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나 자매들 중 '서로 닮았다'고 하면 강하게 손사래를 치는 이들도 있는데,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자매는 필연적으로 닮을 수밖에 없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집에서 자며 같은 가정 교육을 받는 형제·자매들은 무의식 중에 서로 비슷한 행동을 하고 비슷한 버릇이나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이들의 생활환경은 크게 달라진다. 특히 한 명이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대학에 진학하거나 남자들의 경우 군대에 가게 되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생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형제·자매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면 어린 시절처럼 서로 닮은 점을 크게 찾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난 2005년 개봉해 전국 240만 관객(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현석 감독의 <광식이동생광태>는 로맨틱 코미디의 형식을 빌린 두 형제의 성장물이다.

영화 <광식이동생광태>는 외형만 보면 서로 닮은 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은연 중에 닮은 구석이 많은 두 형제의 불완전한 러브 스토리를 통해 관객들에게 많은 웃음과 의외의 감동을 전해준 수작이다.
 
 김현석 감독의 두 번째 장편 <광식이 동생 광태>는 전국 240만 관객을 모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

김현석 감독의 두 번째 장편 <광식이 동생 광태>는 전국 240만 관객을 모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 ⓒ MK픽처스

 
야구 버리고 흥행 얻은 충무로의 이야기꾼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이던 김현석 감독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해 이름을 알렸다. 김현석 감독은 자신의 시나리오에서 항상 야구에 관련된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시나리오 데뷔작 <사랑하기 좋은 날>에서는 여주인공 시정(지수원 분)의 직업이 야구장 장내 아나운서였고 각본과 조연출을 맡은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는 남자주인공 범수(임창정 분)의 직업이 야구 심판이었다.

김현석 감독은 연출 데뷔를 준비하면서 <공동경비구역 JSA>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는데 공교롭게도 <JSA>에서도 주인공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이 학창시절 야구선수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2002년 김현석 감독은 자신의 야구 사랑을 듬뿍 담은 장편 데뷔작 <YMCA 야구단>을 선보였다. 하지만 <YMCA 야구단>은 송강호와 김혜수, 고 김주혁, 황정민, 조승우로 이어지는 호화 캐스팅에도 서울관객 50만에 그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04년에도 야구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 우정 출연하며 야구 사랑을 드러낸 김현석 감독은 2005년 야구를 내려 놓고 영화 <광식이동생광태>를 연출했다. 사실 김주혁과 봉태규가 주연을 맡은 <광식이 동생 광태>는 <YMCA야구단>에 비하면 출연진의 무게감도 떨어지고 이야기도 단순했다. 하지만 소소한 재미가 듬뿍 담긴 <광식이 동생 광태>는 비수기인 11월에 개봉했음에도 전국 24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광식이 동생 광태>로 첫 흥행작을 만든 김현석 감독은 2007년 또 하나의 야구영화 <스카우트>를 만들었다. <스카우트>는 백상예술대상에서 시나리오상과 남우주연상(임창정)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지만 정작 흥행에서는 전국 31만 관객에 머물렀다. 하지만 김현석 감독은 다시 3년의 공백 끝에 선보인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시라노; 연애조작단>으로 270만 관객을 모으며 자신의 최고 흥행기록을 경신했다.

김현석 감독은 스릴러물에 도전한 <열한시>가 87만, 2015년 설날 연휴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던 <쎄시봉>이 170만 관객에 그치면서 슬럼프에 빠지는 듯했다. 하지만 2017년 나문희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전국 320만 관객을 동원했고 나문희 배우는 대한민국 3대 영화제(청룡·대종상·백상) 여우주연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이처럼 '이야기꾼'으로서 김현석 감독의 능력은 충무로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밀기만 하던 광식과 당기기만 하던 광태
 
 광식이는 7년 동안 짝사랑했던 윤경의 결혼식에서 '축가'로 최호섭의 명곡 <세월이 가면>을 불렀다.

