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너는 뭐가 되고 싶니?"

많은 이들이 자라면서 수없이 들어온 질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체로 직업명으로 답한다. 의사, 교사, 판사, 피아니스트, 가수, 경찰 등. 질문을 받았던 당시 어린 마음에 쏙 들어와 있던 직업들은 종종 '내가 되고 싶은 것'으로 간직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호기롭게 명명했던 이 직업들은 삶에서 하나 둘 사라져간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런 게 어른이 되는 것이라며 위안하면서도 종종 씁쓸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지난 24일 종영한 JTBC <인간실격>은 되고 싶은 것이 사라진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였다. 드라마의 주인공 부정(전도연)과 강재(류준열)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절망감에 빠진 채 등장한다. 하지만, 드라마 말미 이들은 '무엇이 되는 것' 보다는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고 스스로를 수용해 낸다. 이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를 되짚어 본다.
  
 <인간실격>은 절망에 빠진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자격'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인간실격>은 절망에 빠진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자격'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 JTBC

 
무엇이 되고 싶은 욕망
 
"아버지 나는 아무것도 못됐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못됐어. 결국 아무것도 못될 것 같아요." (1회, 부정)

"아버지. 저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2회, 강재)

 
드라마 초반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 내린 부정과 강재는 줄곧 절망과 슬픔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드라마의 쓸쓸한 분위기, 느린 화면, 낮게 깔리는 음악 등은 이들의 공허한 마음을 그대로 전달해주곤 했다. 도대체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것은 왜 이토록 이들을 아니 우리를 절망스럽게 하는 걸까?
 
나는 이것이 스스로를 개념화하는 방식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언어로 표현하고서야 그 정체가 명확해진다고 느낀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는 모호하게 느껴지고 이는 불안을 유발한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다. 스스로를 어떤 직업이나 역할로 규정지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고, 무엇이 되었다고 느낀다. 스스로를 '나는 교사다', '나는 상담사다', '나는 엄마다' 등으로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명확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숱하게 받아온 바로 그 질문, "너는 뭐가 되고 싶니?"는 바로 이렇게 나를 규정짓게하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 속에 자라온 우리들은 특정한 직업이나 역할로 스스로를 명명할 수 없을 때 자기 자신이 사라져버린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경우, 이 질문은 '남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즉, 내가 되고 싶은 그 무엇이 남보다 나은 것이라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설령 무엇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남보다 못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여전히 공허함을 느낀다.
 
드라마 속 강재와 부정의 절망감은 이렇게 나를 남보다 나은 존재로 규정짓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부정은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아버지한테도 보여주고 싶고 남편한테도 보여주고 싶고 나한테도 보여주고 싶었어요(11회)"라고 말한다. 강재도 "나는 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잘 모르는 사람들과 경쟁하고 싶지 않아요. 질게 뻔하니까요(12회)"라고 고백한다. 이 말 속엔 '무엇인가 되는 것'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부정은 그렇지 못해 절망에 빠졌고, 강재는 인정받지 못할까봐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경험과 느낌을 수용한다는 것
  
 강재와 부정은 자신들의 경험과 느낌, 욕망에 솔직해진다.

강재와 부정은 자신들의 경험과 느낌, 욕망에 솔직해진다. ⓒ JTBC

 
이런 강재와 부정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공허함과 절망감을 있는 그대로 털어 놓는다. "나도 그랬어요"라고 말해주는 서로에게서 이들은 이런 감정들을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받는다. 또한,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살아갈 만하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에게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 끝내 무엇이 되지 못한다 해도 지금의 나에게 솔직한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재, 15회)
 
"나는 이제야 아버지가 제게 세상에 태어나 무엇이 되는 것보다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내내 눈으로 몸으로 삶으로 얘기해왔었다는 걸 아주 조금씩 천천히 깨달아가고 있어요." (부정, 16회)

 
무엇이 될까 고민하는 것보다 지금 여기서 내가 경험하는 것에 충실한 것이 더 진정한 삶에 가깝다는 깨달음이었다.
 
이는 저명한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이야기한 경험에 개방적인 사람의 모습이었다. 로저스는 스스로를 규정한 개념에 가두지 않고, 경험하고 느끼고 욕망하는 모든 것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보다 온전한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 부정과 강재의 표정은 살아나고,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말투도 부드러워진다.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일상을 보다 가볍게 살아낸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행동
 
하지만, 사람은 경험되는 느낌, 욕망, 충동에 이끌려서만은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매 순간 우리는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때로는 기괴하거나 파괴적인 욕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모두 나의 일부이고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충동과 욕구에 따라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구조화되고 제도화된 사회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우리는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맞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내면의 경험과 감정은 수용하되 그 표현과 실천은 사회적으로 적절한 방식으로 행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 
 
로저스는 저서 <칼 로저스의 사람중심 상담>에서 이를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한 바 있다.
 
나는 모든 감정들, 생각들, 충동들을 자신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 모든 것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아도, 그것들을 모두 받아들일 때 나는 더욱 진실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더욱 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16회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부정이 남편 정수(박병은)와 나눈 대화는 로저스가 말한 '상황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잘 보여주었다. 부정은 정수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고백하고, 정수는 그 사람에게도 말했냐고 묻는다. 이에 부정은 이렇게 답한다.
 
"말 안 했어, 말 안 할 거고. 그래서 (당신도) 나한테 말한 거잖아. 그 사람한테 말할 수 없으니까. 말하면 망가지니까. 둘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게 되니까."
 
이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수용하되, 주변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부정은 실제로 강재의 번호를 삭제한다. 강재 역시 이런 현실을 수용하며 또 담담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인간실격>의 부정과 강재는 이렇게 스스로를 규정짓지 못한 상실감에서 벗어나 지금 살아있는 순간들을 온전히 느끼며 용기를 내게 되었다. 또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수용하되, 휘둘리지 않고 현실 속 자신들의 일상을 지켜낸다. 이런 이들의 모습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따뜻했다.
  
 부정은 현실을 망가뜨리는 선택을 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부정은 현실을 망가뜨리는 선택을 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 JTBC

 
'누군가의 가족, 친구, 동료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자격.'

부정은 드라마 시작 지점에서 이렇게 내레이션 한다. 직업이나 역할, 그러니까 '무엇이 되는 것'을 인간의 자격이라 한다면 '인간 실격'이라 스스로를 비난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감각과 욕구, 감정들을 존중하고 수용하면서 현실과 발맞춰 살아가는 것 자체를 인간의 자격으로 본다면 어떨까? 나는 이런 것들이 인간의 자격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이 되어 인정받기를 갈구하기보다, 경험에 열려 있고,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며,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면 인간으로서의 자격은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젠 "뭐가 되고 싶니?" 라고 묻는 대신, "무얼 하고 있니?" 혹은 "어떻게 살고 싶니?"라고 물어봐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질문에 익숙해진다면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고 절망 속에 살아가거나 끝내 죽음을 택하는 이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또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에서 의미를 찾고, 자신의 경험과 가치를 존중하며 삶을 긍정하는 이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인간실격>의 부정과 강재가 몸소 보여주었듯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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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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