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만큼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잘하고 싶었어요."

2006년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로 KIA 타이거즈에 지명되어 20019년까지 소속팀 선수로 뛰었던 박경태(34‧좌투좌타)는 지금도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최고 구속 150km를 뿌리는 좌투수로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주변의 기대에 걸맞는 성적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말도 안되게 못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팬들은 박경태라는 선수에게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통산 233경기 269이닝 동안 4승 20패 15홀드 평균자책점 6.42 탈삼진 208개를 기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분명 팀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던 선수다. 다만 더 보여줄게 많았음에도 거기에 미치지 못한 것이 수많은 안티 팬들을 양산한 이유다.

박경태도 알고 있다. 이른바 팬들에게 희망 고문을 종종 안겨줬던 탓에 입에 많이 오르내렸고 그 결과 그보다 더 잘했던 어지간한 선수들보다도 이름값(?)이 높다. 특유의 캐릭터로 인해 '티벳 여우', '박경태러리스트', '곁애' 등 다양한 별명으로도 불렸다.

특히 중요한 순간에 이른바 불을 질렀던 경기가 많았던 탓에 '박경태러리스트'라는 닉네임은 '진해수소폭탄', '휘발유동훈', '한기주유소' 등과 함께 KIA팬들 사이에서 방화범의 대명사같은 이름으로 남아있다. 워낙 전국적으로 열성 팬이 많은 팀인지라 유달리 관심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KIA 소속 선수들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경태는 KIA 원클럽맨으로 커리어를 마친게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무조건 비난만 쏟아졌던 것이 아닌 잘 던졌을 때는 사랑도 많이 받았고 무엇보다 KIA라는 팀에서 뛰었기에 성적에 비해 더 높은 이름값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그다. 이를 입증하듯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기대주들이 뽑히면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KIA소속 루키들을 분석하고는 한다.

여전히 야구와 팬들을 사랑하기에 BJ로, 유투버로 맹활약하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야구 교실까지 오픈한 천상 야구인 박경태를 파워인터뷰가 만나보았다.

 
 박경태는 올해초 야구 교실을 오픈했으며 유투버로도 꾸준하게 활약중이다.

박경태는 올해초 야구 교실을 오픈했으며 유투버로도 꾸준하게 활약중이다. ⓒ 박경태 제공

 
 BJ에 유투버, 야구교실 운영까지
 
- 어떻게 지내십니까?
"전북 군산 지역에 레슨장을 오픈했구요. 유투브 채널도 꾸준히 운영하는 등 나름대로 이것저것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인천에서 초중고를 나오셨고, 선수 시절을 보낸 KIA 역시 광주 쪽에 있는데 전북 군산에 야구 교실을 차린 이유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수도권은 물론 전남 순천 쪽까지 여기저기 알아봤어요. 광주나 인천 쪽으로 갔으면 좀 더 편했을 수도 있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지금은 많이 줄었으나 군산은 과거 '역전의 명수' 소리도 들었고 야구의 메카같은 의미가 있는 곳이잖아요. 초창기 타이거즈 스타들도 대부분 군산 쪽에서 나왔구요. 둘러보니까 사회인 야구하시는 분들은 많은데 레슨장 같은 곳이 눈에 잘 안띄더라구요. 기본기가 부족한 분들도 많으시고 해서 이곳에서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불어 군산 쪽에서 여전히 야구 인재들은 많이 나오는데 크면서 다른 도시로 가버리는 현실이 조금 슬프게 느껴지더라구요. 제가 태어난 고향이 군산이라서 더 크게 와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레슨장을 만들어 놓으면 지역 유망주들이 다른 곳으로 유출되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 최근에 주로 안경을 끼고 생활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시력이 많이 떨어지신 건가요? 아님 패션 용도? 안경이 잘 어울리는 것 같기는 합니다.
"안경은 원래 꼈었어요. 선수 시절에는 주로 렌즈를 착용했었죠. 눈이 나쁜 줄 몰랐는데 데뷔전 때 공을 던지는데 잘 안보이더라구요. '아…, 내가 눈이 나쁘구나' 그때 알았죠. 그러다가 안경을 쓰고 던졌는데 너무 불편하더라구요. 그래서 시합 때는 렌즈를 주로 사용하고 평소에는 안경을 꼈습니다." 
 
