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과 관계없이 프로 스포츠에서 '안주(安住)'만큼 위험한 단어도 없다. 정상에 오른 팀은 정상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아쉽게 정상의 문턱에서 좌절한 팀들은 다시 정상에 오르기 위해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매 시즌 최고의 전력을 꾸려 최상의 경기를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그 팀을 꾸준히 응원하는 팬들에 대한 예의이자 프로 스포츠를 운영하는 팀이 가진 최소한의 의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추억의 거포' 몬타뇨 마델라이네와 김세영, 한유미( KBS N 스포츠 해설위원)가 활약하던 2011-2012 시즌 이후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KGC인삼공사는 정상에 오르기 위한 투자에 인색한 편이었다. 실제로 인삼공사가 프로 출범 후 작년까지 외부에서 FA를 영입한 것은 2007년의 김사니 세터(IBK기업은행 알토스 코치)와 2018년의 최은지(GS칼텍스 KIXX) 밖에 없었다(2011년 한유미는 사인앤 트레이드). 

이처럼 V리그 여자부에서 투자에 인색한 구단으로 유명한 인삼공사는 지난 4월 계약기간 3년에 총액19억5000만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해 FA 최대어로 꼽히던 지난 시즌 챔프전 MVP 이소영을 영입했다. 인삼공사가 창단 후 최대규모의 투자를 한 것은 고작(?) 5년 만에 봄 배구에 복귀하기 위한 게 아니다. 포지션 별로 좋은 선수들을 대거 보유하게 된 인삼공사는 내심 이번 시즌 정상을 노리고 있다.

한계가 분명했던 디우프의 '몰빵배구'
 
 인삼공사의 야전사령관 염혜선은 지난 도쿄올림픽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주전세터로 활약했다.

인삼공사의 야전사령관 염혜선은 지난 도쿄올림픽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주전세터로 활약했다. ⓒ 한국배구연맹

 
코로나 19로 시즌이 조기 종료된 2019-2020 시즌 인삼공사는 26경기에서 13승13패로 5할 승률을 기록하고도 6개 구단 중 4위로 시즌을 마쳤다. 득점왕을 차지한 이탈리아 출신의 외국인 선수 발렌티나 디우프(바토시니 포르티피시 페루자)가 팀 공격을 이끌며 맹활약했지만 연차가 적은 신예 선수들로 구성된 윙스파이커 자원들이 경험부족을 드러내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2019-2020 시즌이 끝나고 인삼공사의 목표는 분명했다. 외국인 선수 디우프의 재계약과 함께 FA자격을 얻은 팀 내 주력 선수들을 잔류시키는 것이었다. 자칫 외부 FA 시장으로 눈을 돌리다가 기존 전력들을 놓쳐 버리면 다가올 2020-2021 시즌 전체를 그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삼공사는 목표했던 대로 내부FA 오지영 리베로(GS칼텍스)와 한송이,염혜선, 채선아, 그리고 '전력의 반'으로 불리는 외국인 선수 디우프를 모두 붙잡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인삼공사는 컵대회에서 성공적인 센터변신으로 시즌을 기대케 했던 정호영이 개막전에서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불운을 겪었다. 여기에 최은지와 고의정,고민지,이예솔,이선아 등으로 구성된 윙스파이커들도 한계가 뚜렷했다. 디우프가 두 시즌 연속 득점왕에 오르며 분전했지만 특정선수 한 명이 팀 공격의 50.6%를 책임지는 것은 정상적인 시즌 운용이라고 할 수 없었다. 득점 1위 디우프가 성공률에서는 6위(41.06%)에 그친 이유다.

실제로 인삼공사는 지난 시즌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에게만 4승2패로 우위를 점했을 뿐 나머지 3개 팀에게는 승패 마진에서 모두 열세를 보였다. 특히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를 상대로는 정규리그에서 6번 만나 1승5패로 절대열세에 머물렀다. 지난 시즌까지 6개 구단 밖에 없었던 여자부에서 특정팀을 상대로 1할대 승률에 머문다면 결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이처럼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2017-2018 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2019-2020 시즌 제외)으로 봄 배구 진출에 실패한 인삼공사에서 팬들에게 위안을 준 부분은 백전노장 한송이의 '회춘'이었다. 인삼공사 이적 후 윙스파이커와 센터를 오가며 자기 포지션을 찾지 못하던 한송이는 지난 시즌 속공 9위(40.16%), 블로킹 1위(세트당 0.70개)를 기록하며 11시즌 연속 블로킹 1위 자리를 사수했던 양효진(현대건설)의 아성을 무너트렸다.

'챔프전 MVP' 이소영 영입, 더 높은 곳을 노린다
 
 인삼공사는 우승도전을 위해 역대 가장 큰 규모의 투자를 통해 지난 시즌 챔프전 MVP 이소영을 영입했다.

인삼공사는 우승도전을 위해 역대 가장 큰 규모의 투자를 통해 지난 시즌 챔프전 MVP 이소영을 영입했다. ⓒ 한국배구연맹

 
인삼공사는 핵심 선수들이 대거 FA자격을 얻었던 지난 시즌과 달리 팀 내 FA가 최은지와 노란 리베로 밖에 없었고 외부 FA시장에 눈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물론 대부분의 배구팬들은 매년 그랬던 것처럼 인삼공사의 투자는 현실로 이뤄지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인삼공사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FA 최대어 중 한 명으로 꼽히던 '소영선배' 이소영을 영입하는 '통 큰 투자'를 단행했다. 

공수를 겸비한 리그 최고의 윙스파이커 이소영이 가세하면서 왼쪽 한 자리가 채워진 인삼공사는 '이소영의 파트너 찾기'가 이번 시즌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인삼공사는 지민경(AI페퍼스)과 최은지가 팀을 떠났지만 여전히 고의정과 고민지,이선우,이예솔 등 젊은 윙스파이커 자원들이 즐비하다. 여기에 트레이드로 영입한 박혜민이 지난 컵대회에서 팀 내 최다득점(2경기25득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 경쟁구도는 더욱 치열해졌다.

디우프가 이탈리아리그로 돌아가면서 인삼공사는 전체 3순위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가대표 출신의 아포짓 스파이커 옐레나 므라제노비치를 지명했다. 1997년생의 젊은 나이에도 세르비아와 그리스,프랑스,러시아,터키 등 다양한 리그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는 옐레나는 도쿄 올림픽을 다녀온 염혜선 세터와 빨리 호흡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번 시즌 옐레나에게 디우프 같은 높은 점유율을 맡기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인삼공사는 FA 이소영을 영입하면서 보상선수로 주전 리베로 오지영을 내줬다. 김해란(흥국생명) 이적 후 오지영이 네 시즌 동안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했던 인삼공사로서는 이번 시즌 리베로 약점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영택 감독은 재계약을 통해 팀에 잔류시킨 기존의 노란 리베로와 더불어 기업은행 시절부터 견고한 수비를 자랑하던 채선아를 리베로로 변신시켜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인삼공사는 최근 성적이 말해주듯 봄 배구가 익숙한 팀은 아니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와 리베로, 그리고 윙스파이커 한 자리만 안정을 찾는다면 봄 배구는 물론 10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것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FA최대어 이소영과 국가대표 주전세터로 도약한 염혜선, 그리고 한송이와 박은진,정호영으로 구성된 리그 정상급 센터진을 보유한 인삼공사는 과연 이번 시즌 얼마나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을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