들을 기다리는 여자들도, 그 어딘가에서 삶이 뭉개지고 마는 수많은 사람들도 모두 피해자다. 어느 소수의 이익을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을 겪는 전쟁이야말로 지성을 가진 인간이 몰아내야 할 적이 분명하다.

인류가 잊지 못하는 큰 전쟁 몇이 있다. 개중에서도 2차 대전은 역사 위에 손꼽히는 비극을 썼다. 나치 독일의 동부전선, 독일과 소련이 맞닿는 땅에선 무고한 이들이 총탄과 포탄에, 굶주림과 질병에, 추위와 가난에 고통 받았다. 인간이길 포기한 인간이 너무나도 많았고 인간성을 빼앗긴 인간도 몹시 많았다.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 <내츄럴 라이트>가 그리고자 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내츄럴 라이트 스틸컷

▲ 내츄럴 라이트 스틸컷 ⓒ GIFF

 
끼여 있는 자들의 비극

영화는 전쟁 속 끼인 자들의 비극을 그린다. 나치 독일이 소련과 맞서는 동부전선엔 두 나라보다 약한 군소 국가가 여럿 있다. 서쪽에서부터 헝가리와 루마니아, 우크라이나로 이어지는 국가들도 그중 하나다. 독일이 소련으로 진군하기 위해선 이들 나라를 거쳐 가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폴란드를 거치는 길보다 남쪽이라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농업 생산량도 많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를 압박해 소련을 향해 총칼을 대도록 하면 서부전선에 집중된 전력을 크게 나누지 않아도 되니 일석이조다.

이들 나라에겐 그게 비극이 된다. 당장 강성한 독일에 협력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헝가리는 적극적으로 군대를 조직해 소련에 대응한다. 독일이 밀지도, 소련이 밀리지도 않는 상황에서 전장은 곧 제 나라, 제 민족일 때도 있다. 독일은 주민들이 파르티잔과 내통할 걸 의심하고, 파르티잔은 독일군과의 내통을 의심한다. 오늘은 이쪽, 내일은 저쪽이 점령하는 전장에서 주민들의 운명이란 서풍과 동풍 사이 선 촛불 같은 것이다.

끼여 있는 건 나라와 영토, 주민들만이 아니다. 참전한 병사들 역시 전시 군대라는 조직과 인간의 도덕성 사이에 끼인 운명이다. 징집된 헝가리인 농부 이스트반 세메트카는 수색부대 상병으로 복무 중이다. 그의 부대가 얼마 전까지 파르티잔이 머물렀던 한 마을에 들어서며 펼쳐지는 이야기가 곧 <내츄럴 라이트>가 다루는 것이다.

오늘은 이쪽 내일은 저쪽 군대에 점령되는 마을 사람들은 어느 쪽과도 친해질 수 없다. 군대는 가축을 끌고 가고 먹을 걸 털어가며 사람들을 위협한다. 그 참혹한 폭력 앞에서 주민들은 그저 무력할 뿐이다.
 
내츄럴 라이트 스틸컷

▲ 내츄럴 라이트 스틸컷 ⓒ GIFF

 
어제의 농부가 오늘의 학살자가 되는 비극

저 스스로도 농부였던 세메트카라고 해서 다를 수 없다. 상급자들의 지시를 세메트카는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사정을 두는 것뿐이다. 빼앗고 가두고 짐승처럼 대하면서 물 한 동이 떠다주는 정도가 고작인 것이다. 누군가 이들을 데려다 때리고 강간하고 죽일지라도 대항할 수 없다. 심지어 그것이 잘못인지도 확신할 수 없는 게 전시 군인의 일이 아닌가. 세메트카는 결국 무엇도 하지 못한다.

그가 몰래 숨은 어느 사내를 보고하지 않고 못 본 척한 날이 있다. 그리고 얼마 뒤 진군하던 그의 부대가 파르티잔 매복대에게 습격을 받아 피해를 입는다. 여러 병사가 사망하고 다친다. 몰래 숨은 이를 보고하지 않아서, 그리하여 그와 그를 숨긴 이들을 살려주어서, 그의 부대가 진군에 실패하고 부대원이 죽고 다친다. 세메트카는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무엇은 범죄이고 무엇은 전쟁인지 관객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마을 사람들의 것을 빼앗고 그들을 고문하고, 강간하고, 마침내 불태워 죽이는 것은 범죄다. 그러나 그들을 그대로 살게 하여 파르티잔을 돕도록 놓아두는 것은 제 부대에 대한 반역이다. 세메트카의 혼란과 상급자의 결정 사이에서 관객들은 그저 무력해질 뿐이다.

활활 불타는 헛간의 붉음은 비극 뒤 2주간 휴가를 얻어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길에 본 석양의 붉음과 기묘하게 대비된다. 전자는 인간이 피운 불길이며 후자는 자연이 태운 빛깔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두 빛 사이에서 인간은 스스로가 얼마나 무력하고 폭력적인 존재인지를 깨달을 수밖에 없다. '내츄럴 라이트'가 일깨우는 것, 그건 곧 인간의 하찮음이다.
 
내츄럴 라이트 스틸컷

▲ 내츄럴 라이트 스틸컷 ⓒ GIFF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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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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