광식이는 7년 동안 짝사랑했던 윤경의 결혼식에서 '축가'로 최호섭의 명곡 <세월이 가면>을 불렀다. ⓒ MK픽처스

 
연애를 하는데 가장 필요한 기술은 바로 '밀고 당기기'다. 남녀가 이른바 썸을 타기 시작하면 감정이 복잡해지기 마련인데 이 때 생기는 미묘한 심리전에서 승리해야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진 않지만 밀기만 하는 광식(김주혁 분)은 늘 짝사랑 밖에 하지 못하고 당기기만 하는 광태(봉태규 분)는 온전한 사랑을 하지 못한다.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 광식은 풋풋한 신입생 윤경(이요원 분)을 짝사랑하지만 고백도 못하고 윤경은 친구(김일웅 분)와 사귄다. 7년 후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윤경과 재회한 광식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등 다시 윤경과 잘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차례 잡았다. 하지만 학교 내에서 '평화유지군'으로 불리던 광식은 한 번도 여자에게 먼저 다가간 경험이 없었고 이번에도 윤경에게 결정적인 고백의 한마디를 날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윤경이 마냥 답답하게 철벽을 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윤경은 밸런타인데이때 광식에게 초콜릿 바구니를 전달하며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운명의 초콜릿은 만취한 광태의 배달 사고로 광식이 아닌 일웅(정경호 분)에게 전달됐고 결국 광식은 끝까지 윤경을 잡지 못했다. 그리고 김현석 감독은 윤경의 명대사를 통해 당기는 법을 모르는 미련한 남자들에게 따끔한 충고의 말을 던졌다.

"여자는 짐작만 가지고 움직이지 않아요."

답답한 형 광식에 비해 동생 광태는 연애 경험이 비교적 풍부한 귀여운 바람둥이다. 광태는 우연히 출전한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경재(김아중 분)에게 첫 눈에 반하고 귀여운 구애작전을 벌인다. 경재 역시 그런 광태가 싫지 않았고 두 사람은 빛의 속도로 발전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광태의 당기기 작전이 '정답'으로 보이지만 광태는 경재를 그저 '잠자리 파트너'로만 여겼고 경재는 그런 광태의 마음과 행동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경재는 광태에게 이별을 통보하며 "나, 너랑 추억 없어"라는 말로 광태의 철없는 행동들에 일침을 가한다. 광태는 쿨하게 이별을 받아 들이지만 우연히 경재가 좋아하던 예술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이 경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광식은 윤경과 함께 왔던 바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광태는 경재와 재회하면서 두 형제의 사랑 이야기는 여느 로맨스 영화들처럼 행복하게 마무리된다.

<광식이 동생 광태> 이후 승승장구한 김아중
 
 <광식이동생광태>에서 경재를 연기한 김아중은 차기작 <미녀는 괴로워>를 통해 일약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광식이동생광태>에서 경재를 연기한 김아중은 차기작 <미녀는 괴로워>를 통해 일약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 MK픽처스

 
이요원과 김아중은 두 주인공 광식이와 광태의 상대 역으로 출연했다. 이요원은 <푸른 안개>, <고양이를 부탁해> 등 20대 초반부터 주연을 맡으며 자리를 잡은 배우였지만 당시 신인이던 김아중에겐 <광식이동생광태>가 실질적인 영화 데뷔작이었다. 김아중은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화끈하고 쿨한 성격을 가진 제본가 경재를 무난하게 소화했고 청룡영화제와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후보에 오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광식이 동생 광태> 이후 일일드라마 <별난 여자 별난 남자>를 통해 인지도를 끌어올린 김아중은 2006년 <미녀는 괴로워>로 일약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영화 <나의 PS 파트너>와 <캐치미>, <더킹>, 드라마 <싸인>, <펀치>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김아중은 현재 김무열,서강준과 함께 신작 드라마 <그리드>를 촬영하고 있다(<그리드>는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꼽히는 디즈니플러스에서 제작하는 작품이다).

지금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먹깨비1'이자 흉부외과 김준완 교수로 더 유명한 배우 정경호는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광태의 절친이자 광식의 사진관 직원 일웅을 연기했다. 광태의 실수로 인해 본의 아니게 광식이 짝사랑하는 윤경을 빼앗아가는 역할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인기가수를 연기했던 정경호는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도 지누션의 <전화번호>, JK김동욱의 <미련한 사랑>을 매우 유창하게 부른다.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 연기자는 바로 의동을 연기한 김형민이다. '잠실본동 나라를 걱정하고 풍류를 사랑하는 청년들의 모임'에서 가장 열심히 활동하는 의동은 영화가 진지해 지는 순간마다 유쾌한 농담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광식이동생광태>가 데뷔작이었던 김형민은 <에덴의 동쪽>,<천추태후>,<로맨스가 필요해 시즌1> 등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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