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장면에서 충격적인 반전이 있는 영화는 방심하고 자리를 뜰 준비를 하던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초반에 보여준 설정으로 영화가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지금까지 나왔던 이야기들이 모두 거짓이었음이 밝혀지면 관객들이 받는 충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반전이 치밀할수록 관객들은 충격과 동시에 묘한 영화적 쾌감을 느끼게 된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반전엔딩을 가진 작품으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데뷔작 <유주얼 서스펙트>를 꼽는다. 소문으로만 존재하던 암흑세계의 보스 '카이저 소제'의 정체가 밝혀지는 엔딩장면에서 관객들은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한국영화 중에서는 <1987>을 만든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가 안드로메다별 왕자(백윤식 분)에 의해 지구가 파괴되는 충격적인 결말로 막을 내린다.

이처럼 관객들에게 준 사전정보를 모두 배신하고 전혀 다른 결말로 영화가 끝맺어지는 반전엔딩 영화들은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반전으로 관객들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던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1960년대에도 있었다. 바로 지금까지도 영화 역사상 최고의 반전엔딩 영화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혹성탈출>이다.
 
 <혹성탈출>은 유인원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설정부터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혹성탈출>은 유인원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설정부터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 세기상사

 
모세, 벤허 연기했던 원조 근육질 스타

호감형 얼굴에 근육질의 몸매를 겸비한 고 찰턴 헤스턴은 195~60년대 할리우드를 주름잡던 최고의 스타배우 중 한 명이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브로드웨이 연극과 TV드라마 쪽에서 활동하던 헤스턴은 <다크시티>와 <네이키드 정글>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6년 율 브린너와 함께 출연한 영화 <십계>에서 모세를 연기하며 할리우드에서 주목 받는 배우로 떠올랐다.

하지만 헤스턴을 할리우드의 '대체불가 스타'로 만든 작품은 따로 있었다. 바로 196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1개 부문을 휩쓴 영화 역사상 최고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벤허>였다(<벤허>는 국내에서도 무려 8번에 걸쳐 재개봉 됐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벤허>에서 주인공 유다 벤허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헤스턴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벤허>를 통해 최고의 배우로 우뚝 선 헤스턴은 60년대 <엘 시드>와 <북경의 55일>, <하르툼 공방전> 등에 출연하며 문무를 겸비한 영웅 이미지를 쌓았다. 그러던 1968년 시대극에 주로 출연하던 헤스턴은 익숙하지 않았던 SF장르에 도전장을 던졌다. 영화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충격적인 반전의 엔딩 장면은 모두가 알고 있다는 전설의 SF영화 <혹성탈출>이었다. 현재도 <혹성탈출>은 <십계>, <벤허>와 함께 헤스턴의 3대 대표작으로 꼽힌다.

80년대 초반까지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헤스턴은 80년대 들어 활동이 점점 뜸해졌다. 하지만 1994년에는 자신으로부터 근육질 액션스타 자리를 물려 받은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한 <트루 라이즈>에서 비밀첩보기관의 국장으로 출연해 연기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2001년에는 팀 버튼 감독이 리메이크한 <혹성탈출>에서 자이우스 역으로 특별 출연했다.

1998년부터 5년 간 전미 총기 협회(NRA)의 회장으로 활동했던 헤스턴은 2002년 알츠하이머와 유사한 신경계 질환에 걸렸다고 고백하며 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약 6년 간 은둔하며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헤스턴은 지난 2008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흠 없는 연기를 해냈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바로 퇴장할 때"라는 어록을 남긴 헤스턴은 지금도 많은 관객들에게 영원한 모세와 벤허로 기억되고 있다.

우주여행 끝에 유인원이 지배하는 행성으로 귀환
 
 샤프너 감독은 <혹성탈출>에서 인간과 유인원의 입맞춤이라는 놀라운 장면을 넣었다.

샤프너 감독은 <혹성탈출>에서 인간과 유인원의 입맞춤이라는 놀라운 장면을 넣었다. ⓒ 세기상사

 
지구 밖에 있는 생명체가 있는 행성을 찾아 우주여행을 시작한 테일러(찰턴 헤스턴 분)와 일행들은 지구 시간으로 2000년이 넘는 긴 우주여행 끝에 이름 모를 행성의 바다에 불시착했다. 함께 여행을 떠난 동료 한 명이 수면캡슐 고장으로 인해 해골로 발견된 가운데 테일러는 2명의 남은 동료들과 함께 사막과 모래산을 헤매다 밀림에서 총으로 무장한 고릴라 기병부대를 만나 붙잡히게 된다.