 박경태는 보여준 성적에 비해 팬들 사이에서 이름값이 높았다.

박경태는 보여준 성적에 비해 팬들 사이에서 이름값이 높았다. ⓒ 박경태 제공

 
- 안지만에 이은 두 번째 야구선수 출신 BJ라고 들었습니다. 본래부터 BJ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우연히 BJ 하시는 분들을 알게 되었는데 나름 재미있구나 느끼게 되었어요. 특별한 의미는 없고 70%는 재미 삼아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야구라는 쪽이 좀 폐쇄적인 경향이 강해요. 최근에는 인터넷 방송이 활성화되어서 오픈도 많이 하는 추세지만 아무래도 빈도수가 적은 것도 사실입니다. 팬들하고 소통도 좀 부족하다고 할 수 있죠. 팬들이 궁금한 것이나 이런저런 부분들을 나누고 그런 과정이 참 재미있더라구요. 작년 1년은 열심히 했었구요. 지금은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야구 교실하고 유투버에 좀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 프로게이머 출신과 합방을 한 것을 비롯 첫 방송 컨텐츠로 <스타크래프트>를 선택하는 등 해당 게임을 많이 즐기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스타크래프트를 잘하지는 못해요. 중학교 때부터 취미 삼아 하던 정도에요. 우연히 인터넷 방송 쪽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스타크래프트 관련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되고 그런 것 같아요. 뭐, 좋은 경험이죠."
 
- 야구 관련 유투브 채널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특히 시즌 전 각팀 프리뷰나 신인 분석은 상당히 날카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더라구요.
"하핫…, 사실 별로 날카롭지는 않아요. 최근에는 바빠서 야구도 많이 못 보고 있어요. 팬분들이 날카롭다고 하는데 그 정도는 선수생활을 하신 분들이라면 가능한 수준이에요. 프로에서 투수까지 했던 사람이 그 정도도 못보면 안되죠. 아무래도 제가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하면서 알아듣기 쉽고 편하게 말해서 그렇지 않나 싶어요. 표현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경태는 현역 시절 자신의 별명중 하나인 '티벳 여우'를 야구 교실 마크로 내세웠다.

박경태는 현역 시절 자신의 별명중 하나인 '티벳 여우'를 야구 교실 마크로 내세웠다. ⓒ 박경태 제공


 - 선수 시절 어떤 별명들로 불리셨는지 잘 알고 계시죠? '박경태러리스트tv'라는 유투브 채널명을 보니 아예 가장 유명했던 별명으로 이름을 지으신 것 같더라구요. 거기에 야구 교실 캐릭터도 사막 여우구요.
"제가 좀 별명이 많았죠. 그중에서 티벳 여우나 박경태러리스트가 유명한 편이었구요. 선수 시절에도 별명 같은 것으로 기분 나쁘고 그런 적은 전혀 없었어요. 평생 야구 해도 저처럼 별명 하나 못 가진 선수도 많은데 외려 감사했죠. 관심이잖아요. 태러리스트라는 것도 상대 팀에게 잘 던지면 상대 팀에게 태러리스트인 것이고, 못 던지면 우리 팀에게 태러리스트인 것이잖아요.(웃음)"
 
파란만장했던 선수 생활
 
- 야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음, 야구는 아버지가 그냥 글러브하나 주시고 야구부에 던져 놓으셨어요(웃음). 키 크고 왼손잡이라고. 사실 야구하기 전까지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쯤 갑자기 부르셔서 '이제부터 야구해' 그렇게 된 것이죠. 사실 저는 운동을 잘못해요. 크게 좋아하지도 않았구요. 그런데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더니 동창들은 제가 운동을 잘했다고 하더라구요. 이게 기억의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제가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이유도 작용했을 듯 싶구요."
 
