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LPBA에서 뛰게된 정보라 프로

올해부터 LPBA에서 뛰게된 정보라 프로 ⓒ 프로당구협회(PBA) 제공

 
"당구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성적이 나왔어요. 저는 당구를 놓으려 해도 당구가 저를 놓아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쯤되면 운명인 거죠."

올해부터 LPBA 무대서 뛰게 된 정보라(37‧TS샴푸) 프로에게 당구는 인생 그 자체다. 당구장을 운영하던 부친을 보며 일찌감치 당구를 접했고 빼어난 재능까지 뽐내며 여고생 시절 상금이 걸렸던 대회에서 첫 우승까지 차지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간에 공백기도 길었고 이제야 프로리그가 만들어진 탓에 다소 늦은 나이에 입성하게 되었지만 꾸준히 당구를 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기만 하다.

"프로가 만들어지면서 예전과는 몰라보게 환경이 좋아졌어요. 이런 환경에서 당구선수로 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축복이죠. 다른 종목보다 선수 수명이 긴 만큼 저만 열심히 한다면 얼마든지 좋은 커리어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보라 프로는 프로 무대에서는 신입생이지만 아마 시절부터 당구로 명성을 떨쳐온 베테랑이다. 특히 공백기를 가지기 직전인 2011~2012년에는 그야말로 펄펄 날았다.

2011년 제7회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 캐롬3쿠션 여자부, 2011년 제2회 CJ HELLO 부산시장배 전국당구대회 포켓9볼 여자부 오픈전, 2011년 제92회 전국체육대회 포켓8볼 여자부, 2012년 한바탕 전주배 전국당구대회 3쿠션 여자부 등 포켓볼, 쿠션볼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전성기는 지금부터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 사정이 많았던 이전과 달리 이제야 안정을 찾고 마음 편하게 당구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듯 신인의 자세로 쿠션볼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모든 삶을 당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뼛속까지 당구인 정보라 프로의 당구 인생을 <파워인터뷰>가 함께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26일 전화인터뷰로 진행되었다.

"프로 당구는 앞으로 전망이 밝은 종목입니다"
 
- 최근 들어 여자당구가 스타도 많이 나오고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예전과 비교해서 관심도가 높아지기는 했어요. 방송도 많이 하고 프로리그까지 출범하면서 이제는 당구만 잘 쳐도 좋은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당연히 인재가 몰리고 그 과정에서 기량과 상품성을 겸비한 선수들이 만들어지고 있죠. 그런 선수들이 많을수록 팬들의 시선도 쏠릴 수밖에 없고요."
 
- LPBA는 어떤 단체인가요?
"2019년도에 창설되었고요. 남성부는 PBA, 여성부는 LPBA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전에는 주로 대한당구연맹에서 주최하는 대회가 대부분이었어요. 지금은 프로화가 되면서 좀 더 체계화된 시스템이 구축되어가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아직은 역사가 짧아서 완전히 하나로 합쳐지지는 못했고요. 아마는 대한당구연맹, 프로는 PBA, LPBA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데 양쪽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한쪽을 선택해야 돼요.

때문에 프레드릭 쿠드롱은 PBA로 무대를 옮겼고 딕 야스퍼, 토브욘 브롬달, 다니엘 산체스 등은 아직 이전 단체에서 그대로 뛰고 있는 등 세계적인 선수들도 활동영역이 갈라진 상태예요. 선수가 어디서 뛸지 선택을 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죠. 통합을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아요."
 
- 프로무대에서 팀을 정해서 뛰어야 되지만 어디까지나 당구는 개인 스포츠잖아요. 단체전, 개인전 등 다양하게 존재할 것 같아요.
"그렇죠. 팀별로 단체전도 치르고 개인전도 있고, 기본적인 시스템은 다른 프로스포츠와 다르지 않다고 보시면 돼요. 상금도 커지고, 기록도 체계화되고 스타도 키워내려고 하고, 이제부터 역사가 쌓이는 것이죠. 아쉬운 점은 프로나 대한당구연맹이 상생을 위한 협력을 하면 좋을텐데 한 단체에 속하게 되면 다른 단체에서 뛰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당구 무대가 커지고 발전하는 쪽으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으면 좋겠어요. 프로가 더 커지고 좋아진다면 서로간 협의가 잘될 것이라 믿어요."
 
