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농구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시즌을 보낸 팀은 바로 2016-2017 시즌의 우리은행 우리원이었다. 외국인 선수 존쿠엘 존스가 골밑을 완전히 장악했고 박혜진과 임영희(우리은행 코치),양지희로 이어지는 '토종 트로이카'가 건재했던 우리은행은 정규리그 35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두 번 밖에 패하지 않았다. 2016-2017 시즌 우리은행이 기록한 .943의 승률은 WKBL 출범 후 역대 단일 시즌 최고승률 기록이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기록과는 별개로 농구팬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 '역대 최강의 팀'은 따로 있다. 바로 '레알 신한'으로 불리던 2008-2009 시즌의 신한은행 에스버드다. 당시 신한은행에는 '천재가드' 전주원(우리은행 코치)과 '바스켓퀸' 정선민(국가대표 감독)을 비롯해 하은주, 최윤아(국가대표 코치), 강영숙, 김단비, 진미정, 선수민, 이연화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실제로 2008-2009 시즌 신한은행은 40경기에서 37승3패로 리그를 지배했다.

이처럼 한 때 천하를 호령했던 신한은행이지만 이는 모두 과거의 이야기가 됐다. 2011-2012 시즌을 끝으로 근 10년 가까이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신한은행은 이제 평범한 중위권 팀에 불과하다. 2019-2020 시즌 4위, 2020-2021 시즌 3위를 기록하며 조금씩 순위를 끌어 올리고 있는 신한은행은 건강 문제로 자진사퇴한 정상일 감독의 뒤를 이을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지 않고 구나단 감독대행 체제로 이번 시즌을 치르기로 했다.

꼴찌에서 2년 만에 플레이오프 복귀
 
 수 년간 신한은행을 이끌고 있는 김단비는 자신이 짊어진 무게감을 잘 알고 있다.

수 년간 신한은행을 이끌고 있는 김단비는 자신이 짊어진 무게감을 잘 알고 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지난 시즌까지 하나원큐에 강이슬(KB스타즈)이라는 걸출한 에이스가 있었다면 신한은행에는 전주원, 정선민 은퇴 후 오랜 기간 팀을 이끌고 있는 김단비라는 든든한 기둥이 있다. 강이슬이 하위권을 전전하던 하나원큐에 입단해 하나원큐의 외로운 에이스로 활약했다면 김단비는 '레알 신한'의 전설이 시작되던 2007년에 신한은행에 입단해 신한은행의 흥망성쇠를 함께 하고 있는 '산증인'이다.

지난 2004년 현대 하이페리온을 인수한 신한은행은 전주원이 '출산휴가'로 자리를 비운 2005년 겨울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후 10년이 넘게 항상 중상위권 이상의 꾸준한 성적을 유지했다. 그 사이에는 프로 스포츠 역대 최초의 통합 6연패 대기록도 있었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지난 2018-2019 시즌 무려 14년 만에 최하위로 추락하며 명문구단의 명성에 커다란 흠집을 남기고 말았다.

2019년 정상일 감독을 선임한 신한은행은 코로나19로 조기 종료된 2019-2020 시즌 6개 구단 중 4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28경기에서 11승17패로 승률은 .393에 머물면서 만족스런 성적을 올렸다고 할 순 없었다. 신한은행은 2019-2020 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취득한 WKBL 최고령 선수 한채진과 재계약을 맺은 것을 제외하면 뚜렷한 전력보강을 하지 않았고 많은 농구팬들이 신한은행을 지난 시즌 유력한 꼴찌 후보로 예측했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지난 시즌 30경기에서 17승을 올리는 선전 속에 6개 구단 중 3위를 기록하며 두 시즌 만에 플레이오프에 복귀했다. 에이스 김단비가 18.53득점(2위) 9.17리바운드(5위)4.80어시스트(4위)1.30블록슛(2위)을 기록하며 여느 시즌과 마찬가지로 전방위에 걸쳐 맹활약했다. 여기에 신한은행 이적 후 부상으로 한 번도 제 기량을 발휘한 적이 없는 이경은이 전 경기에 출전하며 경기 당 평균 24분을 소화해 준 것도 큰 힘이 됐다.

신한은행은 내심 2013-2014 시즌 이후 7년 만의 챔피언 결정전 진출을 기대했지만 불행하게도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상대가 바로 박지수가 버틴 KB스타즈였다. 신한은행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김단비가 트리플더블(15득점10리바운드10어시스트)을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무려 51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골밑을 지배한 박지수의 벽을 넘지 못하고 2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기둥' 김단비 건재 속 젊은 선수들 성장할까
 
 김단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엄지의 성장은 필수적이다.

김단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엄지의 성장은 필수적이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신한은행은 시즌 개막을 3개월 앞둔 지난 7월 정상일 감독이 건강을 이유로 자진사퇴했다. 이에 신한은행은 급하게 새 감독을 구하지 않고 정상일 감독이 진행하던 리빌딩을 지속하기 위해 캐나다 국적의 구나단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5월 하나원큐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강계리와 장은혜를 영입한 것을 제외하면 비 시즌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좋든 싫든 신한은행은 이번 시즌에도 김단비에게 많은 것을 의존해야 한다. 지난 시즌 팀 내 득점과 리바운드, 어시스트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김단비가 흔들린다면 신한은행의 시즌 구상은 크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물론 한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것은 팀에게도 선수에게도 좋을 게 없다. 하지만 김단비는 신한은행을 책임져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시즌에도 동료들을 잘 이끌 것이다.

지난 시즌 10.30득점과 함께 39.3%의 3점슛 성공률을 기록한 한채진과 전 경기에 출전한 이경은은 이번 시즌에도 김단비의 조력자로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신한은행의 팬들이 내심 기대하고 있는 선수는 바로 해외파 출신 포인트가드 김애나다. 지난 시즌 164cm의 작은 신장에도 탁월한 개인기를 뽐내며 팬들을 놀라게 했던 김애나는 이번 시즌에도 이경은의 백업, 또는 파트너로 더욱 많은 경기에 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작년 여름 트리플잼 대회에 출전했다가 십자인대를 다쳐 지난 시즌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던 187cm의 장신빅맨 김연희는 이번 시즌에도 초반 출전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신한은행은 이번 시즌 180cm의 포워드 한엄지가 빅맨 역할을 맡을 확률이 높다. 데뷔 후 매 시즌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한엄지가 이번 시즌에도 또 한 단계 성장한다면 한엄지는 김단비의 다음 세대를 책임질 신한은행의 핵심자원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여전히 김단비에게 많은 것을 의존하는 신한은행을 이번 시즌 우승후보로 분류하는 농구팬은 거의 없다. 실제로 평균신장이 작고 벤치 멤버가 강하지 않은 신한은행은 KB스타즈 같은 장신 팀을 만나면 크게 고전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당장의 우승이 아닌 미래를 보고 리빌딩하는 팀이다. 지난 두 시즌 동안 착실히 성장했던 신한은행이 이번 시즌에도 발전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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