- 감독님보다 잘한 선수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유독 관심을 많이 받았던 케이스에요. 인지도도 상당했구요.
"그것은 저도 인정해요. 야구를 했던 것에 비해서 저를 아시는 분들이 많았죠. 평생 감사하게 생각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관심의 크기만큼 비난도 많이 받으셨어요.
"박명환 선배 방송에서도 얘기한 부분인데요. 성적 가지고 뭐라고 하시는 것은 기분 안 나빠요.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이 그런 말도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죠. 그런데 선을 넘어서 가족 욕을 하거나 그러면 상처가 되기도 해요. 성격이 조금 변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였는데, 어느날 어머님께서 저 몰래 야구장을 오신거에요. 인천 원정으로 기억되요. 저는 몰랐어요. 오신줄. 그때 어떤 팬분께서 어머님께 '선수 어머님이세요? 누구 어머님이신가요?'하고 물어봤나봐요.

며칠 후 우연히 어떤 커뮤니티를 봤는데 '박경태 엄마는 아들이 창피해서 엄마라고 말도 못한다' 그런 글이 올라왔더라구요. 그때가 2009년도였는데 적지 않게 상처도 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방송 놀러온 팬분들께서 당시 악플같은 것 증거로 남겨놓았더라면 떼돈 벌었겠다고 우스갯소리도 하시고 그러셨어요. 지금은 뭐 어지간한 것은 신경 안 쓰는 것 같아요." 
 
 박경태는 KIA 원클럽맨으로 프로생활을 보낸 것이 인생에서 가장 기쁜일 중 하나라고 말한다.

박경태는 KIA 원클럽맨으로 프로생활을 보낸 것이 인생에서 가장 기쁜일 중 하나라고 말한다. ⓒ 박경태 제공


-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그 귀한 좌완 파이어볼러셨어요. 한창때 최고구속이 150km를 넘나들 정도였는데, 기대만큼 성적이 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좀 이상했어요. 선수 시절에 공황장애도 겪고 그러다 보니까 심리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롯데로 간 (안)치홍이랑 친했는데 '아침에 얼굴 표정 보면 형 그날 기분을 바로 알겠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친하면서도 얼굴이 어두운 날은 말 걸기도 어려웠나봐요. 그 정도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많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별다른 일이 없었는데도, 하루는 기분이 좋았다가 하루는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가 막 그랬어요.
 
스트레스가 많았죠. 저는 프로가 돼서 1군에서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하게된 것이 처음으로온 스트레스였어요. 저는 사실 프로선수는 생각도 안하고 있었어요. 중고등학교 친구가 메이저리그로 간 류현진이다보니까 '야구는 이정도로 잘하는 선수들이 하는것이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었죠. 막연하게 나는 선생님이나하자고 미래 설계를 했죠. 하지만 좋게 잘 풀려서 지명을 받고 프로에 오게됐는데 욕도 먹어보고 선배님들에게 갈굼도 좀 당하고 그러다보니까 갑자기 공황장애같은게 오더라구요."
 
- 좌투수인데 좌타자는 잘 못막고 오히려 우타자를 더 잘 상대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와서 하는 말인데, 제가 1군에 올라올 때 직구 말고는 제대로 던지는 구질이 없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투수로 전향해서 경기를 정말 많이 뛰지 못했어요. 1학년은 아파서 통째로 학교 안가고 2학년 때 3~4경기인가 밖에 던지지 못했어요. 이후 프로 1군에 올라가기 전까지 다 합쳐서 50~70경기밖에 뛰지 않았을거에요. 투수로서 경험 자체가 너무 적었죠.