- 해외에는 프로단체가 많나요?
"리그는 많은데 외국에도 프로당구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동호인도 많고 역사도 긴 종목이지만 생활체육으로서의 장점도 크고 그래서 체계화가 늦어졌다 싶기도 하고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남성부, 여성부 나뉘어서 리그를 진행하는 무대는 PBA, LPBA가 최초인 걸로 알고 있어요. 예전에는 선수층이 두텁지 않아서 남녀대회가 한무대에서 진행되고 그랬거든요."
 
- 본래 아마 쪽에서 강자셨는데 최근 들어 프로로 전향했다고 들었어요.
"저같은 경우 그전에는 부산시 체육회 소속으로 9년 동안 있었어요. 거기서 전국체전을 부산시 대표로 나가는 등 연봉을 받고 선수 생활을 하다가 올해 6월 프로로 전향했어요. 부산시 체육회 소속으로 있을 때는 포켓볼을 주로 쳤고 프로에 와서 본격적으로 3쿠션에 전념하고 있어요." 
 
 정보라 프로는 3쿠션의 세계는 끝이 없다고 말한다.

정보라 프로는 3쿠션의 세계는 끝이 없다고 말한다. ⓒ 프로당구협회(PBA) 제공


 
- 아, PBA, LPBA는 그럼 3쿠션만 진행하고 있나요?
"네 맞습니다. 포켓볼은 아직 프로화가 되지 않았어요. 현재 PBA, LPBA에서는 3쿠션만 진행하고 있어요."
 
- 수상기록 등을 보니 10여년 전 쯤이 전성기셨던 것 같아요. 당시에 여자당구 인기가 지금만큼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성적이 한창 좋기는 했죠. 하지만 그때도 전문으로 막 하고 그러지는 못했어요. 당시 포켓볼이 인기는 좋았지만 대회도 많지 않고 그래서 3쿠션 대회도 함께 나가봤어요. 큰 기대는 안했는데 예상외로 좋은 성적이 나와서 그때 잠깐 1~2년 정도 열심히 쳤다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공백기를 좀 길게 가져가게 됐어요."
 
- 3쿠션과 포켓볼 중 어떤 쪽에 더 자신이 있으신가요?
"은근히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일단 포켓볼은 오랫동안 해와서 능숙하고 3쿠션은 아직 많이 미흡하죠. 다양한 기술도 배워가면서 훈련하고 있는데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될 것 같아요. 포켓볼은 많은 시간을 해서서 제 자신의 실력에 대해서 어느 정도 확신이 있지만 3쿠션에 대한 확신은 아직 없어요. 그 부분을 채워야 하는 게 당연하고 그러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3쿠션과 포켓볼은 단순히 규칙이나 방법뿐 아니라 타법이나 힘 조절 등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고 들었어요.
"차이가 많아요. 모든 것들이 다 달라요. 큰 틀에서 당구라는 이름을 함께 가지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전혀 다른 종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일단 포켓볼은 제가 원하는 공을 넣어야 되잖아요. 그렇게 하면서 풀어가는 과정인데 쿠션볼은 내 공이 움직여서 또 다른 공을 맞춰야 되는 거라 서로 다른 선상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 당구는 선수 생명이 길잖아요. 성인이 되어서 시작해도 선수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할 수 있어요. 야구, 축구, 농구 등 다른 스포츠는 거의 불가능하잖아요. 하지만 당구는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최근에 당구를 시작하는 연령층이 낮아지고 이른바 엘리트 스포츠를 따라가는 추세도 있어서 경쟁력까지 장담하긴 어렵습니다. 비슷한 조건이면 어릴 때부터 시작한 쪽이 유리하잖아요. 성인이 되어서도 충분히 가능은 하지만 일찍 당구를 접한 사람들을 이기려면 더욱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죠."
 