놀랍게도 테일러가 도착한 행성은 인간이 아닌 고릴라와 침팬치 같은 유인원들이 문명을 이루며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고 얼마 남지 않은 인간들은 유인원들로부터 짐승 취급을 받았다. 테일러는 자신의 지능과 언어능력을 밝히려 하지만 유인원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그나마 테일러의 행동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지라 박사(킴 헌터 분)에게 글을 통해 간신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당시 테일러는 목 부상으로 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유인원들은 지능을 가진 인간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었고 테일러는 코넬리우스 박사(로디 맥도웰 분)와 지라 박사의 도움을 받아 여성 인간 노바(린다 해리슨 분)를 데리고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유인원들의 리더인 자이우스(모리스 에반스 분)는 탈출에 성공한 테일러에게 "뭘 찾아도 결국 넌 후회하게 될 것이다"는 의미 심장한 한마디를 남긴다. 그리고 테일러는 곧 자이우스의 말이 가진 의미를 깨닫게 된다.

노바를 태우고 해안가를 향해 달리던 테일러는 바닷가 앞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췄다. 그것은 바로 상반신만 튀어나온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테일러와 관객들이 외계행성이라고 믿었던 곳은 바로 '미래의 지구'였던 것이다. 인류 문명은 전쟁으로 멸망했고 유인원들이 지구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어 문명을 이루고 있던 것이다. 테일러는 믿기 힘든 현실을 마주하며 절규한다.

<혹성탈출>은 1973년까지 무려 5편에 걸쳐 제작됐다. 2001년에는 팀 버튼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됐는데 팀 버튼 감독의 <혹성탈출>은 원작영화보다는 원작소설의 리메이크에 더 가까웠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는 맷 리브스 감독에 의해 지능을 가진 유인원의 탄생부터 유인원들이 지구를 지배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혹성탈출> 프리퀄 3부작이 제작돼 세계적으로 16억8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대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이 놓친 배역
 
 유인원 세계에서 열린 마음을 가진 지식인이었던 지라와 코넬리우스는 테일러가 지능을 가진 인간임을 믿는다.

유인원 세계에서 열린 마음을 가진 지식인이었던 지라와 코넬리우스는 테일러가 지능을 가진 인간임을 믿는다. ⓒ 세기상사

 
테일러는 자신을 우리에 가둔 채 학대하는 유인원들 사이에서 많은 고통과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만약 자신에게 꾸준한 관심을 가져준 지라 박사가 없었다면 테일러는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끔찍한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 테일러와 유일하게 우정을 나눈 지라 박사는 테일러와 헤어지면서 작별의 키스를 나누지만 테일러를 면전에 두고 "너 정말 더럽게 못생겼다"고 말할 정도로 솔직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지라 박사를 연기한 고 킴 헌터는 1951년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란도가 주연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비비안 리의 동생 스텔라를 연기하며 아카메미와 골든글러브 여우조연상을 휩쓴 배우다. 헌터가 연기했던 <혹성탈출>의 지라 박사는 아카데미 3회 수상에 빛나는 대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에게도 캐스팅 제의가 갔던 역할이었다(버그만은 훗날 지라 박사 역을 거절한 것을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지라 박사의 약혼자이자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연구를 하는 코넬리우스 박사는 테일러의 지능을 믿지 않다가 테일러가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 테일러를 돕는다(실제로 <혹성탈출> 1편에서는 새를 비롯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생물이나 물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코넬리우스는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서 적으로 등장하지만 특정사건을 계기로 주인공의 동료가 되는 대표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혹성탈출>에서 유인원 가면을 쓰고 코넬리우스 박사를 연기한 영국 출신의 고 로디 맥도웰은 찰턴 헤스턴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대스타는 아니었지만 연극과 영화, 애니메이션 더빙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1960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던 맥도웰은 배우와 감독, 제작, 성우 등 영화 관련 일은 물론이고 사진작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지난 1998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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