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KBS 2TV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 KBS

 
왕따, 폭력, 학대 등은 결코 인간들의 세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같은 주인을 섬기는 동거견임에도 친구에게 학대를 당하여 마음의 상처를 입은 피해견의 이야기가 유난히 시청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25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개는 훌륭하다>에서는 이기적이고 난폭한 '시베리아 허스키' 루나와, 그로 인하여 고통받는 '알래스칸 맬러뮤트' 써니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엄마 보호자는 대형견을 키우고 싶어했던 남편의 생각으로 루나와 써니를 분양받아왔다고 밝혔다.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보호자 가족은 뒷마당에 넓은 반려견 운동장까지 소유하고 있어서 여러 대형견들을 키우기에도 적합한 환경이었다. 보호자는 매일 2시간씩 반려견들과 놀아주고 산책도 시키며 애정을 쏟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보호자는 루나의 과도한 식탐에 대하여 고민을 드러냈다. 루나는 식탐이 지나치게 강하여 보호자가 먹고있는 음식까지 욕심을 내는가 하면, 물건에 대한 집착도 강해서 만류하는 보호자를 깨물기도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동거견을 향한 폭력성이었다. 루나는 써니를 발견하자마자 달려들며 공격하고 물어버리기 일쑤였다. 보호자는 목덜미를 물린 써니가 누워서 소변을 흘리거나 배를 뒤집어까면 그제서야 루나가 의기양양해하며 뒤돌아서 가버린다고 밝혔다.
 
보호자는 넓은 마당에서는 같이 놀게 하지만 집안에서는 써니의 안전을 위해 펜스로 분리하여 두 반려견을 떨어뜨려놓는다고 설명했다. 8개월째 루나가 넓은 거실을 독점할 동안, 펜스를 사이에 두고 좁은 부엌이 써니의 공간이었다. 보호자가 써니에게 간식을 주려할 때 펜스를 사이에 두고 있음에도 루나가 다가오자 화들짝 놀라 도망가버렸다. 보호자와 루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부엌 한구석에서 주눅든 채 숨어있는 써니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보호자는 "처음 입질이 시작됐을 때 대처를 잘했더라면 이렇게 나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강아지를 처음 데려왔을 때는 예뻐만 해주면 되는줄 알았다. 그게 미안하고 후회된다"며 자신의 잘못을 자책했다.
 
 KBS 2TV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KBS 2TV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 KBS

 
지켜보던 강형욱 훈련사는 "개와 사람이 처음 만날 때부터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사람 손에 있는 음식은 뺏지않는 것"이라며 "루나가 보호자의 음식을 뺏은 것은 인간과의 개의 약속을 위배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경규와 장도연, 세븐틴 에스쿱스와 승관이 먼저 보호자와 고민견을 만났다. 루나의 식탐과 입질은 간단한 제어 훈련만으로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경규는 상상을 초월한 '밥상들어 밀기'와 '손바닥으로 밀기' 스킬을 선보이며 폭소를 자아냈지만, 의외로 루나를 통제하는 데 성공하며 강형욱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써니가 등장하자 상황이 반전됐다. 루나는 써니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거칠게 공격했다. 보호자와 에스쿱스가 황급히 루나를 떼어놓았지만 공포에 질린 써니가 도망가려고 닫혀있는 펜스에 매달리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짠하게 했다.

현장에 도착한 강형욱은 보호자에게 "공격을 한 것은 루나인데 오히려 피해를 입은 써니를 분리하고 루나를 보호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형욱은 공무원을 예로 들며 "내 반려견들을 중립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볼 때가 있어야한다. 보호자님은 반려견의 잘못을 단호하게 지적하지 못하고 합의를 해준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호자는 "루나와 써니의 위치를 바꿔보기도 했지만, 루나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긁고 짖어댔다. 루나가 잘못될까봐 걱정이 돼서 마음이 약해졌다"고 변명했다. 보호자의 우유부단함이 결국 피해를 입고도 감정표현에 소극적인 써니에게 더 큰 상처를 지속적으로 주는 2차 가해로 이어진 것이다.
 
