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회사 넷플릭스에서 무려 83개국 1위를 달성한 화제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게임들 가운데 시청자들을 가장 쫄깃하게 만들었던 게임은 단연 '줄다리기'였다. 특히 성기훈(이정재 분) 팀이 패배의 위기에서 조상우(박해수 분)의 기지로 앞으로 세 발 걸어간 장면에서 끊어진 4회 엔딩 장면은 전 세계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나마 한 번에 전 에피소드가 모두 공개된 <오징어게임>에서는 곧바로 다음 회차를 이어서 시청하면 되지만 주 1, 2회 방송되는 한국 드라마에서는 가장 궁금해지는 순간에 이야기가 끊어지는 게 '일상다반사'다. 지난 2005년에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에서도 마지막 장면에서 조커 카드가 등장하면서 후속편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의 최대 라이벌 조커가 등장할 것임을 관객들에게 예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창작물에서 갈등이 고조되거나 새로운 갈등이 등장하는 시점에 에피소드를 끝냄으로써 시청자와 관객, 독자들의 궁금증을 극대화하는 연출기법을 '클리프행어'라고 한다. 클리프행어는 밧줄이나 절벽에 매달린 자를 뜻하는 단어로 생사의 기로, 중대한 위기에 봉착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클리프행어>는 지난 1993년 할리우드 최고의 근육질 스타 중 한 명인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산악 액션영화의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클리프행어>는 서울에서만 100만 관객을 넘기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클리프행어>는 서울에서만 100만 관객을 넘기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 (주)동아수출공사

 
실베스터 스탤론을 슬럼프에서 건진 영화

<록키>와 <람보> 시리즈로 유명한 실베스터 스탤론은 <터미네이터> <코만도>의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함께 1980~199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근육질 스타다. 배우로 데뷔하기 전부터 이미 세계적인 보디빌더로 명성을 떨치던 슈왈제네거와 달리 스탤론은 유아시절 의료사고로 인해 언어장애와 안면신경마비라는 배우에게는 치명적인 약점, 여기에 오랜 무명생활을 극복하고 최고 스타의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단역 생활을 전전하며 생활고에 시달리던 스탤론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영화사에 돌렸는데 그 시나리오가 영화로 제작되면서 극적인 반전을 맞았다. 스탤론의 오늘이 있게 한 영화 <록키>였다. 가난한 복서의 성공 스토리를 다룬 <록키>는 1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져 북미에서만 무려 1억 17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렸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록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 편집상을 휩쓸었다.

스탤론은 이후 <록키>의 속편들과 <람보> 시리즈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할리우드 최고의 액션스타로 등극했다. 하지만 루저의 근성 있는 투쟁을 현실적으로 그려 낸 <록키> 1편 이후 스탤론의 영화들은 점점 자극적으로 변했다. 결국 스탤론은 <록키5>와 <오스카> <엄마는 해결사>가 연속으로 흥행에 실패하며 슬럼프에 빠졌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케빈 코스트너 같은 지적인 이미지의 배우들이 부상하면서 스탤론의 전성기는 일찍 저무는 듯했다.

그렇게 위기에 빠진 스탤론을 구한 작품이 바로 레니 할린 감독의 <클리프행어>였다. 할리우드에서도 흔치 않은 '산악 액션'을 표방한 <클리프행어>는 7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2억 55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수익을 올렸다. 특히 국내에서는 서울에서만 무려 111만 관객을 동원하며 <쥐라기 공원>(서울 106만)을 따돌리고 1993년 관객동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영화관입장원 통합전산망 기준).

<클리프행어> 이후 스탤론은 북미보다는 주로 해외에서 더 높은 티켓파워를 과시했다. 실제로 <스페셜리스트>와 <저지드레드> <데이라이트> 등 스탤론의 1990년대 작품들은 대부분 북미보다 해외에서 더 좋은 성적을 올렸다. 1990년대 후반부터 또 한 번의 슬럼프를 겪었던 스탤론은 2006년 또 다른 자아와도 같은 <록키 발보아>를 선보여 세계적으로 1억 55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다(다만 국내에서는 전국 관객 19만으로 흥행 참패했다).

스탤론은 2010년 제이슨 스테넘, 아놀드 슈왈제네거, 브루스 윌리스, 미키 루크, 이연걸 등 1980~1990년대 액션스타들을 집결시킨 <익스펜더블> 시리즈 세 편을 통해 세계적으로 8억 달러에 가까운 흥행성적을 올리며 건재를 과시했다. 2017년에는 마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에서 우주범죄조직 라바저스의 리더 스타카르 오고르드를 연기하며 색다른 카리스마를 뽐내기도 했다.

