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회찬 6411> 포스터 이미지

영화 <노회찬 6411> 포스터 이미지 ⓒ 시네마6411

 
2018년 7월 23일 고(故)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다. 이것저것 기념사업과 추모행사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2021년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고인에 대한 전기 다큐멘터리로 본 작품, <노회찬6411>이 첫 선을 보였고, 원래 개봉을 고려했던 7월 3주기를 조금 넘겨 이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사회의 양당 독식 구도 중심 정치 지형에서 제3 정치세력의 특정한 결을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를 차지했던 고인의 위상으로 봤을 때 추모 영화는 당연히 나올법한 기획이다. 하지만 기대보다는 염려가 앞섰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역사 인물'을 다룬다는 것은 얼핏 보면 무척 흥미롭고 매력 있는 소재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관심가질 법한 인지도를 가진 이를 다룬다면 영화를 날로 먹는 것처럼 생각하기 딱 좋다. 하지만 역사 인물을 주역으로 삼는 전기영화란 창작자에겐 양날의 칼이요 독이 든 성배와 같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평범한 이를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무관심과 교환해 창작자는 표현에 있어 광범위한 재량과 자율성을 얻는다. 하지만 너무나 유명한 사람을 대상으로, 게다가 논쟁의 중심에 설 수 밖에 없는 직업인 유력 정치인의 일생을 영화로 옮긴다는 것은 그 주인공의 존재 자체가 스포일러일 수밖에 없을뿐더러, 영화의 언급과 표현 하나하나에 평소 주인공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어온 여러 사람의 감시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살얼음판도 이런 살얼음판이 없을 게다.
 
<노회찬6411>은 그런 고난이도의 조건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위키나 구글 검색만 해본다면 노회찬 의원의 생애에 관련된 방대한 분량의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문제는 형식적인 데이터를 나열하는 게 아니다. 고인이 남긴 발자취와 그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어떤 식으로 담아내고 어디에 초점을 둬 소개할 것인가가 핵심 관건을 이룬다.
 
적잖은 이들이 <노회찬6411>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고인과 여러 면에서 겹쳐져 보이는 상징성을 지닌 故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시즌2가 되지 않을까 예상했다.(제작사가 동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 예상치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실제로 완전히 그 예상을 벗어나기란 애초 불가능한 조건이긴 했다. 조선시대 식으로 표현하자면 3년 상도 끝나기 전에 이 영화는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고인의 공과 과를 평가하고 사회적/학술적 연구 결과를 고려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그리고 공동제작 단위로 고인의 업적과 유지를 계승하려는 목적으로 출범해 사업 중인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이 올라와 있기도 하다. 그 지점은 본 작품의 부정할 수 없는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남은 관건은 이 영화가 어떻게 고인을 미화하는데 그치거나 혹은 지지자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신파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주인공의 삶에서 어떻게 제대로 온전한 형태, 혹은 보여주고픈 이면을 끄집어낼 수 있는가? 에 관한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행한다. 이 영화를 만들려는 이들은 누구에게 그 숙제를 맡길 것인가 고심했을 테다.
 
해당 과제는 국내 다큐멘터리 계에선 보기 드문 형식인 '관찰영화'를 꾸준히 작업해왔던 민환기 감독이 떠맡았다. 지금까지 민환기 감독이 주로 진행해온 작업은 다양한 인물의 조명과 주변 관계들에 대해 관찰하는 시선의 카메라가 돋보였던 게 대부분이다. 인물을 다루더라도 저명인사나 특정개인을 중심으로 작업해온 적은 드문 편이다. 이런 감독과 너무나 잘 알려진데다 그 비극적 최후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했던 기억이 생생한 동시대 인물이 만나 <노회찬6411>은 탄생하게 된다.
 
<노회찬6411>의 기본 노선도
 
영화는 우리가 흔히 전기 다큐멘터리에 대해 기대하는 예상치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 전형성 안에서 작가적으로 확고한 포커스를 설정하고 그 구현에 집중한다.
 
