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사상>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의 한 장면. ⓒ 오지필름

  
모래 위라는 뜻의 부산 사상구는 지역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독특한 위치에 있다. 낙동강 인근에 위치해 모래가 많았고 농사와 어업, 그리고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 있기에 1차에서 3차 산업 종사자들이 두루 터전을 잡고 모여 사는 곳이다. 

유년 시절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박배일 감독은 대규모 재개발 사업에 주민들이 밀려나고 그 자리를 아파트가 대체하는 현실을 보며 카메라를 들었다. 누군가는 망루에 올랐고, 개발 광풍에 순식간에 집에서 쫓겨나게 된 사람들은 절규했지만 현실은 무서웠다.

30년간 제철 노동자였던 감독의 아버지는 오랜 노동에 상한 몸을 겨우 추스르며 사상 바깥으로 밀려났고, 포크레인 기사로 수십 년간 살아온 최수영씨는 투쟁 과정에서 장애까지 생겼다. 다큐멘터리 <사상>은 그렇게 우리가 외면해 온 현실의 모습을 끈질기게 포착한 결과물이었다.

사적인 역사로 도시의 민낯을 드러내다

시작은 단순했다. 다큐멘터리 창작 공동체 오지필름 소속으로 지난 10년간 밀양 송전탑 문제, 강정 마을 해군기지 문제, 핵 폐기시설 관련 다큐를 만들어온 박배일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와 사상구의 변화를 통해 자본주의의 흐름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개발 광풍이 노동자들을 어떻게 내쳤는지, 자본 제일주의가 평화롭던 동네를 어떻게 탈바꿈시켰는지 보일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뉴스 클립을 모아서 만든 어떤 중국영화를 보고 내 주변에서도 충분히 자본주의를 얘기할 소재가 있을 것 같았다. 제가 살고 있는 사상과 중국의 현재가 매우 비슷했거든. 처음엔 3개월 정도 찍으면 결과물이 나오겠다 싶었다. 자본주의가 공간을 어떻게 바뀌게 했는지를 사상으로 보이고, 노동자가 어떻게 변했고 밀려났는지를 아버지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근데 그게 9년이 걸렸다(웃음). 다른 영화를 하면서 조금씩 사상의 모습을 쌓아온 결과물이다. 

만덕 5지구 사업이 상징적이었다. 자본이 할퀴고 간 상처가 드러나는 일이지. 영화를 찍어보자는 마음과 함께 연대의 마음도 있어서 카메라를 들고 갔다. 그 과정에서 만난 최수영 주민 대표는 처음에 투쟁에 흥미가 없었다고 했다. 본인도 건축 관련 업종이라 재개발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으니까. 본인도 다른 재개발 지역에서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데도 포크레인을 움직인 적이 있다고 하더라. 그러다 본인이 사는 곳이 재개발된다 해서 공청회를 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한 것 같다. 도로도 넓고 마을 공동체도 잘 돼 있는데 정비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다 부숴버리겠다고 하니까. 멀쩡한 곳을 왜 무너뜨리고 아파트를 짓지? 그러면서 서서히 투쟁을 하게 된 거지.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의 한 장면. ⓒ 오지필름

 
2시간이 조금 넘는 분량의 이 다큐에서 감독은 1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나지막이 내레이션을 한다. 사상 주민들의 삶을 충분히 제시한 뒤 감독이 개입하는 구성이다. 박배일 감독은 "원래 내레이션을 넣을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영화 앞부분은 주민들이 애쓰는 모습이고, 후반부터 무너지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걸 제가 얘기로 정리하지 않으면 영화 자체가 완성 안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사상>을 진행하며 유독 악몽을 꾸기도 했다. 박 감독은 "정말 제대로 기록하고 있는 건지, 이 영화를 만드는 게 그분들에게 어떤 필요성이 있는지 계속 의심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아버지가 우울증이 엄청 심했다. 다른 주민들도 다들 비슷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도시에 산다는 건 우울감을 가볍게든 무겁게든 안게 되는 것 같다. 경쟁을 부추기고 정치인은 잘 살아보자는 무의미한 구호만 외친다. 도시에 사는 사람 중 지금 자리가 딱 내가 있을 곳이라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토박이라고 해도 고향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자본이 밀어내고, 국가권력이 밀어낸다. 끝없이 부유하며 우울감을 안고 사는 게 도시의 삶 같다.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본질적 질문

