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출범해 올해로 24주년을 맞은 여자프로농구 역대 최악의 흑역사를 꼽자면 역시 2015-2016 시즌에 있었던 '첼시 리 사태'였다. 지난 2015년 198cm의 뛰어난 신장을 가진 '외국인 선수' 첼시 리는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공문서를 위조하면서 특별귀화선수 자격으로 한국땅을 밟아 '국내 선수'로 WKBL 무대를 누볐다. 2015-2016 시즌 득점왕과 리바운드왕 등 무려 6개 부문을 휩쓴 첼시 리는 KEB하나은행을 챔프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문제는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첼시 리가 사실은 공문서를 위조해 귀화혼혈선수로 활약한 '사기꾼'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WKBL은 첼시 리를 비롯한 하나은행의 2015-2016 시즌 기록을 모두 박탈했다. 챔프전 준우승을 차지하고도 힘들게 코트를 누볐던 2015-2016 시즌의 기록이 모두 삭제된 것이다. 지금도 WKBL 홈페이지에는 2015-2016 시즌 하나은행의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

'첼시 리 사태' 이후 큰 충격을 받은 하나은행은 이후 세 시즌 동안 3할대 승률에 허덕이며 하위권을 맴돌다 2019-2020 시즌 3위로 올라서며 충격을 극복하는 듯했다. 하지만 팀명을 하나원큐로 바꾼 지난 시즌 다시 6개 구단 중 5위로 떨어지며 다시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FA자격을 얻은 에이스 강이슬(KB스타즈)이 팀을 떠난 하나원큐는 지난 시즌 최하위 BNK 썸의 전력이 급상승하면서 이번 시즌 유력한 최하위 후보로 꼽히고 있다.

우승 반지 위해 이적을 선택한 에이스
 
 지난 수 년 간 팀을 이끌었던 하나원큐의 에이스 강이슬은 우승을 위해 KB스타즈로 이적했다.

지난 수 년 간 팀을 이끌었던 하나원큐의 에이스 강이슬은 우승을 위해 KB스타즈로 이적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스포츠에서 오랜 기간 하위권을 전전하며 우승과 거리가 먼 팀에게는 팬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스타플레이어의 존재가 매우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5번의 최하위를 포함해 무려 10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했던 한화 이글스의 팬들은 '대한민국 에이스'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과 '출루왕' 김태균(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의 존재 때문에 "나는 행복합니다"를 부르며 인고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WKBL의 하나원큐 역시 시즌 전체가 삭제된 2015-2016 시즌,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 종료되면서 포스트시즌이 취소된 2019-2020 시즌을 제외하면 2010-2011 시즌 이후 무려 10년 동안 봄 농구를 경험하지 못했다. 마지막 우승은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런 하나원큐의 팬들이 그나마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국가대표 주전 슈터 강이슬의 존재였다.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하나원큐에 지명된 강이슬은 프로 3년 차가 되던 2014-2015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해 통산 9시즌 동안 259경기에서 12.34득점 4리바운드 1.4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특히 강이슬은 통산 3점슛 성공률이 38.8%에 달할 정도로 외곽슛에서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 4시즌 연속 3점슛 부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을 정도로 3점슛에선 상대가 없다.

하지만 대표팀의 붙박이 주전 슈터로 활약하며 얼마 전 도쿄 올림픽까지 다녀온 강이슬은 정작 하나원큐 유니폼을 입고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공식적으로'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2015-2016 시즌 봄 농구에서 6경기에 출전해 6.67득점을 올린 기록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2015-2016 시즌 기록은 공식 기록에서 모두 삭제된 상태다. 국가대표 주전 선수가 정작 소속팀에서는 큰 경기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셈이다.

하나원큐의 독보적인 에이스로 매 경기 상대 수비의 집중적인 견제를 뚫고 두 차례나 국내 선수 득점 1위에 올랐던 강이슬은 지난 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얻었다. 워낙 하나원큐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던 선수였기 때문에 잔류가 유력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강이슬은 우승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강호' KB스타즈로 이적했다. 하나원큐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비보가 아닐 수 없었다.

유력한 꼴찌후보? 대이변 일으킬까
 
 강이슬이 없는 하나원큐는 신지현이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한다.

강이슬이 없는 하나원큐는 신지현이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한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2019-2020 시즌 강이슬과 외국인 선수 마이샤 하인스 알렌의 활약에 힘입어 3위를 기록했던 하나원큐는 외국인 선수를 쓸 수 없었던 지난 시즌 강이슬의 분전에도 6개 구단 중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게다가 시즌이 끝난 후 팀 전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던 강이슬이 KB로 이적했고 베테랑 포워드 백지은마저 은퇴를 선택했다. 그나마 또 한 명의 주전 포워드 고아라를 붙잡은 것이 하나원큐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강이슬이 팀을 떠나면서 이제 하나원큐는 신지현이 새로운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한다. 2014-2015 시즌 신인왕을 차지한 후 부상으로 두 시즌을 통째로 날렸던 신지현은 지난 시즌 30경기에 모두 출전해 12.77득점(9위) 3.23리바운드 4.97어시스트(3위)로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이번 시즌에도 신지현이 포인트가드로 든든하게 팀을 이끌어야만 이훈재 감독이 선수단을 더욱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다.

하나원큐와 삼성생명 그리고 BNK 썸은 지난 5월 3명의 선수와 4장의 신인 지명권이 오간 대형 삼각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하나원큐는 이 트레이드를 통해 지난 시즌 신인왕 강유림을 삼성생명에 내주고 BNK의 주전 포워드 구슬을 영입했다. 180cm의 장신슈터 구슬은 다소 기복은 있지만 최근 세 시즌 연속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렸던 검증된 득점원이다. 하나원큐에서의 첫 시즌을 맞는 구슬은 강이슬의 빈자리를 메워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하나원큐는 지난 시즌 포워드 자원 고아라와 강이슬이 팀 내 리바운드 1, 2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빅맨라인이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시즌을 통해 양인영이 주전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9.2득점 5.9리바운드를 기록했다는 것은 하나원큐에게 매우 반가운 일이다. 양인영은 지난 3일 요르단에서 폐막한 아시안컵에서도 WNBA 일정으로 명단에서 제외된 박지수(KB스타즈) 대신 대표팀에 선발돼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하나원큐의 이훈재 감독은 18일에 열린 삼성생명 2021-2022 여자프로농구 미디어데이에서 "어느 한 선수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코트에 뛰는 모든 선수가 각자의 책임감을 가지고 뛰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실제로 강이슬이라는 걸출한 에이스에게 의존했던 하나원큐는 이제 팀 이름처럼 '원팀'으로 뭉쳐 상위권 팀들을 상대해야 한다. 과연 가장 유력한 최하위 후보로 꼽히는 하나원큐는 이번 시즌 이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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