우선 이 영화는 고인이 일생을 바쳤던 진보정치와 진보정당의 문제가 그의 개인적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전제를 고수한다. 그러하기에 영화 속에서 장년기 이후 노회찬의 삶은 철저히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한국 진보정당운동사의 총집 편처럼 통합적으로 처리된다. 주인공의 삶은 실제로도 그랬듯이 온전히 21세기 한국 진보정당의 흥망성쇠와 그대로 직결되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영화는 고인의 전 생애를 요약해 소개하지만 성장기 시절을 제외하면 진보정당 운동에 몸담기 전 노동운동가로서의 경력이나 민중당 이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기 전까지의 부침을 거듭해왔던 진보정당 이전 시절의 정치활동 시기는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적은 편이다. 대신에 비교적 관객들에게 친숙한 대중정치인 노회찬의 활동기라 할 2000년 민주노동당 출범 이후 죽음을 맞기까지 약 20년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그의 정체성에서 기본바탕이 된 노동운동가 시절과 '인민노련'에 관련된 비화는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년 방송분인 "한국의 진보를 말한다"에서 3부작으로 다뤄진 바 있다.)
 
1990년대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 이후 다들 운동현장을 떠나거나 '전향' 혹은 '변절'의 길을 걸을 때 왜 그는 그 길에 남았는지, 그리고 다들 불가능하다며 포기하거나 외면하던 진보정당 운동에 투신하고 끝끝내 버텼는지, 그리고 작은 성과와 이후 거듭되는 좌절과 실패 속에서도 어떤 유의미한 족적을 한국사회와 정치사에 남겼는지 등에 관한 고인의 발자취는 어마어마한 내용을 자랑한다. 민환기 감독은 그 난제 앞에 직면해 생전 고인의 활동과 고민 관련 가치와 의미를 거대한 역사화를 그리듯 틀을 짜고 조밀하게 결합해 배치한다. 그 지점에서 기본적으로 사적인 전기 다큐멘터리와 형식상 별반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내용면에서는 상당히 다른 스타일의 결과물이 탄생했다.
 
스타 정치인으로 불리며 통렬한 촌철살인 유머감각이 돋보였던 고인의 정치활동은 사회적으로 꽤 많이 알려진 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부분적으로는 익히 알고 있었더라도) 조각조각 분절되어 각 개인의 기억별로 파편화되어 있던 노회찬의 일생, 사회의 불합리와 기득권에 맞서 6411번 버스 승객들의 권리를 옹호하던 그 평생에 걸친 싸움이 본 작품을 통해 개별 요소 조합 후 통째로 재구성된다.
 
우리는 그가 평생을 바쳤던 미완의 프로젝트가 남긴 과제들을 이 영화를 통해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고인과 그가 몸담았던 진보정당 운동이 내딛은, 아직 너무나 미약하지만 후대에는 거대한 반 발짝으로 평가될 만한 업적들에 대해 성찰하고 되돌아보도록 자연스럽게 유도된다. 이는 고인의 생애를 반추하는 사적 체험이 영화를 통해서 당대 한국사회에서 노회찬과 진보정당 운동이 어떻게 인식되어야 하는가? 라는 공적 담론으로 변환되는 과정이다.
 
영화에는 고인의 대중정치인으로서의 활동 이후 결정적 국면들, 승차와 하차를 반복하던 주요 정거장 풍경이 시간 순서대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여러 번의 좌절 후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과 2002년 대선 대응, 2004년 최초의 원내 입성과 대중정치인으로서 노회찬의 탄생과정은 한국현대사에서 50년이 걸린 진보정당 운동의 약진을 바라보는 '벨 에포크'의 시절, 희망의 날들이다. 하지만 곧 진보정당의 가을이 찾아온다. 과거 사회운동의 한계를 딛고자 했던 진보정당 운동은 (영화를 만든 이들의 관점에 입각하면) 결국 그 과거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운동권 동창회'라 자조하는 '정파조직'에 의해 훼손된다. 이후 개별 정치인으로서의 시련과 모색, 재기와 낙마가 거듭 반복된다.
 
사실 노회찬과 그가 몸담은 진보정당이 2000년대 초반 이후 겪어왔던 십여 년의 부침이 본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지점이라 할 만하다. 고인의 인간적 매력을 추억하는 이들에겐 다소 당황스러운 전개일 테다. 감독은 노회찬 의원의 화려하고 친근한 스타성 대신에 그가 대중정치인으로서 구현하고자 했던 사회적 가치와 일생의 목표가 무엇이었나를 조명하는데 아낌없이 집중한다. 그런 면에서 <노회찬6411>은 명백히 <노무현입니다>의 후광 아래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으면서도 정치적 기획 측면에서 꽤나 본격파인 셈이다.
 