강형욱은 "써니의 무던함에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하며 "그럴거면 한 마리만 키워야 한다"고 꼬집었다. 강형욱은 "그래도 어울려 함께 살고싶다면 해결해야할 것이 있다. 바로 보호자와 루나의 관계다"라고 지적하며 "지금은 써니를 공격하지만 나중에는 확장되어서 보호자를 공격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야외에서 루나와 써니의 관계개선 훈련이 진행됐다. 써니는 루나를 보자마자 배를 드러내고 누우며 마치 폭군을 만난 신하와 같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강형욱은 이를 두고 "보호자의 자식으로 비유해보자. 이 모습은 동생이 형에게 제발 때리지 말라고 손을 싹싹 비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마음이 아프다"며 민망해 하는 보호자에게 강형욱은 "진짜 엄마라면 마음이 아픈 걸 넘어서 동생을 때리는 자식을 따끔하게 혼냈을 것이다. 방치해선 안 된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강형욱은 "지금은 루나가 이 집을 지배하고 있는 게 티가 난다. 보호자가 혼내거나 때릴 필요는 없다. 그저 간단한 규칙을 정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형욱은 루나의 목줄을 잡고 보호자에게 써니를 돌보게 했다. 루나가 반응을 보이며 써니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마다 바로 목줄을 강하게 잡아끌며 번번이 제지했다.

이어 강형욱은 루나의 목줄을 잠시 놓아줬다. 자유로워진 루나가 써니에게 접근하자 강형욱은 몸으로 루나의 동선을 저지했다. 강형욱은 루나와 같이 소리를 내며 루나의 공격성을 통제했다. 강형욱은 보호자에게도 같은 행동을 주문했다. "루나가 써니를 위협할 때 보호자님은 억장이 무너져야한다"며 책임감을 주문했다.
 
루나보다 더 큰 진짜 문제는 바로 써니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박혀버린 트라우마였다. 루나에 대한 훈련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정작 써니는 여전히 루나에게 겁먹고 일어서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집안에서 이어진 훈련에서 강형욱은 써니가 겁을 먹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도 두 반려견의 공존을 위하여 단계별로 펜스를 걷어내고 차근차근 거리감을 좁히는 훈련을 이어갔다. 마지막 펜스가 사라지자 구석에 숨어서 일어서지 못하고 두려움에 떠는 써니의 모습을 보면서 보호자는 억장이 무너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써니를 지켜주지 못했나. 믿음직한 보호자가 아니었다"고 반성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형욱은 "써니의 상처를 회복하는 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보호자는 루나를 펜스안에 격리하고 써니를 꼭 보듬어안으며 위로했다. 강형욱은 "루나의 행동 변화는 써니와는 큰 상관이 없다. 써니에게는 루나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가 강하다"고 분석했다. 강형욱은 "써니는 현재 정신과 육체가 (루나에게) 지배된 상태다. 지금은 써니가 다른 개들의 친화 과정을 겪으며 정상적인 반려견 수준으로 회복된 후 그 다음에 루나를 만나게 하는 게 순서다. 써니를 생각하면 지금은 분리가 먼저다"고 진단했다.
 
출연자들도 숙연한 반응을 보였다. 이경규는 "<개훌륭>을 하면서 저런 개는 처음 본다"며 안타까워 했고 강형욱도 동의하며 "공격성은 누르면 되지만, 마음이 무너진 개는 끌어올리는 게 훨씬 힘들다"고 밝혔다.
 
 KBS 2TV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KBS 2TV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 KBS

 
강형욱은 보호자에게 "루나와 써니가 같이 있으면 회복이 어렵다. 야외 견사를 두고 각각의 공간에서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게 하시라"고 조언했다. 이어 "중요한 건 써니가 더 많이 집에 있어야 한다. 마음대로 사랑을 받을 수 있게 하시라"고 덧붙였다. 촬영 이후 다행히 루나와 써니의 관계는 많이 개선이 됐고 이제 가끔은 써니가 루나 앞에서 장난치는 모습도 나오며 시청자들을 안도하게 했다.
 
많은 견주들이 '반려견을 소중한 가족이자 자식'이라고 언급한다. 하지만 내 자식이 학교에서 누군가를 때리고 다닌다거나, 혹은 누군가 괴롭힘을 당했을 때 진짜 부모라면 절대로 방치하지 않는다. 아마 누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육을 시키거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하여 노력했을 것이다.
 
루나와 써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곧 우리 인간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가정폭력-학교폭력 문제와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루나를 잔인한 가해자로 만든 것도, 써니를 상처입은 가해자로 만든 것은 모두 올바른 사회적 규칙과 기준을 가르치지 못한 인간들의 책임이었다.
 
인간으로 치면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를 계속 한 공간에 두고 방치해온 것이나 다를 게 없었다. 사람은 말을 할 수 있고 피해를 받으면 법이나 타인에 호소할 수라도 있지만, 말 못하는 반려견의 외로운 고통은 누구도 알아줄 수 없었다고 생각하면 더욱 숙연해진다. 지금 우리 시대의 수많은 애견인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반려견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의 의미와 책임감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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