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의 안산과 김제덕, 유도의 안창림과 조구함, 펜싱의 김준호와 윤지수, 수영의 황선우, 탁구의 신유빈, 근대5종의 전웅태 등은 2020 도쿄 올림픽을 통해 스포츠 팬들의 큰 사랑을 받은 선수들이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 퍼졌던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해 도쿄 올림픽이 끝내 취소됐다면 이들은 여전히 일반 대중들에겐 낯선 아는 사람만 아는 '그들만의 스타'로 머물렀을지 모른다.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지만 이번 도쿄 올림픽을 통해 스포츠 팬들을 가장 감동시켰던 종목은 다름 아닌 여자배구였다. 일본과 터키 등 배구 강국들을 차례로 꺾고 4강에 진출한 여자배구는 '김연경의 원맨팀'이라는 이미지를 깨고 선수단 전원이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실제로 여자배구 대표 선수들은 올림픽이 끝난 후 <런닝맨>과 <나 혼자 산다> <라디오스타>같은 굵직한 예능 프로그램들에 출연하기도 했다.

김연경을 제외하면 올림픽 이후 팬들에게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팀은 단연 IBK기업은행 알토스다. 올림픽 여자배구의 주역 김희진을 비롯해 김수지, 표승주를 보유한 기업은행은 단숨에 V리그 여자부를 대표하는 인기구단으로 떠올랐다. 이제 기업은행은 대표 선수들의 선전으로 얻은 관심을 이번 시즌 성적으로 바꿔 6시즌 연속 챔프전에 진출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한다.

라자레바 맹활약으로 3시즌 만에 봄 배구 진출
 
 기업은행의 스타 김희진은 도쿄 올림픽을 통해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기업은행의 스타 김희진은 도쿄 올림픽을 통해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2019년 이정철 감독(SBS스포츠 해설위원)이 물러난 후 김우재 감독이 부임한 기업은행은 2019-2020 시즌 27경기에서 8승 19패로 승점 25점에 그치며 6개 구단 중 5위에 머물렀다. 시즌이 조기 종료되지 않았다면 두 시즌 연속 봄 배구 진출에 실패했을 부진한 성적이었다. 외국인 선수 어도라 어나이가 시즌 중반부터 태업에 가까운 플레이로 일관하다 시즌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난 게 결정적이었다.

어나이와의 재계약을 포기한 기업은행은 작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었다. 그리고 기업은행은 190cm의 신장과 1997년생의 젊은 나이, 그리고 뛰어난 운동능력을 겸비한 러시아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안나 라자레바를 지명했다. KGC인삼공사의 발렌티나 디우프, GS칼텍스 KIXX의 메레타 러츠처럼 기업은행도 어려운 순간에 믿고 올려줄 수 있는 확실한 주공격수가 생긴 셈이다.

FA시장에서는 이다영(PAOK)의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이적 이후 자리를 잃은 조송화 세터를 영입했고 조송화 세터의 가세로 입지가 좁아진 이나연 세터를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해 신연경 리베로를 영입했다. 흥국생명 시절까지 주로 윙스파이커로 활약했던 신연경 리베로는 주전으로 활약한 첫 시즌 디그 2위(세트당 5.65개)와 수비 3위(세트당 7.42개)에 오르며 성공적인 변신을 알렸다.

1순위 외국인 선수 라자레바의 활약도 '명불허전'이었다. 29경기에서 43.41%의 성공률(3위)을 기록한 라자레바는 867득점을 올리며 디우프에 이어 득점 부문 2위에 올랐다. 특히 라자레바는 전위뿐 아니라 후위에 있을 때도 45.08%의 성공률로 후위 공격 1위에 오르며 '전천후 공격수'의 위용을 뽐냈다. 하지만 라자레바는 시즌이 끝난 후 터키리그의 페네르바흐체 SK와 계약하면서 이번 시즌 V리그 트라이아웃 신청서를 접수하지 않았다.

기업은행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 3위로 세 시즌 만에 봄 배구 무대를 밟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쌍둥이 자매가 빠지며 전력이 크게 약화된 흥국생명에게 1승2패로 패하면서 통산 7번째 챔프전 진출이 좌절됐다. 라자레바가 3경기에서 평균 24.67득점을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리시브 효율이 24.78%에 그치면서 제대로 공격을 세팅할 수 없었다. 결국 흥국생명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은 김우재 감독이 기업은행 선수들을 이끈 마지막 경기가 됐다.

화려한 공격력과 비교되는 불안한 리시브
 
 지난 시즌 과감한 공격력으로 가능성을 보였던 육서영은 이번 시즌 풀타임 주전에 도전한다.

지난 시즌 과감한 공격력으로 가능성을 보였던 육서영은 이번 시즌 풀타임 주전에 도전한다. ⓒ 한국배구연맹

 
김우재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한 기업은행은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와 인삼공사의 감독을 역임했던 서남원 감독을 3대 감독으로 선임했다. 서남원 감독은 아직 챔프전 우승 경험은 없지만 2014-2015 시즌 도로공사를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인삼공사 시절에도 과감한 리빌딩을 통해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던 V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지도자다. 구단과 팬들도 서남원 감독의 풍부한 '경험'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라자레바가 터키리그로 진출하면서 새 외국인 선수를 선발해야 했던 기업은행은 1순위 지명권을 품었던 작년과 달리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6순위로 밀려났다(도로공사가 켈시 페인과 재계약하면서 실질적으로는 5순위). 기업은행은 이탈리아 2부리그에서 활약했던 레베카 라셈을 지명했다. 한국인 할머니를 둔 라셈은 근성과 체력, 좋은 신장(191cm)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어필하며 할머니의 나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기업은행이 이번 시즌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2018-2019 시즌 440득점에서 2019-2020 시즌 203득점, 2020-2021시즌 200득점으로 성적이 떨어진 '국가대표 라이트' 김희진의 공격력이 살아나야 한다. 외국인 선수 라셈과 동시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번 시즌에도 센터로 나설 것이 유력하지만 김희진이 기업은행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고려하면 2018-2019 시즌에 버금가는 수준의 공격력을 반드시 되찾을 필요가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 시즌 표승주가 27.2%, 김주향이 28.4%, 육서영이 30.22%의 리시브효율에 그치며 팀 리시브 효율에서 6개 구단 중 최하위(30.07%)에 머물렀다. 라자레바 같은 확실한 거포가 없는 이번 시즌 기업은행이 또 다시 리시브 불안에 시달린다면 조송화 세터는 더욱 고전할 수 밖에 없다. 공격형 윙스파이커가 즐비한 기업은행이 실업무대에서 활동하던 수비형 윙스파이커 최수빈을 1년 만에 팀에 복귀시킨 이유다.

외국인 선수 라셈이 제 역할을 해준다면  김희진과 김수지, 표승주, 김주향, 육서영으로 이어지는 기업은행의 공격력은 그 어느 팀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리그 최하위 수준이었던 서브 리시브가 향상되지 않는다면 기업은행의 공격력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선수들의 기본기와 근성, 프로의식을 강조하는 지도자 서남원 감독은 과연 기업은행을 과거의 명문팀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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