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후반부에 접어든 MBC 드라마 <검은 태양>이 진실에 다가갈 듯하면서도 다시 멀어지는 '밀당식 전개'로 시청자들의 엇갈린 반응을 자아내고 있다. 12부작인 <검은 태양>은 지난주까지 벌써 전체 일정의 2/3를 돌아섰다. 주인 남궁민(한지혁 역)은 서수연(박하선)의 죽음 이후 국정원 퇴직자들로 구성된 사조직 '상무회'의 존재를 파악하고 내부 배신자로 의심되는 용의자들을 추격하는 내용이 그려지고 있다.

한지혁은 유제이의 지인이 죽기 직전 통화내역을 통하여 마지막 통화를 한 인물이 보안 번호를 사용하는 국정원 인사임을 확인한다. 한지혁은 전달받은 보안 번호로 해당 인물과 접촉하려다가, 약속 장소에서 의문의 차량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한지혁의 총격전으로 추돌 사고와 함께 의식을 잃은 운전자의 정체는 놀랍게도 상관인 강필호(김종태)였다.

다급히 강필호를 병원으로 옮긴 한지혁은 하동균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또다시 전달받는다. 영상 안에는 한지혁이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놀랍게도 일년전 사망한 팀원인 김동욱(조복래)을 배신자로 지목하고 있었다.

파트너 유제이는 숨은 흑막인 백모사(유오성)가 어쩌면 그녀의 실종된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미스터리를 안고 있다. 유제이는 국정원 실세인 이인환(이경영)으로부터 오래전 그녀의 아버지를 실종되게 만든 인물이 도진숙이라는 사실을 전해듣고 분노하여 그녀를 찾아가 총구를 겨눈 모습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MBC 드라마 <검은 태양>.

MBC 드라마 <검은 태양>. ⓒ MBC

 
<검은 태양>은 일 년 전 실종됐던 국정원 최고의 현장 요원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내부 배신자를 찾아내기 위해 조직으로 복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스파이 액션 블록버스터다. 무려 150억이 투입된 대작답게 장기간 시청률 부진에 허덕이던 MBC 드라마에서 오랜만에 시청률 상승세를 기록하며 지난 주에는 순간 최고 시청률 10.6%(닐슨코리아 제공, 수도권 기준)을 돌파할 만큼 인기를 모으고 있다.

본격적인 클라이맥스를 앞둔 가운데, 주연 배우의 남궁민의 섬세한 연기와 화려한 액션은 하드캐리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원래 연기폭이 넓은 배우지만 난이도가 높은 정통 스파이 액션물은 첫 도전임에도 남궁민은 카 체이싱 신을 비롯해 펜트하우스 액션 신, 어선 속 첫 등장 신 등에서 수위높은 액션신을 잘 소화해내며 '역시 남궁민'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진실을 추적하는 고독한 정보요원다운 한지혁의 불안하고 입체적인 감정을 표현해내는 데 있어서도 남궁민의 섬세한 연기력이 빛을 발한다.

<검은 태양>은 매회 화려한 액션신과 함께 엔딩마다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로 긴장감을 유발한다. 박하선이라는 주연급 배우가 투입되며 모두가 당연히 히로인으로 예상되었던 서수연의 충격적인 조기 퇴장을 비롯하여 강필호가 그녀의 숨은 연인이었다는 설정, 그동안 한지혁이 진실을 찾아갈 수 있게 이끌어준 '조력자'가 앙숙으로 여겨졌던 하동균이었고, 그에게 한지혁을 도와주라 지시한 인물은 바로 기억을 잃기전에 '과거의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 유제이와 백모사-도진숙의 의미심장한 관계, 한지혁의 팀원이었던 김동욱이 배신자였다는 결말 등 거의 매회 시청자들의 허를 찌르는 내용들이 이어지고 있다.

'일년전 사건'은 제자리 걸음
 
 MBC 드라마 <검은 태양>

MBC 드라마 <검은 태양> ⓒ MBC

 
다만 지나친 반전 중독증에 의존한 전개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충격효과를 따라가지 못하는 서사의 더딘 진행 속도, 익숙한 기시감이 아쉬움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태양>은 사실상 매회 새로운 인물과 떡밥(궁금증)을 추가하고 있지만 정작 핵심적인 '일년전 사건'의 진실은 8회가 되도록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궁금증은 제대로 해소해주지 못하면서 시종일관 여유없이 진지하고 무겁기만 한 고구마 스토리는 시청자들을 지치게 한다. 주인공의 기억상실이나 복수극같은 코드는 비슷하지만, 코믹함과 풍자가 가미되어 완급조절이 가능했던 <원더우먼>이나 <펜트하우스>에 비하여 아쉬운 대목이다.

반전 효과가 그만한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시청자들에게도 충분한 암시와 복선이 주어져야한다. 하지만 <검은 태양>은 철저하게 주인공인 한지혁 중심으로만 진행되기에 관객들은 이야기 전개에 대한 정보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그저 한지혁의 시점을 수동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함에도 정작 남궁민의 원맨쇼만 지나치게 돋보이고, 다른 인물들은 모호하거나 불친절하게 묘사된다. 미스터리와 반전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인물의 선악과 피아 구분을 모호하게 처리하려다 보니, 설명이 부족한 조연급 캐릭터들은 일관성이 떨어지거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너무 많아서 인물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극의 서사도 반전 효과를 제외하고 냉정히 보면 사실상은 간단한 이야기를 굳이 복잡하게 꼬아놓고 어렵게 풀어간다는 느낌이 강하다.

대부분의 장면들이 참신함보다는 '007'이나 '제이슨 본'시리즈 같은 기존 스파이물이 구축한 설정의 재탕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도 아쉽다. 장작 주인공 한지혁은 최고의 요원으로 설정되어있지만 극중 활약상은 정작 정보원 답게 영리하고 치밀하고 두뇌 플레이라기보다는,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힘과 운에 기대어 정면돌파하는 무모한 액션 히어로에 가깝다. 한지혁은 걸핏하면 함정에 빠지거나 자신의 신변을 대놓고 노출시키는 경솔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검은 태양>은 거의 매회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국정원 요원인 서수연을 백주대낮에 저격하고 망명을 노리는 북한 고위층도 단숨에 제거할 수 있는 흑막들이, 정작 가장 위험인물이자 아웃사이더인 한지혁만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화려하고 멋있는 액션에 치중하느라 개연성을 소홀히하는 것은 스파이 액션물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거대한 음모와 거듭된 반전으로 스케일만 키워놓고 정작 후반부에 벌여놓은 설정들을 제대로 수습할만한 내용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야기 전체가 용두사미가 될수도 있다.

<검은 태양>이 그럭저럭 볼만한 액션 연출과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미스터리 스파이물'로서만의 독자적 세계관과 완성도를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평하기에는 부족해보이는 이유다. 단 4회를 남긴 <검은 태양>은 이제는 새로운 반전이나 떡밥을 추가하는 것보다 그간의 이야기를 잘 회수하고 정리하는 데 주력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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