그러다 보니까 변화구를 던지지 못하고 직구 하나만 보고 1군에서 뛰게 된거에요. 우타자같은 경우는 몸쪽 직구만 잘 던져도 어느 정도 승부가 되요. 하지만 좌타자는 바깥쪽 직구만으로는 상대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좌타자들이 쉽게 쳤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나중에는 좀 비슷해졌을걸요(웃음)."
 
- 선동열 전 감독님께서 용돈까지 준 적이 있을 정도로 많이 아꼈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용돈 개념은 아니구요. 스프링캠프 때 연습경기를 해서 거기서 잘한 투수, 야수 한명 씩을 뽑아서 주는 식이에요. 쉽게 말하면 금일봉 같은거죠. 그것을 감독님께서 처음오셨을 때 자주 받았던 기억이 나요."
 
- 그냥 꾸준히 못하면 관심도 없었을거에요. 연습경기 등에서 매우 잘해서 기대치가 쭉 올라갔다가 거기에 미치지못하니까 실망하는 팬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기복이 심했죠. 갑자기 좋은 구위로 기대를 하게 했다가 제구 난조로 고생하고, 또 힘들겠다하는 순간에 한번씩 잘하고, 그런 패턴이 많아서 팬분들을 헛갈리게 했던 것 같아요.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지않아도 얼마 전에 유투브 라이브 방송하면서 팬분들에게 사과했습니다. '저도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미안하다'고요(웃음)."
 
- 2013 시즌에 62⅓이닝 평균자책점 4.48을 기록하며 드디어 터지는 듯 싶었다가 다음 시즌에 곤두박질쳤습니다. 부상이 있었던 것인가요?
"그때 같은 경우는요. 그동안 공황장애 등으로 힘들었다고 했잖아요. 그 시절에 선감독님께서 많이 관심을 가지시면서 도와주셨어요. 기량이 떨어져 있으면 2군으로 유배(?)도 보내시고, 그와중에 계속 신경 쓰시면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세세하게 배려를 해주셨어요. 그러면서 어느 순간 감독님에게 대한 믿음이 생각던 것 같아요. 그때는 인간불신 같은게 있었거든요.

'드디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투구도 더 좋아졌지 않나 싶어요. 당연히 성적도 다른 때보다 좋게나왔구요. 그렇게 해서 13년을 끝내고 14년을 들어갔는데 그때는 이미 어깨 쪽이 상태가 안 좋았었죠. 만약이라는게 있다면 '선감독님을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한번씩 해봤어요. 저에게는 은인 같은 분이시죠."
 
- 해설위원 쪽에도 관심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왠지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사실 축구나 그런 것은 해외시장도 넓고 길이 많잖아요. 하지만 야구는 정말 잘해서 메이저리그갈 것 아니면 국내서 일을 해야 해요. 그러다 보니 정해진 감독 자리, 해설 자리 등이 바늘구멍이 아닌가 싶어요. 아무래도 제가 이름값이 높은 편도 아니구요. 언젠가 연락이 한번 오기는 했어요. 전국 방송은 아니고 광주지역 방송 쪽에서요. 결국 최종에서 안 되어서 조금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 마지막으로 아직도 선수 박경태를 기억해주시는 야구팬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수로 뛰던 시절 기대를 충족시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도 정말 잘하고 싶었어요.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주세요(웃음). 솔직히 은퇴 후 KIA 타이거즈하고는 잘 안 엮이려고 했어요. 기분 좋게 떠나지도 못했구요. 하지만 저는 선수 생활의 전부를 KIA에서 했고 KIA가 아니었으면 박경태라는 이름도 없었을 것입니다. KIA팬 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언제나 잊지 못할 것입니다. KIA팬분들 그리고 다른 야구팬분들까지 모두 모두 건강하시고 언제나 좋은 소식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월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로테이션) / 월간 점프볼에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