6411번 첫 번째 버스가 출발하다
 
영화는 그럼에도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으로 남을 테다. 고인을 둘러싼 수많은 정치적/사회적 쟁점을 치열하게 평가하며 그 공과를 다투는 작업을 기대한 이들이라면 아직 한참 더 기다려야 한다. 본래 역사 위인에 대한 온당한 평가는 역사적 토론과 교차검증이 끝날 때까지 한 세대는 족히 기다려야 하는 기획이기 때문이다. 노회찬 의원이 상징하던 진보정당의 특정한 어떤 흐름과 노선은 단선적으로 측량하기엔 너무나 그 범위가 넓고 폭이 깊은 사안이다.
 
민환기 감독 관찰영화 특유의 객관적 시선으로 보여주던 '맛'을 기다린 이들에겐 <노회찬6411>은 그 전개와 소재 측면에서 너무나 통속적인 스타일이다. 영화에는 예전에는 비교적 사용을 자제하던 감성적 음악이나 최루성 삽입장면들이 꽤나 들어가 있다. 관찰영화가 인위적 감정조작과 유도를 지양하는 특성이 강한 바, 감독의 평소 작업을 선호하던 이들이라면 실망을 표시할 수도 있겠다. 반대로 고인에 대한 개인적 추억과 감성적 신파를 원한 이들에겐 이 영화는 그럴 틈을 별로 주지 않아 반대 지점에 속한 관객들에게도 불만일 수 있다.
 
<노회찬6411>은 특히 중반부와 후반부를 연결하는 지점에서 개인의 추모 영화를 넘어 21세기 진보정당 역사의 주요 지점들을 요약 설명하는데 많은 역량을 할애한다. 하지만 몇몇의 장면에서는 꾹꾹 억제해왔던 감정 선과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장마철 댐 수문 풀 개방하듯 터뜨리고 한다. 제목에 영향을 준 '6411번 연설'이나 '50년 된 불판', '노회찬은 진박' 같은 풍자와 위트가 넘치던 고인의 입담은 물론, 그의 이른 죽음을 추모하는 손석희 JTBC 사장의 뉴스 클로징 멘트 클립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런 '결정적 순간'들을 그냥 넘기기란 참 어려운 노릇이다. 감독은 우리가 어떤 형태로 '노회찬'이란 이름과 그가 남긴 유산을 물려받아야 할지 숙제를 은근히 까다로운 구질로 던진다. 그 간절함에 애가 탈 수밖에 없을 이들의 갈증에 가끔씩 졸졸졸 한 모금씩 목만 축일 정도로 영화 속에서 감성을 자극해준다. 그때마다 그리움과 갈망은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노회찬'이란 인물에 대한 기록과 평가는 이제 막 출발점에 들어선 셈이다. 이 영화는 그 시작 부분에서 '마중물'이 되어 앞으로 계속 이어져야할 이 역사 인물에 대한 입체적 접근을 지원하는 무거운 역할을 짊어진 셈이다.
 
<노회찬6411>은 모두가 만족할 최상의 전기영화는 아니다. 민환기 감독의 영화 스타일과 다소 상이한 연출방식인지라 감독의 대표작으로 등극하기에도 뭔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왕도적인 표준과 중용을 유지하며 모범적인 접근법을 제시하는 작업 내용은 첫 출발점으로서는 균형과 관점 면에서 꽤나 준수하게 완성된 결과물이다.
 
故 노회찬 의원의 일생은 그가 전 생애를 바쳤던 프로젝트, 한국사회 변화를 향한 필사의 도전과 거의 전 부분에서 일치해왔다. 한 정치인의 언변이 고대의 예언자나 광산의 카나리아 같은 '징후' 경고와 진실을 꿰뚫는 통렬한 화살로 수많은 시민들을 때로는 통쾌하게, 때로는 뭉클하게, 가끔은 설레게 만들어 왔음을 우리는 잘 안다. 하지만 그 애도와 관심이 너무나 매력 넘치고 인간적이었던 정치인 노회찬에 대한 개인적 팬덤 차원의 추모가 되면 안 된다고 적어도 영화를 만든 감독은 확신을 가지고 설득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노회찬 의원에 대한 대중의 추모가 그 에너지를 고인이 평생을 고민하고 실천해왔던 미완의 숙제, 한국사회의 진보로 돌려야 함을 본 영화, <노회찬6411>은 6411번 버스노선 소개처럼 분명한 방향으로 제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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