영화 속 박배일 감독의 내레이션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특히 '9년간 사상을 지켜봤을 때 매일 장례식을 치르는 기분'이라 말하는 대목에선 그간 감독이 조명했던 여러 투쟁과 연대의 현장과 사상이 많이 다름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투쟁은 고단하지만 적어도 연대의 현장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흥과 힘이 날 때도 있고, 유쾌한 웃음이 터질 때도 있는 법이다.

사상은 그와 달리 차갑고 무거웠다. 연대의 현장에서도 자조섞인 탄식이 가득한 경우가 많아 보인다. 사상구 재개발 반대 집회에 차량이 돌진해 수많은 사람이 다쳤다는 당시 뉴스들은 사뭇 현장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그간 영화를 할 때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건지 그 대안을 찾고 싶었다. 이번 영화에선 섣불리 얘기할 수 없겠더라. 밀양은 밥, 소성리는 땅이 대안일 수 있다는 걸 조심스럽게 제안했었는데 이번엔 표현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가 좀 더 차갑고 서늘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설프게 대안을 얘기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재개발 주체였던 LH는 대체 누굴 위한 공적 사업을 하는 걸까 늘 생각했다. 결국 본인들과 아파트를 짓는 이들을 위한 개발인 거다. 개발해서 아파트를 지어놓는데 거기에 들어오는 원주민은 채 3%도 안 된다. 누구를 위한 사업인지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지. 국책 사업이라는 건 기존 사람들 삶을 온전히 지키면서 공간을 바꿔 가는 게 맞는데 그들을 밀어내버리면서 새로운 걸 짓다니 말이 안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을 연출한 박배일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을 연출한 박배일 감독. ⓒ 오지필름

 
박배일 감독은 오지필름 10주년을 맞이한 최근 연대의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씁쓸한 표정으로 "장애인이 됐지만 할 얘긴 해왔으니 충분하다"고 낮게 말하는 영화 속 최수영씨를 들며 감독은 말을 이었다. 
 
할 말을 했다는 이유로 고립되고, 공동체가 흔들리기도 한다. 정말 할 말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우리 사회는 과연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품고 있을까. 씁쓸하고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다. 정말 연대할 사람이 누굴까 이 영화를 보며 한 번씩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최근 밀양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정말 연대가 필요한 순간은 투쟁이 끝난 시점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연대 방식이야 정말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우리의 삶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투쟁의 열기가 식었을 때 서로 일상을 나누며 연대할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나. 최수영 대표에게도 제가 무슨 말을 쉽게 할 수는 없다. 고립된 사람들에게 연대를 제안하는 것도 어렵지. 그래서 영화로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예술이라는 게 이럴 때 필요한 것 같다.

오지게 투쟁, 오지로 간다는 마음

오지필름의 지난 10년을 박 감독은 "정말 오지게 했다"는 말로 정리했다. "하지만 정작 카메라 뒤 우리 스스로는 잘 살피지 못한 것 같다"며 그는 "카메라 앞 사람들과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을 살피는 균형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고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까 어떻게 연대할까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관객들도 우리 영화를 통해 새로운 걸 보셨다고 종종 말씀해주신다. 보람도 있었고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김주미, 문창현, 권혜린 감독까지 우리 팀이 4명인데 앞으로의 10년은 카메라 뒤 우리도 같이 돌보면서 카메라 앞에 계신 분들과 함께 나아가려 한다.

시작은 '영화를 일종의 혁명과 실천의 도구로 하자'였다. 좀 거창한 말인데 생각보다 영화라는 게 단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혁명만 잡고 나아가기엔 동력이 없어질 때도 있고, 매번 새로운 생각들이 쌓일 때 그 힘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질문이 생길 때마다 답을 찾으려 했는데 정해진 정답은 없다. 그걸 인정하고 고민하면서 기록을 남기다 보면 어느새 정리가 되고 또다른 질문들이 생기더라. 결국 기록으로 투쟁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전 영화를 안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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