- 당구 후학을 양성하는 쪽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제가 포켓볼, 3쿠션도 함께 쳐보고 그러다 보니까 전문성있는 사람에게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슨 스포츠든 기초가 중요하잖아요. 처음에 잘 배워놓으면 이후에 발전하는 속도도 빨라지겠죠. 현재 당구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당구는 제 운명인 것 같아요"
 

- 당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선수까지는 아니셨지만 아버지가 당구를 잘 치셨고 당구장도 운영하셨어요. 그러다보니 일찍부터 당구가 눈에 들어왔죠. 사실 제가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운동을 찾아서 하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눈에 보이는 게 이거고 관심을 가지다보니 어느 순간 치고 있게 되더라고요. 그때가 중학교 시절이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집안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상금이라도 벌어보려고 우연히 아마추어 동호회 시합을 나갔었는데 거기서 덜컥 우승한 거예요. 큰 시합은 아니었지만 첫 우승 자체만으로도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아, 열심히 하면 그래도 가능성이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당구에게 발목을 잡힌거죠.(웃음)"

- 당구인들 중에 상금으로만 생활하는 분들도 있었을까요?
"음, 어려웠을 것 같아요. 당구가 아직까지 상금이 그렇게 많은 종목은 아니고요. 대회가 그렇게 많지도 않을뿐더러 매번 나갈 때마다 우승한다는 것도 어렵잖아요. 이제 프로화가 되어서 빛이 보이고 있지만 예전 기준으로는 매우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정보라 프로에게 당구는 곧 인생이다.

정보라 프로에게 당구는 곧 인생이다. ⓒ 정보라 프로 제공

 
- 이래저래 프로화가 된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네요. 
"상금은 본인이 가져가요. 연봉하고 관계없이요. 더불어 프로화가 되면서 미디어에 노출도 많이 되니까 유명해지고 스타성을 보여주면 다른 수입도 기대해 볼 수 있고요. 지금은 '선수생활을 하면서 먹고산다는 게 가능해졌죠. 이래저래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부분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 여성 분이 당구를 친다고 해서 선수 생활 이전부터 주목을 좀 받았을 것 같아요.
"당구장에서 어린 여학생이 당구를 치니까 관심을 받기는 했어요. 포켓볼도 아니고 쿠션볼이기도 했구요. 하지만 당시는 워낙 선수층도 얇고 그래서, 제가 아니더라도 여성이 당구를 치는 것만으로도 눈길은 끌었을 거예요."
 
- 마음 아픈 얘기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2016년에 아버님, 2017년에 어머님을 잃으셨습니다. 외동딸 입장에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제가 형제가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는 오랫동안 당뇨로 투병 생활을 했고, 돌아가시기 1년 전쯤부터는 제가 따라다니면서 케어를 다 해드렸어요. 그러면서 아버지 몸이 나빠지는게 보이는지라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예상도 못했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6개월 정도 지난 무렵 아직 충격도 다 가시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암으로 시한부판정을 받은 거예요. '이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막막하더라고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가장 소중한 분을 연달아 잃으니까 한동안은 살아갈 자신이 없더라고요. 살아갈 이유도 없고요. 가족이 모두 사라진 거잖아요.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두분을 마음에 묻고 꿋꿋하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죠."
 
- 힘든 순간에도 당구를 포기한 적은 없으신 것 같아요. 조금 추상적인 질문같지만 정보라 선수에게 당구는 어떤 의미일까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어요. 경제적인 문제든 개인적인 문제든. 하지만 이상하게 그 해에 꼭 성적이 났어요. 상금도 받고 전국체전 메달도 따는 등, 정말 신기하죠. 그러다 보니 '당구는 제 운명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당구를 안 놓아준 게 아니고 당구가 저를 안 놓아준 게 아닌가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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