록키산맥에서 벌이는 화려한 액션의 향연
 
 실베스터 스탤론의 액션영화들은 1990년대 들어 북미보다 해외시장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액션영화들은 1990년대 들어 북미보다 해외시장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주)동아수출공사

 
보통 가수들은 콘서트에서 자신의 최고 히트곡을 늦게 배치시킨다. 자신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라이트팬'들도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게 하려는 전략이다. 영화에서도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거나 배우의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은 최대한 뒤로 배치해 관객들의 긴장감을 서서히 증폭시킨다. 그런 점에서 보면 <클리프행어>는 영화의 기본적 '완급조절'에 실패한 작품이다. 관객들의 뇌리에 박힌 최고의 명장면을 오프닝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로키 산맥의 구조대원 게이브(실베스터 스탤론 분)는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인 할(마이클 루커 분)의 여자친구 사라(미첼 조이너 분)에게 '구조대원체험'을 시켜주다가 줄이 풀려 사라를 위험에 빠트린다. 게이브는 사력을 다해 사라를 구하려 하지만 실베스터 스탤론의 우람한 근육도 아찔한 깊이의 록키산맥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사라는 장갑이 벗겨지면서 산맥 밑으로 떨어져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다.

시간이 흘러 미 재무성의 현금 수송기 납치사건에 연루된 게이브는 인질로 잡힌 할 대신 에릭(존 리스고 분) 일당과 돈가방을 놓고 '술래잡기'를 한다. 게이브는 산의 구조를 잘 알고 있어 유리한 듯하지만 에릭 일당에게는 인질도 있고 언제든지 자신과 인질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도 있다. 심지어 게이브에게는 사건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옛 애인 제시(재닌 터너 분)까지 있었다.

하지만 전직 록키이자 람보였던 게이브는 일당백의 활약으로 에릭 일당을 차례차례 괴멸시킨다. 결국 악당 중에서 최후의 2인이었던 트래버스(렉스 린 분)는 광기에 휩싸여 총을 난사하다가 상의 탈의 후 물 속으로 숨은 게이브의 총에 맞고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대부분의 액션영화가 그렇듯 <클리프행어>도 주인공 게이브가 제시와의 사랑, 할과의 우정을 동시에 되찾으며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클리프행어>를 연출한 레니 할린 감독은 1988년 <나이트메어4>, 1990년 <다이하드2>를 연출했다가 1993년 <클리프행어>를 통해 일약 스타감독으로 떠올랐다. 1990년대 중반에는 옛 아내 지나 데이비스와 함께 <컷스로트 아일랜드> <롱키스 굿나잇>같은 대작영화들을 만들었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할린 감독은 지난 2001년 실베스터 스탤론과 8년 만에 재회해 레이싱 영화 <드리븐>을 선보이기도 했다.

영웅의 탄생을 위해 필요한 악당들의 희생
 
 <클리프행어>의 빌런 존 리스고는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여러 시상식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베테랑 배우다.

<클리프행어>의 빌런 존 리스고는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여러 시상식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베테랑 배우다. ⓒ (주)동아수출공사

 
영화 속에서 영웅들이 돋보이기 위해서는 악역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올드보이>의 이우진(유지태 분)이나 <어벤저스>의 타노스(조슈 브롤린 분)처럼 악역들도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주인공 만큼 인기를 얻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고로 악당은 돈에 집착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눈이 뒤집힌 채 뛰어 들어야 한다. 바로 <클리프행어>에 등장하는 악당들처럼 말이다.

FBI에도 이미 블랙리스트에 등록된 냉철한 악당의 리더 에릭 쿼렌 역은 미국 시트콤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과 드라마 <덱스터> 시리즈, 그리고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에도 출연했던 성우 겸 배우 존 리스고가 맡았다. "1명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100만 명을 죽이면 정복자가 되지"라는 지극히 악당스러운 대사를 날리는 에릭은 최후까지 게이브와 맞서지만 최종 보스답게 헬기에서 추락해 가장 잔인한 최후를 맞는다.

일당 중 유일하게 돈가방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레이더(?)의 암호를 알고 있는 트래버스는 처음부터 에릭의 부하는 아니었지만 돈 때문에 계획에 참여하는 일종의 '용병'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에릭과는 시종일관 의견충돌을 일으키며 대립각을 세운다. 트래버스를 연기한 배우 렉스 린은 <클리프행어> 후에도 레니 할린 감독의 차기작 <컷스로트 아일랜드>와 <롱키스 굿나잇>에도 나란히 출연했다.

<클리프행어>에서 가장 표현하기 힘든 캐릭터는 마이클 루커가 연기했던 할 터커였다. 할은 애인 사라를 죽게 한 게이브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게이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돕는 복합적인 캐릭터다. <폭풍의 질주> <JFK> <본 콜렉터> <점퍼>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던 루커는 2014년과 2017년에 개봉한 마블의 인기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 2편에서 욘두 역으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클리프행어 레니 할린 감독 실베스터 스탤론 존 리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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