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2TV 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 KBS

 
지난주 시작된 KBS 2TV 드라마 <연모>는 쌍둥이로 태어난 두 왕족의 기구한 운명을 다루고 있다. 한 명은 딸로 태어나고 한 명은 아들로 태어난 이 쌍둥이 남매는 출생 직후부터 엇갈린 운명을 걷게 된다. 세손이 될 남자아이는 선택을 받았지만, 그렇지 않은 여자아이는 버림받는다.
 
왕실은 여자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엄마인 세자빈(한채아 분)이 아이를 은밀히 살리고 아이는 궁 밖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랬던 아이가 훗날 궁녀로 뽑혀 궁으로 돌아가고, 불의의 죽음을 당한 세손을 대신해 왕위계승권자의 삶을 살게 된다. 12일 방송된 2회에서, 여자아이는 세손을 잃고 슬퍼하는 세자빈으로부터 "이제부터는 네가 세손이니라"라는 운명적 당부를 듣게 된다.
 
쌍둥이의 출산은 고대로부터 비상한 국가적 관심을 받았다. 이것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로 인식됐다. 오늘날에 비해 인구가 훨씬 적었으므로, 쌍둥이의 출생 건수도 그만큼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희귀성 역시 쌍둥이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볼 수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음력으로 벌휴왕 10년 3월(양력 193년 4월 19일~5월 18일)에는 한기부로도 불리는 서라벌 한지부라는 행정구역에서 다섯 쌍둥이가 태어났다. 딸 하나, 아들 넷의 오남매였다. 신라본기 벌휴이사금 편에서 그해의 사건으로 기록된 것은 세 건이다. 그 셋 중 하나가 쌍둥이 출산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은 뉴스였을지를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사례 중 하나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장왕으로도 불리는 보장태왕의 재위 7년 7월(648년 7월 26일~8월 23일)에도 쌍둥이 출산이 나라에 보고됐다. 고구려본기 보장태왕 편은 "가을 7월에 왕도(王都)에서 여성이 아이를 낳았다"며 "몸은 하나이고 머리는 둘이었다"고 보고한다. 평양성에서 샴쌍둥이의 출생이 있었던 것이다.

쌍둥이 출산에 벼 200석 지급
 
 KBS 2TV 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2TV 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 KBS

 
모든 경우에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쌍둥이 출산에 대해 국가가 '포상금'을 지급한 사례들이 곧잘 확인된다. 신라본기에는 문무왕 10년 6월(670년 6월 23일~7월 22일)에 딸 하나와 아들 셋을 한 번에 낳은 한지부 주민에게 벼 200석을 지급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 헌강왕 17년(825년)에 딸과 아들을 각각 둘씩 한꺼번에 낳은 사람에게 벼 100석을 지급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여기에 언급된 100석과 200석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조선시대 기록과의 비교를 통해 한층 명확하게 드러난다. 음력으로 조선 태종 7년 1월 16일자(양력 1407년 2월 23일자) <태종실록>에 따르면, 종9품에게 지급된 연봉은 쌀 14석과 면포 4필, 임시직 직원에게 지급된 연봉은 쌀 9석과 면포 3필이었다.

신라 때의 곡식 1석과 조선시대의 곡식 1석을 동등하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신라 때의 100석과 200석이 조선시대의 10석보다 훨씬 더 값어치가 있었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분명한 사실이다. 조선시대 종9품 공무원의 연봉보다 훨씬 많은 100석 혹은 200석이 쌍둥이 출산 포상금으로 지급됐으니,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보다 신라 정부가 통이 훨씬 더 컸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쌍둥이 출산을 축하한 것은 이 일이 국가적으로 이로웠기 때문이다. 농토에서 일하는 백성의 숫자가 나라의 곳간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으므로, 국가 입장에서는 다산을 권장하기 위해서라도 그만한 돈을 쓸 필요가 있었으리라.

이런 분위기가 후대에도 연결됐다는 점은 조선 세종시대의 어전회의 풍경에서도 확인된다. 세종 13년 7월 5일자(1431년 8월 12일자) <세종실록>에서는 세 쌍둥이를 낳은 사노비 여성에 대한 포상을 논의하는 신하들과 세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날 회의에서는 약간의 논쟁이 벌어졌다. 지금의 경남 합천군 일부인 초계군에 거주하는 그 여성이 낳은 쌍둥이 중에서 두 명이 곧바로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세 쌍둥이를 낳으면 쌀 10석을 주는 제도를 이 사안에도 적용할 것인가가 논란이 됐다.

신하들은 '결과적으로 한 명을 낳은 셈이므로 포상금을 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세종은 세 아이를 한 번에 낳은 사실을 중시해 지급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논쟁은 결국 예조 관청의 절충안대로 '포상금을 지급하되 절반만 지급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렇게 국가권력이 포상금을 주면서까지 환영을 표시했으므로, 고대 이래로 한국에서는 쌍둥이 출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는 부정적 인식이 존재했지만, 그것이 한국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민간에서는 그처럼 쌍둥이가 환영을 받았을지라도 쌍둥이 왕족에 대한 인식은 달랐을 거라는 것이 드라마 <연모>의 설정이다. <연모> 속의 왕실 사람들은 여아와 남아로 구성된 쌍둥이의 출생을 불길한 일로 받아들인다.

왕실과 쌍둥이
 
 KBS 2TV 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2TV 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 KBS

 
한국 역사에서 이런 출생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알려줄 만한 명확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 조선왕조 5백년간 배출된 약 300명의 왕실 자녀 중에서 쌍둥이가 있었다는 공식 보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왕실에서 여아와 남아가 쌍둥이로 태어났다는 기록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김신빈(신빈 김씨)과 세종을 부모로 둔 영해군이 쌍둥이로 태어났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영해군의 태를 보관한 태실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점이 그 근거다. 하지만 영해군의 이름이 바뀐 뒤에 새로운 태실이 하나 더 만들졌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으므로 이에 관해서는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다.

KBS 사극 <태조 왕건>에서 궁예의 두 왕자가 쌍둥이였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 역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궁예열전에 나오는 청광(靑光)·신광(神光) 두 왕자가 쌍둥이였다는 이야기가 이 드라마에서 나왔지만, 기록상으로는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삼국사기> 궁예열전에서는 청광이 장자(長子)로, 신광이 계자(季子, 막내아들)로 표기돼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 한국의 왕실 사람들이 쌍둥이 왕족의 출생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일은 현재로서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일반 사회에서는 쌍둥이가 환영을 받았지만 왕실에서는 어떠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 바로 이 '알 수 없음'이 사극 시나리오에 상상의 공간을 제공할 여지가 있다. 드라마 <연모>는 그 같은 상상의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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